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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와 연인

동무와 연인

: 말, 혹은 살로 맺은 동행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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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3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01쪽 | 336g | 153*224*20mm
ISBN13 9788984312593
ISBN10 8984312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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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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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 가능하지만, 오직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지는 사연들을 일컬어 연인이라고 부른다. 가족을 버리지 않으면 스승을 따를 수 없었던 경험처럼, 스승, 혹은 그 지평으로서의 동무의 불가능성을 증명해주는 세속의 덕으로 우리 모두는 친구를 구하고 연인을 사귀며 가족을 얻어 다시 세속에 보은한다.---저자 서문 중에서

그 성취와 가능성의 근간이자 채널은 그들 사이에 오간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둘의 사귐에서 보부아르가 특별한 것은 그녀의 육체가 아니라 ‘귀'였다. 사르트르의 보부아르는 육체(연인)일 뿐 아니라 정작 중요했던 것은 그녀의 귀(동무)였을 것이다. 물론 보부아르가 만난 사르트르도 ‘작고 못생긴데다 그나마 사팔뜨기인' 그의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의 입(동무)이었던 것은 재론할 것도 없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죄다 털어놓을 수 있는 지적 반려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인데, 관계의 요체는 바로 여기, ‘지적 반려자'에 있었다. 성욕의 이후를 슬기롭게 염탐하는 지혜 속에 남아있을 여자와 남자 사이의 이치를 실천적으로 궁리하는 것, 바로 그것이 ‘지적 반려’의 출발선이다. ---p.16

그러나 동무는 동지도 친구도 아니다. 굳이 조어로 그 취지의 한 극단을 잡아내자면, 동무는 동무(同無)다! 오히려 서로간의 차이가 만드는 서늘함의 긴장으로 이드거니 함께 걷는다. 공유된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면서 히틀러나 스탈린의 수염같이 가지런히 정돈된 길을 행진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길없는 길'을 걷고 어울려 다른 길을 조형하면서, 잠시만 한눈을 팔면 머-얼-리 몸을 끄-을-며 달아나 그림자조차 감추어버리는 관계다. 그것은 일찍이 니체와 짐멜만이 거의 유일하게, 그러나 다소 흐릿하게 파악한 ‘신뢰'의 관계다. 우선적으로 ‘기분'과 ‘감정이입'의 차원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그것은 친구가 아니며, ‘뜻(이념)’ 중심주의적 결집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지도 아니다. ---p.32~33

말로써 세상을 지배하려는 편집증적 남성 권위주의자들(=지식인들)에게 이것은 영원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편리한 대상은 예쁘고 말이 빠르지만 멍청하든지, 명석하고 말이 빠르지만 예쁘지 않든지, 명석하고 예쁘더라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영원한 능동성의 징표인 것! 그러므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항의조차, 그 본질에서 곧 ‘말’에 다름 아니다. 천하의 볼테르도 샤틀레 부인을 일러 ‘고담준론을 일삼는 폭군'이라고 비꼬았으니 그 역시 명석하고 말이 빠른 애인을 둔 탓에 제 나름의 비용을 치른 모양이다. ---p.100

수입된 종이호랑이들이 판치는 세상! 그같은 세상 속에서는 진검승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먼 나라 맹수들의 소문만을 먹고 사는 토끼들의 마을에서는, 160센티미터의 단구였던 다석 선생 앞에서 함석헌, 김교신, 김흥호 등이 숨을 죽이며 죽도록 경청했던 것과 같은 진검승부의 공부와 사귐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죽도(竹刀)를 든 토끼들의 표절과 짜깁기 싸움판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은 스승의 권위만으로 가능해지는 진정한 모방의 힘이다. 과연, 한국의 근현대 학문사는 스승들의 주검과 무덤 위에 초고속으로 뻗어올라간 눈치보기와 베끼기의 고층 아파트. ---p.130

그녀는 단지 한 명의 애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에는 너무나 야심만만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눈빛에서부터 어투에 이르기까지 요부(妖婦)로서의 재능이 충만했지만, 불행/다행하게도 동거하는 남자가 있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혁명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벤야민이 다소 비만한 몸을 꼼지락거리며 결코 기민하지 못한 동작으로 다소간 어눌하고 소심스럽게 키스해 줄 것을 요청할라치면 라시스는 그 고양이 같은 눈동자를 장난스럽게 번쩍거리면서 그를 피했다. 그러고는 애매하고 유약하다고 판단한 그의 형이상학을 들어 번번이 닦아세웠다: “그런데 문화의 대가라는 너는 도대체 어디에 서 있는 거야? 네 동생은 공산당에 가입했는데 왜 너는 하지 않는 거야?"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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