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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좋은 책

사랑하기 좋은 책

: 포개지고 번져가는 이야기들

김행숙 저 / 조성흠 그림 | 난다 | 2016년 07월 1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3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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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7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98g | 138*210*20mm
ISBN13 9788954641715
ISBN10 895464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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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읽는 책은 특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불투명한 연인의 마음 한 조각을 엿볼 수 있는 창문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당신이 접어놓은 페이지나 밑줄 친 문장, 그런 흔적들은 내게 당신의 영혼으로 건너가는, 허공에 걸린 흔들다리처럼 생각되었다. 언제 어디서 끊어질지 모르는 허술한 다리였다.
---「사랑의 도서관」중에서

그녀에게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용기. 그리고 자신의 ‘쌩얼’을 당당히 드러내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설 용기. 화장의 마법이 사라진 시간에, 더러운 재투성이의 얼굴을 깨끗이 씻고.
---「착해지지 않아도 돼」중에서

나는 언젠가 당신에게 사랑의 이상형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마음속에 그리는 이상형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 내가 궁금했던 것, 괴로웠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때 살도 피도 영혼도 없는 그 텅 빈 ‘이미지’를 얼마나 질투했던가.
---「당신의 이상형」중에서

사랑은 생물체 같은 것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활기活氣’가 있어야 한다. 사랑이 살아 있는 것일 때, 그것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기쁘고, 우울하고, 다시 기쁘고, 다시 아프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체온과는 또다른 종류의 열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불처럼 뜨겁고, 1994년 4월 23일의 바람처럼 따뜻하고, 지하 동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서늘하고, 심지어 북극의 얼음 바다처럼 차가워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것은 회사 앞의 버스 정류장을 세상에서 가장 가슴 떨리는 장소로 돌변시킨다. 그것은 높은 파도처럼 거칠고, 낮은 잔디처럼 잔잔하고, 가슴에 박힌 바위처럼 고집스럽고, 마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부드럽다. 그것은 걷고 달리고 날아오른다. 그것은 넘어지고 다치고 부서진다. 사랑의 운동이 정지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것이 부서져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사랑은 시작을 향해서도, 끝을 향해서도 꿈틀거린다.
---「생은 다른 곳에」중에서

손, 그것은 특별하다. 의과대 해부학 실험실에서 닐 슈빈 박사가 토로했듯이, 콩팥이나 쓸개를 대하는 감정과 손을 대하는 감정이 같을 순 없다. 누군가의 손, 그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저 손으로 무슨 일을 했을까. 무엇을 만졌을 때, 누구를 만졌을 때 저 손이 가장 행복했을까. 언제 저 손이 쓸쓸해졌을까.
내가 사랑에 빠진 날을 생각해요. 과녁의 한가운데 나의 붉은 심장이 들어 있었어요. 그날, 당신의 화살은 빗나가지 않았어요. 정확히 맞췄죠. 그런데 그날도 당신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어요. 너무 아팠어요.
---「내 안의 인어」중에서

나는 사람들이 놀이터라고 부르는 장소에서 놀이기구의 이름과 사용법을 익히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네’에 몸을 싣자, 새처럼 날아오르고 싶었어요.
나는 왜 현기증을 느끼면서 행복해할까요?
그네는 줄에 매인 새.
멀리 날아오를 수 없었어요.

내 마음속에도 ‘시소’가 있어요.
반대편에 앉은 당신이 너무 무거워 나는 허공으로 들려 올라갑니다. 내가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걸까요. 이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내게는 존재감이 필요해요. 존재의 무게를 가지고 싶어요.
갑자기 당신이 헛것처럼 가벼워져서 나는 땅바닥에 처박힙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어요.
햄릿처럼 나는 내게 말했어요. “내 영혼아, 제발 조용히 앉아 있자.”
그러나 인어에게는 영혼이 없다고들 말하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시의 운율처럼, 내 영혼의 움직임을 분명하게 느껴요. 누군가의 살결을 간절히 어루만지고 있는 것처럼.
---「시소와 그네」중에서

내 몸에는 당신의 흔적, 당신의 터치가 새겨져 있었다. 당신의 손길, 그 손길 아래에서 따스해지고 뜨거워지던 몸, 당신의 아랫입술, 잇몸, 등줄기, 옆구리의 흉터, 혀, 가슴, 발목, 어느 순간 더 부드러워지던 살결, 살결을 스치듯이 닿았던 당신의 숨결, 당신의 음성…… 사랑이 끝나고 만남이 끝나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촉각적 지대에 남겨진, 만짐과 만져짐의 흔적. 감각이 감정보다 더 끈질기게 살아남고, 감각 중에서도 촉각이 가장 오랫동안 우리 몸을 붙들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몸에 비문처럼 새겨지고 주름처럼 접히며 퇴적토처럼 쌓이는 것이다. 우리는 ‘만질 수 있고 만져질 수 있는 거리’를 서로에게 허락했고, 그 ‘안쪽’에서 서로를 애타게, 애타게 찾았다. 그 ‘안쪽’에서 서로의 떨림을 느끼며 우리는 포개지고 뭉개졌다. 거리가 점점 사라지는 거리, 시력視力이 무화無化되는 거리를 우리는 서로에게 허락했다. 나는 당신을 보지 않고 당신을 만졌다. 나는 당신을 보지 않고 내 살갗에 당신을 필사筆寫했다.
---「섹스와 사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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