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이 독자들에게>
“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지만, 노래는 결국 대중의 것이다”
홍호표 박사의 논문 〈조용필 노래의 맹자적 특성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받아 읽었다. 내가 노래한 시대와 상황이 잘 드러나 있고, 내 노래를 이렇게 맹자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저자가 참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특히 지난 3년 간 집중적으로 나의 노래를 연구했다는 데 경의를 표한다. 10년 전부터 몇 분의 교수들께서 나의 음악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국내에서 이러한 박사학위논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지 싶다. 그 논문이 책으로 나온다니 더욱 반갑다.
이 책을 쓴 홍호표 박사는 내게 박사학위 논문을 주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면 고맙겠다고 했지만, 처음 읽고 난 뒤 솔직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꿈, 사랑, 동심, 친구, 자연 등 여러 주제를 놓고 내 노래를 분석했고 다른 노래들과 비교하면서 글로 잘 표현했다.
음악은 시대적으로 색깔과 유행, 표현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정서와 음악의 기본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홍 박사의 논문은 음악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가지 예가 있다. 때로는 막연한 추상적 꿈을 바탕으로 만들어질 때도 있고, 감동과 충격을 바탕으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낼 때도 있고, 자연과 환경과 기록을 바탕으로, 또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고, 때로는 내 주위에 있지만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음악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홍 박사의 이번 논문은 그 중요성에 대한 기초이자 구체적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그 시대의 역사다. 그리고 그 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강조하는 이번 글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지만 노래는 결국 대중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책임은 더욱 더 무겁다. 홍 박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08년 4월
조용필
인간 본성을 노래한 가수 조용필을 맹자의 시선으로 탐구하다
조용필 씨와 나는 30년 가까이 서로 마음을 읽어왔다. 조 씨가 가요활동 규제에서 풀려난 뒤 첫 공식 활동으로 1980년 1월 방송된 동아방송(DBS) 연속극 주제가 〈창밖의 여자〉를 부를 무렵 처음 만났다.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그의 음악과 생활을 지켜보았고, 조 씨 역시 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올해는 그의 음악계 데뷔 40주년이다.
나는 한 대의 국산승용차를 5년 넘게 타고 다니는 이 소박한 슈퍼스타가 가왕(歌王)으로 자리매김한 배경의 본질을 분석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대중음악 평론이 대부분 의식화와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이뤄져 특정 운동권 가수와 음악만이 떠받들어지고,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며 대중과 한마음이 되는 음악과 그러한 가수에 대해서는 ‘상업가수’라고 잘라 말할 뿐 본질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술과 문화계가 특정 이데올로기에 장악되면 대립과 갈등을 부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성 자체를 왜곡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가요와 가수 연구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그냥 이해하고, 노래는 노래 자체로 알고 즐겨야 바른 것이지 체제 전복을 위한 도구나 ‘굿’으로 보는 것은 인성을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나의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2008년 2월) 논문을 재구성한 것이다. 논문 제목은 〈趙容弼 노래의 孟子的 特性에 관한 硏究〉(A Study on Cho Yong Pil's Songs in Light of Mencius Tradition in Korea)다. 한국적 정서와 학문의 틀로 ‘조용필 현상’을 분석한 것이다. 학위논문은 맹자사상을 천인(天人)관계, 시련과 고난, 수양, 영광과 환희의 순으로 살펴보고 그 순서에 따라 조용필 노래를 성정(性情)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논문을 풀어서 비교적 읽기 쉽게 재구성한 이유는 맹자를 알고 조용필을 이해하는 방식도 있지만 먼저 조용필과 그의 노래를 통해 맹자를 접한 뒤, 맹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식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앞부분은 논문의 뒷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맹자 학문의 체계에 따라 보다 ‘학술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분들은 학위논문을 읽어보기 바란다.
2년 5개월여에 걸쳐 쓴 이 글은 학(學)을 통해 그 정점인 예(藝)와 악(樂), 그리고 인간본성을 알아가는 진심(盡心)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우리 민족의 정서에 뿌리를 박고 있는 유학의 도(道)가 과연 지금도 통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것이기도 하다. 도 또는 진리는 너에게 통하면 내게도 통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만 통하면 도라고 할 수 없다. 공부의 즐거움을 강조하고 예술에서 노닐었다는 공자의 말씀과 학문이란 인간본성을 되찾는 과정이며 음악은 인의(仁義)를 즐기는 것이라는 맹자의 말씀은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진리임이 입증됐다고 말할 수 있다. 즐거움은 결코 ‘바깥의 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었다. 이 글의 철학적 의미는 인식론이 주도해서도, 무용지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인식론의 ‘제자리 매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마음[天心]이 ‘뿌리’가 되어야 인식론이 비로소 제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2008년 4월
홍 호 표
--- 저자가 독자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