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나는 언젠가 노 제자 김승웅이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소재를 말하기 위해 쓴 다음과 같은
영화 `지바고 이야기`를?기억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건 일단 이해하기 쉬운
영화를 통해 문제의 핵심에 닿으려는 저널리스트 특유의,
훈련된 사고의 습속習俗)으로 본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애인 라라를 찾아 눈보라 속에
사경을 헤매는 주인공 지바고의 귀에 주민들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군인들에게 쫓기는 주민들이 질러대는 공포의 절규 소리입니다.
주민 가운데 노파 하나가 지바고를 향해 솔져, 솔져!(Soldiers, Soldiers!)를
외쳐댑니다. 군인들이 지금 한창 마을에서 노략질을 해대니
제발 좀 살려달라는 탄원이지요.
지바고가 노파에게 되묻습니다. White? or Red? (백군이오? 아니면 적군이요?)
여기서 백군(白軍)은 당시 제정(帝政) 러시아의 로마노프 황제를 따르는 정부군을
말합니다. 적군(赤軍)은 제정의 폭정에 반기를 든 러시아 혁명군입니다.
지바고는 지금 살육과 노략질을 해대는 군인들이 백군소속인지 적군소속인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노파는 그러나 솔져, 솔져!만을 반복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노파가 무서워하는 것은 군인 그 자체일 뿐
백군 소행이냐 적군 소행이냐는 관심권 밖인데도
먹물이 든 지바고는 엉뚱하게도?백이냐 적이냐? 만을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가 바로 그렇습니다. 여가 옳으냐 야가 옳으냐는 여야 캠프의 관심사는 될망정,
또 의사 지바고처럼 뭔가를 배웠다는 지식층들의 편 가르기에 불과할 뿐
정작 민초들의 관심에서는 훌쩍 벗어나 있습니다.
민초들은 정치 그 자체가? 싫은 겁니다. 노략질해대는 군인 그 자체가 싫듯이.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심한 정치혐오증을 앓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곁가지로 나갑니다만, 이따금 우리 후손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하고 자문할 때가 있습니다.
금속활자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 금속활자의 발명 년도보다 그 금속활자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앞당겨 진
사실을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 여깁니다.
같은 논리로 폭약을 처음 만든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보다
그 폭약이 유럽에 유입된 까닭에 중세 봉건주의가 깨지고 민족국가가 형성됐음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말씀입니다 ---p.9
영화가 끝날 무렵 주인공 안토니오는 아들 브르노의 손을 움켜 쥔 채
군중속으로 다시 합류, 원적原籍)을 찾는다. 감독 데시카가 이 영화에서 제시하려 시도한
점은 한 개인과 다중多衆)간의 관계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자전거 도둑을 두둔하는 동네 주민, 파업을 꾀하는 공산당원,
교회 급식給食)을 기다리는 빈민대열, 축구 인파, 출퇴근 집단... 이 모두가
인간 성품의 상한과 하한를 극명하게 표출하기 위해 서다. 영화속의 군중들은
`희랍적 합창`(greek chorus의 현대적 표현이다....그런 의미에서)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제목은 (오역誤譯)이며
원제(原題/Ladri di biciclette)대로 `자전거 도둑들`이 돼야한다는
프린스턴 대학의 조엘 카노프 교수의 주장은?옳은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가 자전거 도둑의 공범자라는 말이다 --p.32
사람이 산다는 것이 어차피 한편의 영화가 아닐까.
상영시간이 60~70년 정도 길다는 것, 또 누구든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다를 뿐, 인생?만사는 구질구질한 한편의 영화?스토리에 다를?바?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닿는다?---p.61
저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지각을 뚫고 내뻗은 쇠 철사 하나가
내 발끝에서 머리까지를, 마치 산적에 꼬치안주를 꽂듯 그렇게 처연하게 뚫게 될 것을
기대했다. 쇠 철사에 내 발등과 머리끝이 산적처럼 뚫리는 바로 그 순간,
좌절과 방황이 해소되리라 기대했다 --- p.210
내가 그토록 추구해 온 헤겔의 절대정신絶對精神)이, 그 무형무취의 형광물질이,
살아 역동하는 시대정신으로 바뀌는 결정적 대목이
바로 그 쇠 철사가 지각을 빠져나와 나를 관통하는 때가 되리라 기대했다.
그리되면 나는 편안히 눈을 감으리라!
해서 변경의 요체가 바로 이것임을 터득하리라...나는 마침내 변경을 극복하고,
더 이상 변경에의 유혹은 없으리라 기대했다 ---p.210
파리에는 대부분 새벽에 도착했다. 그 시간이면 운전대를 잡은 채
졸다 깨다 했는데, 저 멀리 에펠탑 위로 노랗고 붉은 파리의 새벽 상공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기 시작하면 내 가슴은 쿵쾅 쿵쾅 뛰기 시작했다.
차를 세운 후 저 멀리 새벽을 깨우는 파리 상공을 한참을 쳐다보곤 했다.
핸들을 꼬나 잡고 떨었다. 화려하게 떨었다.
살아 숨 쉰다는 것이 그토록 신날 수가 없었다 ---p.351
파리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19년을 훌쩍 넘기고 나서
이처럼 그 책의 원고교정을 보는 와중에서야, 그것도 지금처럼 60중반의
늙은이가 다 돼서야 아, 바로 그거였구나! 하고 만각晩覺)하는 것이다.
변경은 바로 내가 진리를 만나는 곳 이었다
---p.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