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겪을 때 보이는 반응이 고통 자체보다 당신이 장차 어떤 존재가 될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이 거침없이 원한을 분출할 때, 이 신랄한 원한이 부당한 해고보다 더 정당하다고 할지 모른다. “저 사람들이 내 인생을 망쳤어!”라고 그가 노발대발할 때 그를 영혼의 불구로 만든 것은 회사의 결정만이 아니라 그의 반응이었다는 사실이 20년 뒤에 확인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매일매일 우리가 하는 반응으로 지금부터 20년 뒤 어떤 인물이 될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상처받고 열 받고 배반당할 때마다 내 반응을 통해 장차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불평」중에서
확실한 믿음을 갖게 하는, 끝없이 어렵기만 한 시절을 견디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문제다. 즉 이런 시련(실업, 불임, 가출한 10대나 도망간 배우자, 설명하기 힘든 우울증, 굴욕적인 금전적 좌절)을 견디며, 여전히 살아 있는 훌륭한 믿음을 지닐 수 있을까? 이 엄청난 실망 단계를 지나 하나님은 선하시고 현명한 사랑의 존재라는 믿음에 여전히 매달려 있을 것인가?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인내심이 약해지고 영혼이 지치면 하나님은 선하고 현명한 사랑의 존재라는 믿음이 사라져 버릴까? ---「날 믿을 수 있겠니」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잊은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이야기를 적용하지 못한 것 같다. 아브라함의 여행이 그들의 여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몰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제 직접 경험해서 깨달으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사막에서는 “이론적인 지식”이 “경험적인 지식”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스스로배울 기회를 얻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신뢰를 배워, 신뢰를 무릅쓰고, 신뢰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그 기회를 거듭 놓쳤다. 우리가 보게 되듯, 하나님은 백성에게 점차 강경하게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분노에 찬 백성의 요구를 들어 주겠지만, 그들을 바로 잡기 위해 필요한 훈련도 시킬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염려하다」중에서
이런 별것 아닌 순간이 부모로서 우리가 직면하는 아주 중요한 시험이다. 우리는 어린애가 아니라 어른을 키우고 있음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버지로서 내 역할은 그저 고분고분한 아이를 기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내 과제는 마치 자기가 우주의 중심인 듯 행동하지 않는 어른으로 키우는 것이다. 내버려 두면,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은 자아도취적인 직원과 남편, 그리고 아내라는 길로 들어선다. 마치 계산대 앞에서 떼를 쓰는 아이처럼. 훈련의 목표는 위험 부담이 적을 때 그런 행동을 일찌감치 고쳐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데이트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사이에 위험은 점점 커진다. 자기중심적인 삶은, 그 사람의 영향력이 클수록 끔찍한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 ---「고통에는 보상이 있다」중에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수확물은 가장 피하고 싶은 바로 그 경험을 통해 자라난다. 가장 원하는 열매는 가장 원치 않는 땅에서 열린다. 광야에 들어오기 전에 뭘 했느냐, 특히 어떤 영적 습관을 길러왔느냐에 따라, 광야에서 어떤 수확물을 거둘지가 어느 정도 정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 연마하던 점진적인 영적 성장이야말로 광야에서 얼마나 변하고 성장할지 그 기초가 된다. ---「점진적인 성장」중에서
광야는 변하고 성장하는 데 좋은 기후를 제공해 주는 장소이다. 경제적 안정을 잃거나, 숨이 막힐 듯 비탄에 잠겨 표류할 때, 육체가 약해지거나, 중요한 관계가 깨어질 때, 우리는 광야에 들어선다. 그 광야의 토양은 지속적으로 깊이 변화하기에 완벽한 곳이다. 광야는 급격한 성장을 하기에 비옥한 곳이다. 하지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광야는 믿음을 잃기 쉬운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기억해보라. 변화와 성장은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광야에서 변하고 성장할 수도 있고 혹은 적대적인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로 광야에서 나올 수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결정해야 한다.
---「급변하는 성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