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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일주일 중세 여행

하루 10분 일주일 중세 여행

에코도서관-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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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2쪽 | 152g | 125*185*20mm
ISBN13 9788990048950
ISBN10 899004895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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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학교에서 16세기는 르네상스시대라고 배웠어요. 17세기는 ‘고전시대’, 18세기는 계몽주의시대고요. 그런데 중세는 도대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 거죠?

르 고프 중세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어. 최소한 1000년 동안이나! 중세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1000~1500년의 시기를 생각하지. 하지만 중세는 적어도 5세기 이전 500년경, 그러니까 기원후 5세기에 시작되었단다.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로마에서 쫓겨나고, 476년 야만인들의 왕 오도아케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지. 로마제국이 종말을 맞은 거란다. 이렇게 중대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바야흐로 고대가 끝을 맺었단다.

학생 ‘중세’의 어원을 알고 싶어요. 왜 ‘가운데 중’ 자를 써서 ‘중세’라고 하죠?

르 고프 중세, 특히 중세 말엽에 몇몇 학자와 예술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어. 그들은 자신들의 세대 바로 이전의 몇 세기를 ‘두 시대 사이에 낀 중간 시기’, 과도기이자 몽매의 시기이며, 자신들이 높이 치켜세운 고대에 비해 쇠락한 시절이라고 느꼈던 거야. 우리에게는 그 몇 세기가 중세의 핵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더 세련된 고대의 문명을 회복하려고 했단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이렇게 느낀 사람들은 특히 ‘인문주의자’라고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시인들이었어. 그들은 인간이 중세 그리스도교 신앙에 의해 부여받은 것보다 더 많은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했단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앙은 신 앞에서 인간이 짓는 무거운 죄에 대해 역설했거든.
두 번째로, 특히 18세기에는 중세 사람과 중세 문명에 관해 경멸하는 풍조가 만연했단다. 조금 전에 네가 말했다시피 18세기는 계몽주의시대야. 중세는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의 이성을 짓뭉개버린 몽매한 시대라는 이미지가 팽배했지. 르네상스시대와 마찬가지로 계몽주의시대에도 중세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은 이해받지 못했어.
요약해보면 ‘중간’ 시대를 뜻하는 ‘중세’는 더 우월하다고 여겨진 고대와 근대 사이에 낀 시대란다. 근대는 르네상스로 시작되는데, ‘재생’ ‘부활’을 뜻하는 르네상스도 상당히 전형적인 단어지. 마치 중세는 중간에 괄호로 묶을 수 있는 시대이기라도 한 듯이, 15~16세기부터 고대가 ‘부활한다’는 의미에서 르네상스시대라고 한단다.

학생 ‘기사’라는 단어에는 말을 탄다는 의미가 들어 있잖아요. 기사와 말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거죠?

르 고프 물론 그렇단다. 우리는 기사가 홀로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간혹 그 어원이 된 말의 존재를 잊곤 하지. 기사는 말을 소유한 사람이란다. 정확히 말하면 쟁기를 끄는 말(최근까지 아주 오랫동안 쟁기를 끈 동물은 황소였지만)이 아니라 전투마를 가진 사람 말이다. 그 말은 경주마도 아니고 하물며 아랍 순종마도 아니란다. 중세 기사의 말은 바로 힘이 센 전투마, 데스트리에(destrier)였어.

학생 기사들은 무엇을 했고, 어떻게 하루를 보냈나요?

르 고프 기사들이 주로 하는 일은 전투였단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달리, 개인간에 단독 결투를 벌이는 게 아니라 무리를 지어 집단 대항전을 펼쳤지.

학생 마상경기에서도요?

르 고프 마상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단다. 덧붙여 말하면 전투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이를테면 마상경기는 특히 봄에 열렸어. 그리고 두 가지 유형, 즉 사냥용 경기와 오락용 경기가 있었단다. 기사들은 사냥 실력이 뛰어났는데, 사냥 역시 무리를 지어서 했어. 그리고 오직 명예와 위신만이 걸린 마상경기가 있었단다. 이 역시 집단 대항전으로 두 진영이 맞붙어 대결을 벌였어.

학생 마상경기는 오로지 흥미를 위한 경기였어요, 아니면 진지했어요? 마상경기에서 죽는 사람도 있었나요?

