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한 개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를 던지면 연인과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토리노에서 온 파트리시아와 함께 트레비 분수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때 뭔가 기원하면서 뒤로 돌아선 자세로 동전을 한 개씩 던졌다. 그렇다면 언젠가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뙤약볕을 맞으며 기차역으로 향하던 그때, 나는 늘 그리워하던 로마를 다시 꿈꾸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배낭에 먼지를 털고 작업실 한쪽에 펄쳐놓은 후 생각날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한가지씩 던져 넣으며 생각했다. 그래, 지칠때까지 놀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여자가 아직도 배낭 한개 달랑 매고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 또한 멋지지 않은가. 아직껏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 사록 있는 나의 자유가 통쾌하지 않은가. 지구상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장소가 너무 많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카리브 해변에 누워 아무런 갈등 없이 여름 한철을 보낼 수도 있고 히말라야나 티베트 같은 좀더 색다른 감흥이 기다리는 오지를 찾아가 헤메고 다닐 수도 있다.
--- 머리말 중에서
내 영혼의 물은 그 어느 것이나 쉼 없이 흐르고, 끊임없이 흔들리고, 어디까지고 깊이깊이 스며들어간다...바야흐로 나는, 바다를 향해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면서, 동시에 모든 담수를 들이마셔버리는 바다 그 자체다. - 마루야마 겐지
베네치아를 이야기할 때는 베네치아 상인을 거론하게 된다. 베네치아는 상업적인 성격을 띠는 도시 국가로 유럽 경제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역사가이자 시인이었던 아플리아의 기욤은 베네치아에는 '돈도 인간도 풍부하다'고 찬양했으며, "이 세계의 그 어느 민족도 베니치아 사람보다 해전에서 더 용감할 수 없고, 항해술에서 더 능숙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비잔틴 제국에 속해 있었다. 반도라는 지리적 요건 때문에 침입자들은 이탈리아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아드리아 해 상부 끝과 알프스 산맥 밑에서 있는 비잔틴 문명의 고립된 전초지를 형성했다. 서유럽이 동방과 단절되어 있던 데 반해, 이탈리아는 여전히 동방의 한 부분이었다. 그 결과 베네치아는 바다 건너에 있는 대도시 콘스탄티노플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그 속에서 성장했다.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은 생산은 안하고 소비만 하던 로마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상업뿐 아니라 제조업에도 수완을 발휘했다. 콘스탄티노플은 대항구였고, 정치의 중심지였으며, 중요한 제조 중심지로 근대 대도시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강력함으로 이슬람교도에 맞서 동지중해 연안에 있는 영토를 유지할 수 있었다.
베네치아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콘스탄티노플과의 밀접한 접촉 때문이었다. 비잔틴 제국 덕택에 상업이 번창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고등 문명, 즉 고도의 기술, 기업 운영, 정치, 행정, 조직 등을 배웠다.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경제 흐름은 인접 국가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에까지 자유롭게 확장되었다. 이로 인해 베네치아는 중세 유럽에서 독특한 곳이 되었다.
베네치아가 무역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 구조 때문이었다. 한번도 중세 국가 제도로 편제된 적이 없으며, 봉건 제도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였다. 막스 베버는 "베네치아의 통치는 귀족 가문들 사이의 엄격한 견제 속에 이루어진 도시 국가적, 가부장적 전제 정치였다"라고 상술한 바 있다. 통치 방식은 모드 관직의 단기화와 암행어사적 통제 체제로 이루어졌다. 런던에서 발견한 <영국 첩보 기관의 역사>를 보면 "근대 외교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베네치아가 정보 수집을 중시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베네치아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8세기부터다. 해상 무역으로 눈을 돌린 후로 콘스탄티노플에 물건을 공급하는 데 전념했고 점점 더 성공을 거두었다. 항선들은 밀이나 포도주, 목재, 소금 등을 운반했으며, 심지어 교황과 비잔틴 황제가 금지한 노예들까지 실어날랐다. 돌아오는 배에는 아시아에서 수입한 향료는 물론, 비잔틴에서 제조한 값비싼 직물이 실려 있었다.
--- pp 187~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