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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읽는 교육사

시대를 읽는 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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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5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153*224*30mm
ISBN13 9788991758094
ISBN10 8991758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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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박미자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서 공부했다. 1985년부터 서울 공항중학교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있다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으로 해직되었다. 그리고 1994년 서울 남서울중학교 교단에 다시 서게 되었다. (사) 내일 청소년문화마당 대표로 활동하고, (사) 좋은 어린이집 희망세상 교육이사로 늘 교육운동을 했으며 2005년에서 2007년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통일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6.15공동위원회 교육본부 집행위원장, 북녘 어린이 영양빵 공장 운영이사로 활동화였다. 지금은 인천산곡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은책으로는 『우리아이를 살리는 신토불이 육아법』,『민족건강요법』,『투정많은 아이 친구많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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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나라가 없던 시대 일제시대

일본인이 되라

일어 교육 강화

일어는 학교에서 사용해야 하는 공용어가 되었다. 더욱이 언어교육을 체계화하는 어린 시기인 보통학교에서 교육할 때 모든 과목을 일본어로 교육하라는 규칙을 정하였다. 1911년 보통학교 규칙 제10조에 의하면 “조선어와 한문을 가르칠 때, 항시 국어(일본어)와 연락을 유지하고 때로는 국어(일본어)로 해석할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1922년 이후 일제는 보통학교와 고등 보통학교에서 조선어 수업 시간을 줄이고 대신 일본어 시간을 대폭 늘렸다.

1911년 8월, 일제는 제1차 조선교육령에서 우리말을 조선어라 칭하고 조선어와 한문이라는 교과목을 설정하여 조선어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동시에 일어를 국어라 명하고 그 사용을 강조하고 수업 시수를 증가하였다.

국어(일본어)는 국민정신이 깃드는 것으로서, 지식 기능을 습득하는 데 불가피한 것이므로 그 어떤 교과에 있어서도 국어(일본어)의 사용을 정확히 하고 그 응용을 자유롭게 함을 기해야 한다.

일본어를 알고 신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 변화를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자기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현상, 따라서 사람들을 중류층 이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일본어를 반드시 필수 과목으로 배우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일제는 1938년 3월, 3차 조선교육령에서 정규과목이었던 조선어를 선택과목으로 변경하고 4월부터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조선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학생이 학교 안에서 조선어를 사용하면 품행점수를 감하거나 벌금을 물리거나 처벌하였다. 학교 밖에서도 보도연맹원이 있어서 학생이 조선어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하면 불러서 야단을 치거나 학교에 연락하여 지도하도록 하였다.

내선일체

“천황 폐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분입니다. 천황 폐하는 우리나라를 다스려 주십니다” 보통학교 1학년용 교과서인 수신서 제18과의 내용이다. 수신교과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천황을 숭배하고 봉건적 순종이념을 교육하기 위한 교과과정이었다. 수신교과는 충, 효, 인 등 동양적 윤리를 일제의 천황을 중심으로 서술하여 가르쳤다. 학생들에게 일본 천황과 일본은 신성불가침의 존재라는 관념을 강요하였다. 수신교과는 학생들에게 과학적인 비판과 사고력의 발달을 저해하고 조선인을 일제에 동화시키기 위해 강요한 교과목인 것이다.

조선인에 대한 교육 기회의 제한

일제는 조선인의 지적 수준을 가능한 억제하여 조선인의 우민화를 꾀하고, 피지배 민족의 역할을 기르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차별교육을 시도하였다.

아! 빼앗긴 조국

서당과 야학탄압

일제의 탄압을 받아 사립학교가 문을 닫자, 조선 민중들은 서당을 설립하여 조선어와 조선의 역사를 교육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당시 서당은 조선시대에 운영되었던 서당과는 교육내용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한문과 사서삼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어와 조선의 역사, 그리고 근대적인 과학에 대한 소개가 주된 내용이었다. 특히 비밀리에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본거지의 역할을 하였다. 일제는 1918년 서당 규칙을 제정하였고, 다시 1929년 서당 규칙을 개정하여 사립학교와 마찬가지로 탄압하였다.

|1부2|

나라가 없던 시대 미군정기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온 미군

교육이념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을 제정할 때 상황은 36년 동안 일제 식민지 지배로 수탈당한 민중의 삶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도록 해야 할 구체적인 교육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또한 조국이 외세에 의해 분단될 위기에 처해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은 우리민족의 상황을 고려하기보다는 대단히 추상적인 교육이념이라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은 제정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국립서울대학교 설치안

국립서울대학교 설치안에 의하면 기존 학교를 폐지하고 새로운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학교에 근무했던 교수들은 자동적으로 해임되고 이사회의 결정권에 의거하여 자격심사를 통해 다시 교수임용을 받게 되어 있었다. 국립서울대학교 설치안에 대하여 한준상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천석의 증언대로 락카아드와 러치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이 국립대학 설치안은 한마디로 그 당시 문교관계 권력 장악 집단에 대한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교수 축출 운동의 서곡이었다. 결국 이 제도는 교수 재임용제도의 선례가 된 셈이었다.”