르 고프 물론 진지했지. 갑옷이 검과 창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해주니까 대개는 부상자만 발생했어. 그리고 전쟁 때도 전사자를 만들기보다 오히려 포로를 잡으려고 애썼단다. 포로는 몸값을 받고 풀어주었는데, 그런 몸값이 수익원이 되었지. 하지만 경기에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단다. 1559년 프랑스의 왕 앙리 2세가 바로 그렇게 마상경기에서 사망했어. 게다가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전쟁과 무력을 반대했고 마상경기를 비난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이런 사실은 서로 대적한 목적이 그저 웃고 즐기는 데 그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단다. ‘교회’, 그러니까 교황과 주교들은 마침내 12세기에 마상경기를 금지했어. 그렇지만 마상경기는 15~16세기에 다시 유행하게 되었지. 15세기 중반, 앙주와 프로방스의 명망 높은 백작으로 장차 시칠리아의 왕이 되는 르네 공이 마상경기에 관한 책을 썼는데, 이 책이 대단한 성공을 거둘 만큼 마상경기는 인기를 끌었단다.

학생 그런데 ‘성배’가 뭐예요?

르 고프 고대의 술잔같이 생긴 마법의 잔이라고 할 수 있어. 성찬식의 면병이 그 잔 속에서 진정 성체로 변하게 된단다. 그렇게 아서왕 전설은 중세에, 아니 중세에 그치지 않고 남녀를 불문한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지.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그 전설에 매혹되었단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원탁의 기사들이 맡은 소임과 위업은 오로지 남성들만이 수행한 과업이었다는 거야.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부 남자아이들이었지. 기사들의 사회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남성 중심 사회였거든.

학생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어떤 건가요?

르 고프 그분께 기도를 드리고 간청을 하고, 그분의 형상을 본뜬 초상과 조각들을 만들고, 그분에 대해 책을 쓰고, 순례지에서 그분을 받들고, 그분의 이름을 딴 교회와 성당을 지어 그분에게 헌정하는 것이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헌정되고 있지. ‘성모 마리아’는 신자들과 신을 매개하는 위대한 중재자야. 사실 신의 아들인 예수의 은총, 이를테면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중세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를 거쳤단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들을 위해 나서서 그들과 예수를 이어주기를 요청했어. 그래서 마리아가 말하자면 중세 사회의 그 유명한 귀부인, 바로 ‘노트르담’이 되는 거란다.

학생 ‘중세’라고 하면 ‘기사’뿐만 아니라 ‘성채(城砦)’와 ‘성당’이 생각나요.

르 고프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성채와 성당은 아주 특별한 거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중세의 주거지는 대체로 소박하거나 열악했어. 특히 농민의 집은 초라하고 비참하기도 했단다. 도시에서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석조 건물이 나타났거든. 오랫동안 나무로 건축물을 지어서 중세에는 화재가 아주 빈번했단다. 집 외에 교회 건물, 여러 촌락과 도시가 숱하게 불에 타버렸지!
하지만 두 건축물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압도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이 건축물은 중세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지. 바로 성채와 성당이란다. 성채는 기사의 거처고 성당은 신의 처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신의 대리인, 즉 주교들이 기거하는 곳이야. 그중 성채는 기사의 권력과 위신을 명백히 보여주고, 성당은 주교를 통해 신의 위엄을 이어가지. 주교는 ‘교구’라는 종교 영지의 수장으로, 교구의 면적은 현행 행정구역상의 도 하나와 맞먹었단다. 주교가 사는 도시에서 그가 기도를 올리고 설교도 하고 미사를 집전하는 ‘신의 집’이 바로 ‘성당’인 거야.

학생 그런데 성채는 정확히 어떤 용도로 쓰였나요?

르 고프 기사에게 성채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했는데 각각의 기능은 서로 대등하게 중요했어. 요새로서 군사적인 기능을 맡아 방어를 했고, 한편으로는 주거지의 역할을 한 성이었지. 성채의 크기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수에 좌우되었단다. 실제로 성채는 영주의 많은 가족과 종복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 심지어 영주와 가장 가까운 농민들을 한꺼번에 머물게 해 보호했어. 도시에도 나이와 직업을 불문한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데, 몇몇 성채가 바로 그런 도시의 원형이지.

학생 성당은 뭘 하는 곳이죠?

