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는 다섯 시 반에 집에 도착했다. 케익이 다 만들어졌는데도, 너무 서두르는 통에 나는 그에게 그것을 권하는 것초자 깜박 잊었다. 우리는 책을 찾기 위해 로켓이 발진하듯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밑줄을 그어놓은 책, 아니 가장 가까운 과거 어느 때에 밑줄을 그어 놓은 책, 그 책 마지막 쪽의 메시지를 찾기 위하여. 내가 무척 좋아하고 기다리고 사랑하다가 잊어버렸던, 그러나 완전히 잊지는 못했던 그 남자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다는 그 책을 찾아서 우리는 떠났다.
--- p.153-154
둘이 사는 삶에 행복한게 있다면, 그건 메아리가 있다는 점 이리라. 사랑을 통해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 p.
'나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게 순종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앞서 나온 것들보다 더 힘이 들어간 밑줄이였다. 연필때문에 패인 자국을 맨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약속한 적이 없었고, 그 사람은 나를 알지도 못했다. 게임을 하는 것엔 동의를 했다고 치자. 그러나 단지 게임을 하자는 거였지. 순종, 순종이라니...
--- p.41
나는,우리가 뭔가를 착각한 게 틀림없으며,두 개의 고독을 합친다고 해서 하나의 행복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음수(-) 더하기 음수는 여전히 음수예요.그건 수학이라서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 p.141
나는 얼마 전부터 새로 나온 5프랑 짜리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오늘까지 벌써 열두 개를 모았어요. 내가 보기엔 5프랑짜리 동전이 모든 동전 중에서 가장 예쁜 것 같아요. 나는 주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다니고, 머리털은 나 혼자 잘라요. 내 생활은 아주 초라하고, 나는 거의 똑같은 일을 매일 되풀이해요. 당신은 어떠한가요? 당신의 생활은 어떠한지요?
--- p.100
나는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사프로노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밑줄 긋는 남자가 그 도시에 들를 때를 생각해서, 어떤 책들의 몇 구절들을 골라 밑줄을 쳤고, 두세 줄의 짧은 글도 깨작거려 놓았다.
1973년판 <프티 로베르> 사전의 126쪽 세번째 단어는 <아탕뒤 Ateendu(e)>이다. Attendu,e : 기다러는, 기다리던... (변화없이 전치사로 쓰여)... 때문에, ...에 비추어. (용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품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Attendu que :(접속사구) ...이기 때문에, ...임에 비추어. (용례) 당신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 p. 180
나는 아름다운가? 나는 책을 놓고 욕실에 있는 거울을 보러 갔다. 나는 아름다운가? 파니는 아름답다. 나는 아름답다기 보다는 예쁜 편일 것이다. 그렇다, 예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사실 나는 성적 매력이 있다거나, 얼굴을 덮어 버릴 만큼 커다란 눈, 남미 여자 같은 몸을 지닌 그런 여자는 아니다. 내가 지는 것은 뭐든지 보통이다. 내 코의 곡선은 부드럽고, 눈썹은 짙지도 옅지도 않으며, 허리 둘레는 표준이다. 하긴, 나보고 아름답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한 남자, 어쩌면 두 남자가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남이 뭐라든 내 기준으로 보면 난 아름답다. --- p.40
둘이 사는 삶에 행복한 게 있다면, 그건 메아리가 있다는 점이리라.--- p54
나에게 필요 했던 것은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 주고 웃겨주고 껴안아 주는 일이었다. 사랑이 없으면 난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사랑을 통해 스스로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 p.56
나는 루카(친구의 어린 아들)가 토탈(일본 금붕어)과 의사 소통을 시작할 수 있게끔 일본어 두 마디를 가르쳐 주었다. <여보세요>를 뜻하는 <모시모시>와, 물고기가 너무 말썽을 피우면 그 말을 써서 잠잠하게 만들라고 <스시>를 가르쳐 주었다. ---p.138
--- p.
나는 강종강종 걸러 뛰며 읽다가, 그 사람과 마주치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밑줄 긋는 남자와의 첫 대면이었다. 76쪽 윗 여백에 한 마디 말이 연필로 적혀 있었다.
"당신을 위해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감히 도서관의 엄격한 규정을 어겼다. 책을 반납할 때 지젤이 즉석에서 검사를 하는데도, 누군가가 그 검사를 피해 간 것이다. 들키지는 않았다지만, 그래서 그가 얻는 게 무엇이었을까? 그는 도서를 대출 받지 못 하게 돼도 좋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의 글씨체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편이었다. 그 문장에 눈길을 붙박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젤이라는 그 아가씨가 그 낙서를 보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젤이 벌컥 화를 내면서, 잘못을 저지른 그 낙서자의 신청서 두 장을 찢고 그의 카드를 압수한 뒤, 위압적인 손짓으로 출구를 가리키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바로 <그> 의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데, 무엇에 비해 더 좋다는 말일까? 이 책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걸까? 아니면 독서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걸까? 그리고 그 귀뜀이 겨냥하고 있는 그 <당신>은 누구일까? 누구든 그 글을 읽는 사람? 아니면 나? 나를 모르면서 누가 나에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나는 윗옷을 입고 그 책 세 권을 가방에 담았다.
--- p.17
1973년판 [프티 로베르]사전의 126쪽 세 번째 단어는 <아탕뒤 Attendu(e)> 이다.
Attendu, e: 기다리는, 기다리던......(변화없이 전치사로 쓰여).....때문에, ......에 비추어.
[용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품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Attendu que: [접속사구] .......이기 때문에, ......임에 비추어.
[용례] 당신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 p.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