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관하여>
어느 시골 소녀의 상하이 화장실 찾아 삼 만 리
하얀 피부에 새까만 눈동자의 귀여운 시골 처녀 양하이링. 그녀는 작업장에서 뭇 사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인기녀이다. 하지만 어느 날 공장 직원들과 함께 한 상하이 연수 길에 도심 한복판에서 오줌을 참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그리고 그녀를 사모하는 모든 남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화장실을 바로 몇 미터 앞에 두고 바지에 오줌 꽃을 피우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화장실에 관하여>는 예자오옌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이고 영향력 있는 작품이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상하이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결국 바지에 싸고 마는 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화장실에 얽힌 일화를 통해 중국 현대사를 풍자하고 인간의 정욕과 생리의 본성을 날카롭게 그려낸 수작으로 손꼽힌다. 특히 픽션에 여러 고문헌과 각종 서적, 신문 기사를 인용하는 논픽션 요소를 파격적으로 가미하여, 화장실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인류학적 고찰에서 역사 비판까지 이끌어낸 최고의 ‘문화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연가>
어쩔 수 없이 무거우면서도 한없이 가벼운 현대 중국인 부부의 일상
시골 출신의 명문대생 츠친팅은 우여곡절 끝에 당 간부의 딸 무란과 결혼한다. 화장실도 없는 기숙사에서 아내와 아이, 보모까지 한방을 쓰는 팍팍한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신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집을 늘리고 돈을 벌수록 부부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각방을 쓰며 빠끔히 열린 문틈 사이로 서로를 관찰하는 처지에 이른다.
연애에서 결혼, 그리고 이혼 위기에 이르는 한 지식인 부부의 감정 변주를 따라가는 〈연가〉는 현대 중국을 살아가는 결혼남녀의 통속적인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부부관계라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별다른 사건이나 기법을 쓰지 않고 담담하게 기술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폐부를 찌르는 뻣뻣한 현실감이 생생하게 전해져,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남녀관계 화학작용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추월루>
침전된 역사의 모순을 등에 지고 산 중국 전통 지식인의 허무한 생애
만으로 칠순을 넘긴 딩 선생은 오늘도 추월루에 오른다. 한족이지만 만주족 왕조의 하급관리를 지냈고, 정치적 누명을 쓰자 일본으로 도망가 현지 아내를 맞이했으며, 지금도 50살이나 어린 첩을 곁에 두고 살지만, 어쨌든 그는 나라를 걱정하며 도덕과 민족적 대의를 지키려는 정통 선비이다. 그리하여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자 피난길에 오르고 싶은 자손들의 마음을 외면한 채 또다시 추월루에 오르고, 그를 보필하기 위해 누가 남을 것인가로 가족 간의 갈등이 시작된다.
1987~1988년 전국우수중편소설상, 제1회 장쑤문학예술상을 받은〈추월루〉는 자존심과 명분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전통 지식인 딩 선생의 생애를 통해, 1930년대 어느 명문가의 흥망성쇠를 그려낸 작품이다. 신사실주의 스타일인 냉정하고 객관적인 필법으로, 겉으로는 화려하고 역동적이지만 시대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에 중국 현대사의 모순적인 단면을 유연하게 녹여낸 수작이다.
<대추나무 이야기>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써내려간 한 여인의 파란만장 일대기
1950년 봄, 수십 년간 마을을 주름잡았던 비적 두목 바이롄이 얼융이 이끄는 공산당 토벌대에 사살 당한다. 그리고 비적 일당을 소탕한 토굴 아래에서 그의 애첩 슈윈이 두 팔을 올리고 담담하게 걸어 나온다. 일순간 얼융은 얼굴은 일그러진다. 하지만 한때 형의 아내였으나 그를 죽인 원수의 여인으로 살아온 그녀를 미워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복잡하게 뒤얽힌 과거사가 펼쳐진다.
예자오옌의 작가로서의 출세작이기도 한 〈대추나무 이야기〉는 수십 년간 마을을 주름잡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산적과, 자신의 남편을 죽인 자와 살아야 했던 여인, 그리고 형의 원수를 뒤쫓다 전설의 투사에서 파출소 소장이 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복잡한 중국 현대사의 비극이 되살린 작품이다. 특히 작중 화자의 시점을 바꿔가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구성으로, 남다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