미군정에 대한 저항

미군정은 국립대학설치안 반대투쟁에 경찰력을 동원하여 무차별적하게 학생들을 공격하였다. 1947년 5월 12일, 미군정은 서울대학교 9개 대학 8,040의 학생 중에서 4,956명을 제명시켰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9개 대학 429명의 교수 중에서 380명의 교수들을 해임시켰다. 그러나 전 민중이 끈질기게 전개한 국립대학 설치안 반대투쟁은 일정 정도의 제도개선을 보장받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갈라진 교육

자주적 교원단체와 관변 교육단체를 중심으로

방학책

국민학교 방학책과 중학교 방학책을 발행하여 학생들에게 판매한 수익금으로 조선교육연합회 재정은 운영되었다. 1949년 겨울 방학책과 1950년 여름 방학책은 130만~160만 부를 발행하였다. 방학책 사업은 1980년대 말까지 해마다 대한교육연합회가 독점하는 재정사업이었다.

|2부|

절반의시대 1948-1960년대

피바디 사절단

제4차 미국교육사절단

제4차 미국교육사절단은 죠지 피바디 사범대학의 가슬린을 단장으로 하여 주로 피바디 사범대학의 교수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피바디 사절단이라고도 불렸다. 6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머물면서 한국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제4차 미국교육사절단은 문교부의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교과서 편찬자를 연수시키는 것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교육정책을 결정하였다. 그중 우리 교육현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는 사지선다형의 객관식 평가방법을 이식한 것이다.
교육현장에서는 사지 선다형20)의 객관식 평가가 생각하는 능력을 가로막는 암기일변도의 기회주의적인 평가라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사지선다형의 객관식 평가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자 교육 당국에서는 오지 선다형21)의 객관식 평가로 변화시켰던 기가 막힌 일이 있었다.

일어서는 교사들

한국교원노동조합 총연합회4.19 교원노조 활동의 의의
한국교원노동조합 총연합회는 평교사들이 주체가 된 역사상 최초의 교육운동이었다.
1960년 5월 17일 군사쿠데타 세력들은 한국교원노동조합 간부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여 1500여 명이 넘는 교사들을 감옥에 가두고 그중 8명을 기소하여 최고 15년에서 3년의 실형을 선고하였으며, 대부분의 교사들을 파면하였다.

|2부2|

절반의시대 유신정권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다

국민교육헌장은 모든 교육현장에서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지고 그동안의 교육이념이나 가치관, 교육법을 능가하는 권위를 부여받으며 군림하였다. 문교부는 국민교육헌장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학교교육과 성인교육을 통한 방안을 수립하였고, 교육과정과 교과서 내용을 개편하고 학생생활태도 확립을 전개하였다.
국민교육헌장은 초등학교 어린 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교육과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암기하도록 강제하였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교련 거부

이렇게 각 대학에 군사교육을 정규과목으로 배치한 이후 1971년 1학기부터는 종래 2시간이었던 교련교육을 3시간으로 늘렸으며, 집체교육을 부과하여 대학 재학 중에 반드시 71시간의 군사교육을 받도록 강제 조치하였다. 또한 교관을 예비역 교관에서 현역교관으로 전격적으로 교체하였다. 당시 국제정세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강제적인 군사교육 조치에 대하여 학생들은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학생들은 ‘교련철폐투쟁’을 선언하고 1971년 1학기 초 교련수강거부투쟁을 시작하였다. 1971년 4월 2일에는 연세대에서 1,000여 명의 학생들이 교련강화 반대대회를 열었다.

교육자의 양심

1978년 6월 27일, 전남대학교 송기숙 교수 등 11명의 교수들이 공동으로 ‘우리의 교육지표’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우리의 교육지표’는 국민교육헌장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교육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참다운 민주교육과 인간교육을 위한 지표를 제시하였다. 이들은 “국민교육헌장은 그 제정경위와 선포절차가 행정부의 독단적인 추진으로 진행되어 민주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며 일제의 교육칙어를 연상케 한다”라고 비판하면서

|3부|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 군부독재정권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셋째, 7.30 조치는 과외를 금지하는 대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비인간적인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강제하였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를 위해 학생들의 신체의 자유를 짓밟았다. 아침 일찍 등교하여 밤 11시가 넘도록 학교에 갇혀 야간 자율학습을 강요받게 된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다른 나라의 고등학생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학교 안에서 보냈다. 학생들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할 정도로 학교에 갇혀서 살고 있는 고등학생들의 생활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임용고시의 시작

예비교사들의 분노

교원종합대책안에 대한 예비교사들의 투쟁은 처절했다. 그들은 이 땅에서 교원을 양성하는 과정이 무한경쟁을 통한 시험으로 정착되면 아이들은 더욱더 경쟁적인 입시교육과 억압적인 통제를 받아 황폐화될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임용고시를 거부하고 발령을 거부하면서 투쟁하였다.

