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겁을 먹고 근처 바다만 맴돌던 어느 날 아침, 한 선원이 소리치는 걸 들었지.
"어, 저것 좀 보라고!"
그래, 내가 뭘 보았을 것 같아? 아니, 그보다는, 뭐가 안보였을 것 같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뭐가 더 이상 안보이게 됐을 것 같아? 바로 내 메일마스트(범선의 중심이 되는 돛대)의 그림자가 사라져 버린 거야! 우리가 벨렘을 떠난 이후로, 매일같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갑판 뒤쪽에 매달려서, 커지거나 작아지며 방향을 바꾸긴 했을지언전, 언제나 거기 있던 그 그림자가 말이야. 자신들의 눈을 의심한 선원들이 얼이 빠진 채로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아서 돛대 주위를 맴돌았지. 하지만 하루 종일, 그림자는 나타나질 않았어. 그 사람들고 그런 일을 겪기는 처음이었지.
그런데 다음 날, 믿기지 않겠지만, 그림자가 돌아온 거야! 그런데 돛대의 다른 쪽에 가 있었어. 오, 놀랍게도, 이번엔 갑판의 앞쪽을 향해 드리워져 있더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선장님!"
하고 키잡이가 외쳤지.
"우린 회귀선을 지난 거라고요. 술통의 마개를 따셔야죠!"
바로 그거였어! 회귀선을 지나면서 내 돛대의 그림자가 갑판 뒤쪽에서 앞쪽으로 온 거야. 그것뿐이었지. 난 회귀선이,뭐랄까, 마치 바다 위의 어떤 표시거나 물로 된 벽, 높이를 바꿔주는 어떤 틈이나 구멍, 뭔가 갈라지는 곳, 뭐 그런 대단한 건 줄로만 알았었지. 그런데, 아무 것도 아니었어. 회귀선이란 게, 결국 단순한 그림자 놀이였던 거지. 그림자와 태양의 놀이 말이야!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어. 난 분명 회귀선을 지났고, 그런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야! 바다는 우유처럼 엉겨붙어 있지도 않았고, 펄펄 끓지도 않았으며, 수많은 소용돌이로 인해 흔들리는 것도 아니었단 얘기지. 아, 노인네 배들, 내게 잘도 거짓말을 하셨더군!
날 당황스럽게 한 게 한 가지는 있었어. 하루가 끝날 무렵에도 해가 쨍쨍하더니, 순식간에 한밤중이 되더군. 다음날 아침엔,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급작스러운 건 마찬가지였어. 난 캄캄한 밤을 항해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대낮이 돼버린 거야. 새벽빛도, 석양도 없이, 단지 낮과 밤만 갑작스럽게 교대가 된 거지. 난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 준비하는 걸 좋아해서, 석양의 부드러움과 새벽빛의 평온함을 맛보곤 했었거든. 하지만 여행이란 결국, 세상을 바꿔서 보는 것 아니겠어? 습관을 바꾸는 것? 한마디로, 바꾸는 것? 고백하거니와, 난 차츰 익숙해져서 결국 그런 갑작스런 변화를 음미하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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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출발한 이후로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더군. 아! 벨렘이여, 넌 얼마나 멀리 있는지! 몇달이 지났던가! 우리가 항해를 시작한 이후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기록해두기 위해, 선원들은 난간에다 날이 잘 선 칼로가는 홈을 새겼지. 석 달 동안, 난 어떤 육지도, 아무 것도 보지 못했던 거야.
너 기억하지, 마치 눈먼 사람이 지팡이를 의지하듯 해안을 따라가다가 거기서 멀어지면 내가 얼마나 두려워했었는지를. 물론 난 물을 좋아했지. 그때 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 다행히도 우리의 방향을 인도해주는 남십자성이 있었으니까.
그간 굶주림에 시달렸고, 내게서는 몸에 있던 나무들이, 선원들에게서는 이빨이 빠져나가고 있었지. 우린 모든 희망을 잃었던 거야. 그 석 달 동안, 폭풍우 한번도, 심지어 비 한 방울도 없었어.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지. 고요한, 고요하고 끝없는 바다가 날 어린아이 재우듯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고나 할까. 우린 마침내 그 동안 고심해왔던 이 대양의 이름을 찾아냈지. 만장일치로 이렇게 부르기로 했어. '태평양(太平洋)'
지구, 그간 거의가 육지로만 이루어졌다고 믿어왔던 이 지구는, 내가 발견해낸 것처럼 3분의 2가 바다로 덮여 있었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는 바다들! 지중해에서 대서양까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그리고 태평양에서-뭐 안 될 거 있겠어? 바로 그게 우리가 도전하는 목표인데 - 인도양까지.
--- pp 6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