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과학사를 강의해온 지 30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과학사 전문 인력이 별로 없던 상태에서 시작했기에 그동안 강의한 교과목만도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여러 시기를 넘나들며 참 여러 교과목들을 강의해왔다. 게다가 대학의 교과목 이외에도 그동안 이런저런 계제에 여러 청중을 대상으로 과학사 관련 교양 강연들도 제법 해온 것 같다.
이 책은 그간 내가 해온 그 같은 교양 강연들 중에서 골라 그 내용을 정리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중에는 나중 내 자신의 과학사 교과목 강의에 포함된 내용도 있고 더욱 정리되어 책의 일부로 출간된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들의 교양을 위해서 준비된 내용들이었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과학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과학사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 교양으로 읽을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서문에서
동양 전통과학의 여러 분야들―예를 들어 천문, 역법(曆法), 수학, 화성학(和聲學), 각종 기술 등―은 모두가 19세기 후반 이후 도입된 서양의 과학기술 분야들에 의해 대체되어 없어져버렸다. 물론 나 같은 과학사학자들이 이런 동양 전통과학 분야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분야들의 과학기술 활동이 실제로 수행되지는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들 분야들은 사실상 없어진, 소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있다. 동양 전통의술, 또는 ‘한의학(韓醫學)’이 현재도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술 또는 의학은 다른 과학기술 분야들과 어떻게 다른 성격을 지녔기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즉 동양 전통과학의 다른 분야들은 소멸했는데 의학은 살아있는 전통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학이 다른 과학 분야들과 다른 점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질문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만한 점은 위에서 동양 전통과학기술 분야들을 예로 들면서 의도적으로 빼놓은 분야들이 있다는 것이다. 연단(煉丹), 풍수(風水), 점복(占卜) 등이 그런 분야들이다. 이 분야들은 현대과학의 시각으로 볼 때는 과학이라고 부르기 힘들지만, 동양 전통사회에서는 위에서 든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전문 분야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분야들이 전문적 지식, 전문적 문헌과 전문가들의 전통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점은 이 분야들 또한 오늘날 얼마간 살아있는 분야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동양 전통의술이 살아있는 정도로 이 분야들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단, 풍수, 점복 등은 오늘날도 계속 행해지고 있고 심지어는 근래 들어 이들 분야들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p.48~49
18세기까지 기술 분야의 활동은 경험에 의해, 그리고 시행착오의 되풀이에 의해 행해졌다. 기술 분야들과 관련된 과학 분야들 ─ 전기, 열, 빛, 화학, 금속 등─은 아직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단순한 경험적 지식의 집적(集積)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미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과학 분야들─역학, 천문학 등─은 위에 든 과학 분야들의 발전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기술에 직접 응용될 여지가 거의 없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을 통해서 여러 분야의 과학이 이론적으로 체계화,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실제 기술에 응용될 수 있는 분야들─열역학, 전자기학, 유기화학, 금속학, 광학 등─에서 주로 일어났으며 이들 분야들의 지식이 19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기술에 응용되게 된 것이다. 결국 경험적, 실험적 지식의 분야들의 이론적인 체계화가 이들 분야들을 ‘과학화’했고 그에 따라 이들 분야들과 연관된 기술 분야들에 이 같이 ‘과학화’된 지식이 응용되도록 만든 셈이다.
이런 면에서는 19세기 중반에 우리가 보는 현상─위에서 과학 지식의 기술에의 응용이라고 부른 현상─은 결국 기술 분야의 ‘과학화’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경험과 시행착오에 주로 의존하던 기술 분야들이 체계적인 과학의 지식에 바탕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리고 결국은 이것이 오늘날에 와서 과학과 기술의 구별을 힘들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기술 자체가 ‘과학화’되어서 두 가지가 본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활동이 되고 난 후에는 이 둘 사이의 구별이 힘들어질 것은 당연한 것이다---p.82~83
전통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거의 전적으로 ‘중인(中人)’ 계층의 분야였다. 지배 계층인 ‘선비士’계층의 학자나 관리들―대부분 두 가지 역할을 겸했던―도 때로 과학기술 관련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관리와 감독의 역할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과학기술에의 개입은 피상적인 경우가 많았다.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중인’ 계층의 존재는 전통 한국 사회에 고유한 것으로 중국이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문직종 종사자들로 이루어진 대체로 세습적인 계층이었으며, 비록 지배 계층으로부터 멸시당하고 사회 중대사의 결정에 아무런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비교적 안정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 계층 사람들은 나중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중요한 결과를 빚어냈다. ‘중인의식(中人意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계층 사람들이 지녔던 특유의 태도―자신들은 단지 그 주변인에 불과한 전체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의 결여로 특징지어지는―가 사라지지 않고 현대 한국 과학기술에서도 두드러진 특성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p.120~121
『과학혁명의 구조』는 출판과 동시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고 차츰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가장 영향이 컸던 분야는 역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끈질기고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던 과학철학 분야였다. 물론 대다수 과학철학자들의 반응이 비판적이었지만 그들의 구체적 태도야 어떠했건 간에 쿤의 견해로부터 그들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쿤의 패러다임이론은 이미 그들이 느끼기 시작한 정적(靜的)ㆍ분석적 과학철학의 문제점들을 명확히 노정시켰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아주 새로운 각도에서 과학에 관해, 특히 과학지식의 발전에 관해 포괄적인 견해를 제시해주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정적ㆍ분석적 방법만을 고집하거나 동적ㆍ역사적 접근을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 특히 쿤의 견해는 전통적인 정적 과학철학과 새로운 동적 과학철학 간의 토론의 구심점을 제공해주었다. 과학철학의 논의에 있어서 쿤의 이론은 빼놓을 수가 없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쿤을 이해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과학철학의 입장을 다져갔다.
다른 분야에 있어서는 『과학혁명의 구조』가 준 감명이 조용하기는 했지만 훨씬 더 깊고 호의적으로 나타났다. 우선 많은 과학자들로부터 이 책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과학혁명의 구조』가 단순히 철학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과학이 행해지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얻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공감의 정도는 컸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 책이 그들이 실제 과학 활동에 종사하면서 은연중 느껴오던 점들을 설득력 있고 흥미 있게 써주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p.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