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 힌트는 있었다. 베이컨의 기름을 빼지 않고 그대로 올린다. 마요네즈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베이컨에서 나오는 기름이 빵에 스며들어 소스를 대신하는 것이리라. 빵도 구워서 따뜻할 때 내놓으니 베이컨의 기름이 식어서 굳을 일은 없겠지만, 기름이 너무 많으면 입이 텁텁해진다. 양상추나 토마토를 끼우는 것은 입을 상큼하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 그런데 넣지 말라고 하니, 잘 구워서 기름을 적당히 빼는 편이 좋다. 하지만 너무 바싹 구우면 맛이 부족해진다.
정답은…… 바삭거리는 베이컨이다. 나호는 음, 하고 끄덕였다. 프라이팬에 약한 불로 천천히 베이컨을 구워서 거기서 나온 기름으로 살코기 부분을 튀기듯이 구우면, 남은 지방 부분도 바삭한 식감이 된다. 급하게 센 불로 하면 타버리니 주의해야 한다.
구운 베이컨을 조금 먹어보고 바삭한 식감을 확인한 뒤, 젓가락으로 들고 흔들어 가볍게 기름을 뺐다. 기름을 빼지 말라고 주문했지만 너무 많으면 입속이 텁텁하다. 그러나 너무 빼지 않도록 주의. 오븐 토스터가 찡 하고 울리고, 잘 구워진 빵에 바로 베이컨을 올렸다. 주문대로 머스터드 대신 겨자를 아주 약간, 베이컨에 발랐다. 빵을 한 장 더 올리고 완성.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 p.52-53
“그렇게 많이 주문해도 다 만들지 못해. 우리 부부와 딸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숙부 부부에 남편의 사촌과 아르바이트생 두 명, 겨우 열 명이 목축을 해서 유제품 가공까지 전부 하고 있는 걸. 우리 지역에서 소비하고 남는 건 인터넷 판매를 해서 고객이 생기는 걸로 충분해. 적자 안 나고, 아르바이트생들 월급 제대로 주고, 가족이 생활할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 그것도 아주 힘든 일이야, 작년에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다니까.”
“기계를 들여서 규모를 크게 할 생각은 없어?”
“없어.”
미나미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손으로 목축을 하고, 치즈를 만들고 쿠키를 굽고, 그러지 못하면 이 일을 하는 의미가 없는걸. 기계화된 대규모 목장 운영을 부정하는 건 아냐. 대규모 목장에서 안정된 생산을 계속하니까 전국 슈퍼에서 싸고 간단히 우유며 버터며 치즈를 살 수 있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그런 것과 다른 걸 만들고 싶어서 병아리 목장에 시집오기로 마음먹었는걸.”
--- p.77-78
“어째서 자신을 바꾸려고 생각했어요?”
다나카 씨는 차파티를 뜯어서 카레에 적셨다.
“반성했어요. 아니…… 좌절인가.”
“좌절.”
“네…….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구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지랖 넓게 내민 제 손을 거절하고, 그 사람은 더 멀리 가버렸어요.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어요. 구원해주려고 내민 손이 오히려 그 사람을 상처 입히고, 더 완고하게 만들었어요. 벌을 받았나 봐요. 제 마음도 어느새…… 망가져버리더군요.”
“지금은?”
“네?”
“마음은 나았어요? 맛있네, 이 카레.”
“아, 감사합니다! 마음은…… 치료 중이에요, 아직. 그러나 아픔은 많이 가셨어요.”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네.”
“네.”
“정말 다행이오.”
“네…….”
--- p.117-118
맑게 갠 한겨울의 유리가하라 고원은 멋있지, 하고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여름에는 고원 채소를 재배했던 광대한 밭은 온통 은색으로 빛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몇 킬로미터 떨어진 호수에서 겨울을 나는 들새들이 설원 위로 울면서 날아가고, 이따금 무언가가 눈뭉치를 날리며 호로록 뛰어간다 싶어 눈길을 돌리면 산토끼를 잡으려고 뛰어가는 여우다. 산토끼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세상 속에서 콩콩콩 숲을 향해 가는 모습은 한없이 사랑스럽고, 침엽수 가지가 수빙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은 아름답고 신비롭다고 한다.
내일 날이 개면 설원을 보러 가자.
--- p.183
남편과 둘이 통장을 앞에 놓고 며칠이나 의논했죠.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이제 와서 아들의 꿈을 대신 이루어준다고 섣불리 열어서 잘될 리 없다.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 다 마음은 정했어요. 남편도 나도 그때 나이 서른아홉. 그 나이에 빵 만들기를 배운다고 프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해볼 수밖에 없었어요. 해보지 않고 포기하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란 걸 알고 있었거든요. 둘이서 제과학원에 다니며 도쿄, 아니, 간토 지역에서 인기 있는 제과점의 빵이란 빵을 모두 사 먹어보았어요. 2년 동안 밥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빵만 추구했어요. 그 결과, 비파 호에 여행 갔을 때 우연히 사 먹은 수제 천연 효모를 사용한 빵, 그 맛이 가장 좋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죠.
--- p.204-205
미나미가 마(麻) 주머니에서 하얀 종이에 싼 덩어리를 꺼냈다. 병아리 목장의 버터는 최고다. 거기에 달걀, 우유, 생크림, 치즈, 베이컨. 미나미가 꺼낸 식재료는 모두 이 마을의 보물이다. 카페 송드방에는 이 마을의 보물이 매일 이렇게 모여든다.
열심히 해야지, 나호는 새삼 다짐했다. 열심히 해서 올해야말로 이 가게를 흑자로 돌려야지. 이 마을의 보물을 도시에서 온 사람들에게 맛보여줘야지.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이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