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 시간 측정 기술은 지금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 어쩌면 정확도가 너무 높아서 다른 기기와 시각 동기(同期, syncronization)가 불가능한 지경인 원자시계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 그러나 시계 제조 기술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물리학계는 “시간이 흘러간다”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철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1-1 현실 속의 시간」중에서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 시간이 ‘흐른다’고 표현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 전류의 흐름처럼 시간의 흐름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그런 척도는 한마디로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시간은 환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는 연구 주제 중 하나다. ---「1-1 현실 속의 시간」중에서
시간의 흐름에 대해 물리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리학자들은 오히려 시간이 그저 존재할 뿐 전혀 흘러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은 터무니없으며 시간을 강물의 흐름에 빗대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여기는 철학자들도 있다. 현실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대상이 어쩌면 이렇게 정체조차 불분명할까? 아니면 과학이 시간의 핵심 요소를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것일까? ---「1-2 신비한 흐름」중에서
물리 법칙은 시간이라는 변수를 포함해 만들어져 있지만 정작 시간이 무엇인지, 특히 과거와 미래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보다 기본적인 법칙을 파고들수록 시간이라는 변수는 점점 사라지고 희미해진다. ---「1-3 물리학의 핵심에 존재하는 허점」중에서
새벽에 꽃잎을 활짝 펴는 나팔꽃에게도, 가을이면 남쪽으로 날아가는 거위 떼에게도, 17년을 애벌레로 사는 메뚜기에게도, 매일 어딘가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에게조차도 시간은 절대적 요소다. 인간의 몸에서도 어디선가 생체 시계가 초, 분, 하루, 달, 해를 재고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상대방의 서브를 받아내는 데 필요한 몇 분의 1초의 움직임도, 비행기 여행 뒤의 시차도, 매달 여성의 호르몬 분비량이 조절되며 생리가 일어나는 것도, 감정적으로 계절을 타는 것도 모두 생체 시계의 지배를 받는다. 세포 시계는 삶이 끝나는 시간을 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다 되면 죽음이 오는 것이다. ---「2-1 삶을 지배하는 시계」중에서
생물학적 시간과 정신이 기억하는 마음의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심리적 시간이 하나의 어떤 신체 기관에 달려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속이라든가 시간적 순서에 대한 판단이 주로(심지어 전적으로) 뇌의 정보처리 과정에 의존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2-2 그건 언제였을까」중에서
시간에 대한 관념이 고무줄처럼 느슨한 문화권도 많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처럼 깐깐한 곳도 있다. 시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은 해당 문화권의 사회적 우선순위와 세계관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3 문화권과 시간관념」중에서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는 일은 과학과 기술에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기 때문에 보다 개선된 기술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 지난 10년의 발전은 특히 놀랍다. 최근 레이저(특히 노벨상을 받은 1,000조 분의 1초 레이저 빗)와 원자물리학 분야의 발전 덕분에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의 광학 원자시계가 개발되었다. (…) 현재 최고 수준의 원자시계를 이용하면 한 계단 정도의 높이만 차이가 나도 중력이 다르게 측정되고, 심장이나 뇌의 활동에 의해 형성되는 자기장이나 온도, 가속도 등도 측정이 가능하다. ---「3-1 시간 측정의 역사」중에서
아인슈타인이 이론을 세우고 이후의 실험에서 입증되었듯이, 시간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다. (…) 과학자들은 초고정밀 시계를 우주정거장에 설치해 상대성 이론을 검증하는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시계의 정확도는 10-18(우주의 역사 동안 오차가 0.5초 이내)으로, 과학자들은 상대성 효과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정확도로 전 세계의 시계를 동기시키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3-2 궁극의 시계」중에서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통상적 관념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물리학에서 시간의 역할은 다양하지만, 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시간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4-1 시간은 환상일까?」중에서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어떤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은 관측자의 속도와 관련이 있다. 