르 고프 무엇보다 성당은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단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기도하고 미사를 올리고 성무일과와 각종 종교의식에 참여했지. 성당은 신의 대리인인 주교의 집으로 거기에는 늘 ‘참사원’이라는 고위 성직자들이 있었고, 이들이 주교회를 구성했단다. 그들은 아침, 정오, 저녁에 창미사를 올렸어. 간단히 말하면 성당의 진정한 주인인 신을 찬양하는 거지. 이처럼 그들은 성당의 내진(內陣)에서 성무일과를 수행했어. 성당을 둘러본다면 큰 규모의 내진을 직접 확인하고 그들이 창미사를 올리기 위해 앉는 성직자석도 볼 수 있을 거다. 성직자석은 등받이가 있는 목재 좌석으로 간혹 아주 멋진 조각이 새겨져 있기도 하단다.

학생 지금까지는 ‘아름다운’ 중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중세는 아름답지 않은 일면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중세를 비난하려 할 때는 늘 ‘봉건사회’라고 하죠.

르 고프 그래, 하지만 어느 사회나 다 마찬가지로 중세 사회도 복합적인 사회였단다. 왜 ‘봉건’이라는 말이 붙었을까? 무엇보다 중세 사회는 영주가 지배하는 사회로 영주에게는 ‘봉신’이라는 신하가 있었단다. 영주들은 봉신에게 ‘봉토’라는 토지를 나눠주고 이 토지에서 소득을 얻었지. 그래서 ‘봉건제도’라는 말이 나온 거란다. 민중과 농민, 하층민이 권력자와 부자들에게 억압을 받았기 때문에 18세기 철학자와 르네상스시대의 사람들은 중세의 사회제도를 혐오하고 비난하면서 ‘봉건사회’라고 일컬었지. 그리고 이런 봉건사회의 이미지가 여전히 중세와 밀착되어 있는 거고.

학생 어떻게 왕이 되었나요?

르 고프 두 가지 방식, 즉 선출 방식이나 가문에 의해 왕이 되었단다. 그렇게 해서 카페 왕조의 1대 왕 위그 카페는 987년 대귀족과 다른 영주들에 의해 선출되었지. 하지만 주로 왕실 가문, 즉 왕조에 의해 왕위 승계가 보장되었단다. 대개는 왕의 장자가 왕권을 이어받았지. 예를 들어 프랑스는 10세기에 카페 왕조가 시작되었고, 그 다음 14세기 초 필리프 6세에 의해 발루아 왕조로 이어졌단다. 몇몇 왕국의 경우 여성은 왕이 될 수 없었어. 왕후의 위상은 그저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자리에 지나지 않았고, 때로 왕의 어머니나 왕비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그쳤지.

학생 황제와 왕의 차이가 뭐예요?

르 고프 단 한 명의 로마 황제 대신 다양한 왕들이 제각기 한 왕국의 수장 자리에 있다는 거지. 다시 환기하자면 로마 황제는 유일무이한 수장으로서 로마제국을 다스렸는데, 때로 가문에 의해 또 때로는 다 함께 연호하고 갈채를 보내는 군인들에 의해서 황제로 등극했단다. 그런 황제의 이미지가 중세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을 거야.

학생 왕은 영주와 어떻게 구분되죠?

르 고프 무엇보다 왕의 물건으로 구분되었는데, 대부분 왕좌·왕관·왕홀이라는 지팡이였고, 또 어떤 경우에는 ‘법의 지팡이’(자루 끝이 손 모양으로 벌어져 있는 지팡이)로 구분되기도 했단다. 사법권은 왕이 갖는 중대한 특권 중 하나이자 사법 기능은 왕권과 ‘교회’에 귀속된 활동 가운데 하나였지. 왕은 대개 상당히 작은 영토, 다시 말해 ‘왕령’을 직접 통치했는데 이곳에서 최고의 권한을 가졌단다. 그리고 왕은 ‘봉건군주’로서 영주를 지배하에 두고 간접적으로 영주의 영토를 다스렸지. 왕의 또 다른 특권은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단다.

학생 중세에 ‘교회’는 도대체 어떤 권력을 지녔었나요?

르 고프 ‘교회’의 권력은 상당했단다.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교인에게 꽤 많은 납부금을 징수했어. 소송과 재판, 특히 결혼과 관련한 사안은 교회 재판소(주교가 지정한 성직자가 재판관을 맡는 재판소)에서 관할했지. 더 중대한 권력이 있었는데 그리스도교 사회의 왕이나 권력자가 ‘교회’에, 다시 말해 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교황은 그를 파문하여 ‘교회’에서 축출하고 그의 백성에게도 성사를 허용하지 않을 수 있었단다. 따라서 더 이상 세례와 성체배령, 죄 사면은 물론 혼인성사와 병자성사도 행할 수 없었어. 이 때문에 파문을 당한 자들은 아주 곤혹스러워했지. 그 이유는 다시 환기하자면 중세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아주 독실한 신자였기 때문이란다.

