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는 왜 가출을 했을까?
사랑 찾아 떠나는 엉뚱하고도 용기 있는 거위의 발칙한 모험담!
이야기는 빨간 나비 농장에 사는 한 마리 거위의 실종 기사에서 시작한다. 버려진 어린 거위를 정성을 다해 키운, 그래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여겼던 베르타 아줌마조차도 모르게 거위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베르타 아줌마는 처음엔 단순한 실종이나 도난일 거라고 했지만, 찢어진 지도를 비롯한 몇몇의 증거들을 발견한 뒤 계획적인 가출 사건임을 직감케 된다.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매일 아침 베르타 아줌마 곁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거위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나오던 보를 사모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보가 아프다는 기사를 읽고 크게 상심하고 있던 중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듣는다. 보는 병상을 털고 일어났고, 곧 생일 파티를 연다는 것이다. 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거위는 농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보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보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 보는 열병을 앓았다니까, 목에 염증이 생겼을 거야. 틀림없이 노래도 못 부르고 있을 거야. 그런 보에게 신선한 거위 알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어? 빈속에 거위 알을 먹으면 다 나을걸? 그러면 다시 힘차게 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
이렇게 해서 베르타 아줌마가 자신에게 줄 거라고 생각했던 특별한 알을, 거위는 그날 저녁 보를 위해 낳았답니다. --- p.19
이 이야기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거위가 스타를 사랑하게 되는 엉뚱한 상상력에 있다. 작품 속에서 인간은 인간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세상의 질서를 지키며 살긴 하지만, 주인공 거위가 사랑의 대상으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 남자를 지목하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사랑하는 보를 위해 특별한 거위가 되기로 결심하다
꿈과 사랑에 대한 섬세한 통찰
거위를 처음 움직인 건 스타 보를 향한 ‘사랑’이었다. 거위는 보의 정원에 살게 되고 그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행복에 겨워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보의 관심이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자 거위의 일상은 곧 지옥이 되고 만다.
다음 날 아침 보는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창밖을 내다보지도 않았고, 자동차에 탈 때 거위에게 손을 흔들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거위는 토르톱 부인이 가져온 우유 한 잔을 마셨습니다. 너무나도 불행했습니다. 보와 거위를 이어 주던 비밀스런 끈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하룻밤새 꽃들은 시들어 고개를 숙였고, 아름다운 색깔과 사랑스러운 모양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난 멍청이, 바보 같은 거위야! 누가 나에게 관심을 갖겠어? 아무도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을 거야.” --- p.45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고 싶고, 그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었던 마음은 거위의 삶을 변화시킨다. 거위는 스스로 특별한 존재가 되어 보의 곁에 있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거위는 다른 동물들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거위가 된다.
거위는 많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은 눈길도 주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저길 봐! 보의 프로그램에 나오는 재능 많은 거위야!” 하고 말할 것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 p.62
그런 거위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보의 배려로 한껏 사랑해 주는 수컷 거위를 만나게 된 것. 수컷 거위는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는 법을 가르쳐 주고, 거위의 목소리가 주변과 자연을 더 생기 있게 만든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 주며, 또 다른 세상을 열어 보인다.
거위의 삶은 갈수록 더 풍성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더 이상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거위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수컷 거위가 알려 준 그 새로운 언어는 이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곤충과 꽃의 이야기를 듣게 해 줄 테고, 그러니 거위는 언제나 혼자가 아닐 것이었습니다. --- p.93
거위는 선택을 해야 했다. 수컷 거위와 새끼를 낳고 안락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외롭고 불안할 테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스타의 삶을 살 것인가.
하지만 거위는 이미 사랑의 힘에 의해 움직이던 예전의 거위가 아니었다. 거위 스스로 빛나고 행복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신은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군요. 당신은 내가 촛불처럼 가녀린 빛으로 남아 있기를 원해요? 촛불은 단지 주위만 밝힐 뿐이에요. 나는 햇빛이 되고 싶어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빛이 되고 싶어요. …… 나는 내가 죽었을 때 남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해요. 다른 이들이 이야기할 만한 삶을 살고 싶단 말이에요.” --- p.184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 그리고 나아가 독립적 존재로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거위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 곳곳에서 묻어나는 작가 특유한 섬세한 감성과 사랑과 꿈에 대한 성찰이 읽는 재미를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