사건은 공간이나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조합인 시공간(時空間, spacetime)에 의해 정의된다는 의미다. (…) 시간과 공간이란 “사라져버리는 운명을 타고난” 2차적 개념일 뿐이다. ---「4-1 시간은 환상일까?」중에서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아주 깔끔해서, ‘시간’이라는 요소를 정의하면 모든 관계를 시간에 연관지어 정의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움직임을 시간을 이용한 물리 법칙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우주라는 가구의 기본이 되는 요소라고 속아서는 안 된다. ---「4-1 시간은 환상일까?」중에서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를 (…) 4차원의 시공간으로 묘사한다. (…) 공간 안에서는 (중력과 물리적 장애물을 넘어서기만 한다면) 어느 방향으로건 마음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지만, 시간은 (의도적이건 아니건) 우리를 정해진 한 방향으로만 밀어붙인다. 미래라는 방향으로. ---「4-2 시간을 미래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중에서
‘루프양자중력(loop quantum gravity)’이라는 다소 어색한 이름을 가진 이론에 의하면, 공간과 시간은 작은 덩어리가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한 계산의 결과는 아주 단순하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이론은 빅뱅과 블랙홀 (black hole)에 연관된 헷갈리는 현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무엇보다도 실험을 통해 시공간의 원자(그런 게 정말 존재한다면)를 감지해내는 것이 머지않아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4-3 공간과 시간의 원자」중에서
세상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물리학자들이 자연의 상수(常數, constant)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렇다. (…) 이 값들은 마치 물리학 이론의 발판과 같아서, 우주라는 옷감을 규정하는 존재와 다름없다. 물리학의 발전은 이런 상수를 보다 정확히 측정해내는 일과 함께해왔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아무도 이런 상수를 속 시원히 설명한 적이 없다는 사 실이다. ---「4-4 값이 변하는 상수」중에서
“시간은 상대적이다”라는 격언이 “시간은 돈이다”만큼 유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시간이 관측자의 속도에 따라서 빨라지거나 느려질 수 있다는 개념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많은 업적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다. ---「5-1 시간과 쌍둥이 패러독스」중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계가 받는 중력의 크기에 따라 바늘이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진다(고도가 높은 데 있는 시곗바늘은 지구 중심에 가까운 시계보다 빠르게 간다). 다른 말로 하자면 위층에 사는 사람의 시간이 아래 층 사람의 시간보다 더 빠르게 간다는 뜻이다. ---「5-2 시간은 어떻게 가는가」중에서
비행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먼 거리를 이동해도 시간 지체는 (웰스의 소설에 나오는 시간 여행을 하기에는 턱도 없는) 10억 분의 1초 수준에 머무른다. 그러나 원자시계는 이 정도의 시간 지체도 측정해낸다. 그러므로 미래로의 여행은 비록 아주 먼 미래로가 아니라서 그렇지, 실현 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된 셈이다. ---「6-1 타임머신 제작법」중에서
1920년대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멀리 떨어진 은하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 무한한 과거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우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은하가 특이점(特異點, singularity)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작은 점으로 모여들어서 하나의 블랙홀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각각의 은하는 모두 크기가 0인 점으로 수축된다. 밀도, 온도, 시공간의 휨 같은 값은 무한대가 된다. 특이점은 우주의 이전(以前)이 존재할 수 없는, 궁극의 격변이 일어나는 곳인 것이다. ---「7-1 시간이 시작되었을 때」중에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선가 더 이상 ‘미래’가 없는 시기가 닥치지 않을까? 우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현대물리학은 그렇다고 답한다.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끝날 수 있다. 더 이상 모든 움직임이 있을 수 없고, 새로운 시작 같은 것도 없다. 시간의 끝은 모든 것의 끝이 끝남을 의미한다. ---「7-2 시간의 끝이 있을까?」중에서
과학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분석해가는 힘든 여정의 작은 발자국들이 모여서 그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시간의 종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우주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위치에 대해 더욱 감사하게 된다. (…) 시간의 끝은 상상이 가능하지만, 아무도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의식하는 것처럼 이를 직접 경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 사실 우리는 시간의 종말에 그저 앉아서 당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해자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에너지를 열로 바꾸며 우주의 쇠락에 일조하고 있지 않은가.
---「7-2 시간의 끝이 있을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