학생 사후 세계는 지옥 아니면 천국뿐인가요? 그 중간이나 제3의 장소는 없나요?

르 고프 있단다. 12세기 말부터 ‘교회’는 죽기 전에 완전히 속죄받지 못한 그리스도교인들을 위해, 죽고 나서 최후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를 만들었어. 그곳에서 그들은 영벌(永罰)과 같은 특별한 형벌에 따라 결국 속죄를 받았고, 지상에 남아 있는 친족과 친구의 기도·헌금·미사와 ‘교회’ 덕분에 풀려날 수 있었지. 여기가 바로 ‘연옥’이란다.

학생 다른 잘못은 없었나요? 어쨌거나 십자군 원정은 별로 영예롭지 못하고 비난받을 만한 사건이잖아요?

르 고프 그래. 오늘날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단다. 예수와 신약성경(복음서)이 가르치는 그리스도교는 평화의 종교야. 초창기 그리스도교인 중 많은 사람들이 참전을 거부해 로마인들에게 박해를 받았지. 그런데 야만인들은 그리스도교인이 되어가면서 자신들의 호전성을 그리스도교에 끌어들였단다. 신앙은 전도나 포교가 아니라 무력으로 강제할 수 있고, 심지어 때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기게 된 거야. 9세기에 에스파냐를 정복한 무슬림의 예도 그렇고. 꾸란(코란)의 어떤 구절은 전쟁을 동원해 개종시킬 수 있다고 가르쳤어. 바로 지하드(‘성전’)의 원리지. 그리스도교 사회의 유럽 역시 11세기부터 종교전쟁으로 전향했단다.

학생 중세 사람들은 어떻게 교양을 쌓고 지식과 학문을 습득했나요?

르 고프 그리스도교의 경우, 남성과 여성들은 미(美)와 지(知)를 통해 신을 공경해야 했단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성직자들이 이런 이상을 전파했는데, 우선적으로 그들을 가르치고 예술 작품이 실현될 수 있게 한 곳은 특히 수도원과 교회였지. 그래서 수도원에는 13세기까지 스크립토리움(필사실)이라는 특별한 방이 있었어. ‘글을 쓰다’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스크립토리움에서 수도사들은 신앙서를 편찬했단다. 그들은 직접 이 책들을 장식하거나 도안가와 화가들에게 장식을 의뢰했지. 또 수도사들은 고대 수사본을 필사하여 학문을 전수하기도 했단다.

학생 중세에는 어떤 학문이 있었고, 어떤 과목을 가르쳤나요?

르 고프 성직자들은 고대 로마제국에서 사용하던 학문 분류법을 채택했단다. 따라서 기초 단계에서는 세 가지 기본 학문, 이른바 세 가지 ‘자유학예’(일명 ‘세 가지 길’을 뜻하는 ‘트리비움’)인 문법·수사·논리학을 가르쳤지. 그 다음에는 네 가지 고등 과목(콰드리비움, ‘네 가지 길’이라는 의미), 즉 산술·기하·천문·음악을 교육했고.

학생 대학은 어떻게 구성되었죠?
르 고프 일반적으로 대학은 크게 세 단과대학으로 나뉘었단다. 학예대학에서는 기초 학문을 가르쳤어. 그리고 두 개의 법과대학에서는 민법과 종교법(또는 교회법)을 교육했는데, 종교법이 대단히 발전했지. 끝으로 신학대학이 있었다. 대학마다 특별히 명성을 떨친 교육 부문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법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대학은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이었고 프랑스에서는 오를레앙 대학이 가장 유명했지. 신학 교육으로 가장 뛰어난 곳은 파리 대학이야.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가장 신망을 얻은 의과대학은 몽펠리에에 있었고. 당시 몽펠리에는 아직 프랑스 왕국에 속하지는 않았단다.
13세기에 새로운 방법으로 지식을 쌓고 성찰하는 학문 체계가 완성되었는데 이 학문이 도달한 정점은 그리스 철학에 버금갈 정도였어. 바로 ‘스콜라 학문’이지. 스콜라 학파의 위대한 교부로는 독일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이탈리아의 보나벤투라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단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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