교육 민주화 운동

5월 10일

1986년 5월 10일에 YMCA 중등 교육자협의회 주최로 제1회 ‘교사의 날’ 행사가 있었다. 이날은 교육운동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교육민주화선언’이 발표되었다. 교육민주화선언은 서울, 부산, 광주, 춘천에서 교사모임 활동으로 연대해왔던 교사들이 참여하여 전국적인 규모로 진행된 교육운동이었다. 이는 1960년 한국교원노동조합이 강압적으로 해체된 이후에도 꾸준히 교사들의 교육운동 역량이 강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전국교사협의회

교육법을 개정하라

전교협은 결성과 동시에 교육법 개정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전국의 교사들을 결집시켰다. 교육법 개정문제는 1980년대 초부터 교육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오다가 1987년 전교협이 만들어지면서 주요한 사업으로 전개하였고, 1988년에는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교육법 개정안 내용으로, 1988년은 ‘교사의 노동 3권 보장, 교장의 선출임기제,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사립학교 교원의 신분과 권리 보장, 국정교과서제도 폐지’등을 시안으로 제시하였고,
1989년은 교사의 노동 3권 보장이 쟁점사항으로 집중되었다.

교사는 노동자다

손잡고 나아가자

1989년 5월 28일, 원천봉쇄를 뚫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깃발을 올렸다.34) 연세대 노천극장의 전교조 결성대회에서 사회를 보던 이수호 사무처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만약 우리의 아들, 딸들이 1989년 5월 28일 아빠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연세대 노천극장에 있었노라고 당당히 답하십시오” 교사들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모두들 “다음 세대를 위반드시 노조를 결성하고 사수하겠노라”고 맹세하였다. 교사들은 굴비 엮이듯이 묶여 끌려가면서 깨달았으며 다짐하였다.

전교조는 교육이념으로 ‘참교육’을 제시하였다. 참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큰 방향으로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화 교육을 전교조 강령으로 제시하였다.
참교육의 목적은 “소수 선택받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교육으로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여가기 위한 공동체적인 삶의 가치와 태도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

|3부2|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 문민정부

5.31 교육정책

수요자 중심 교육

김영삼 정부에서 발표한 5.31 교육개혁안에 의해 전 국민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교육의 공적기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모가 가진 경제적 조건에 따라 교육받을 기회가 달라지고 사교육과 조기유학이 급증하였다. 그동안 어떤 시대에도 할 수 없었던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으로 교육을 시장의 자유경쟁에 맡기는 정책을 도입하였다. 교육의 기본권과 공공성을 강조하는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5.31 교육개혁안’을 ‘교육시장화정책’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교조 해직교사 복직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학교로 돌아온 해직교사들은 조합원들과 함께 전교조 조직을 재정비하고 학교에서 진행되는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민주적인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실천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중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17)과 학교운영위원회 활성화 운동, 사학 민주화 투쟁은 전교조 활동의 중요한 사안이었다.

|4부|

신자유주의 시대 1998-2008

전교조 합법화의 의미

첫째, 교사는 노동자이며,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교사들의 자주적인 대중 조직체인 교원노동조합이 교육운동의 중요한 주체임을 증명하였다.
둘째, 교육운동은 전체운동과 밀접한 연대 속에서 발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전교조는 교육의 민주화와 참교육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건설되었으며, 전체 민중의 민주화 투쟁과 맞물려 교육민주화선언을 조직하고 전교협, 전교조를 결성하는 동안 전체 운동과 연대하여, 민중의 지지와 엄호를 받아 합법화되었다.
셋째, 전교조는 학교 현장과 광범위한 교사소모임에 근거하였다. 정부의 가혹한 탄압과 1500여 명이 해직되는 어려움을 넘어서 전교조를 건설하고 지켜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전국에 실핏줄처럼 연결되어있던 3000여 개가 넘는 교사 소모임에 있었다. 이들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겠다는 열망으로 희미한 복사물로 공부하고 지역에서 연대 사업을 실천하면서 활동가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교사 소모임 활동은 역사적으로 교사들의 교육운동을 튼튼하게 이끌어왔던 자부심이면서 동력이었다.

사립학교법 개정과 개악

사립학교법 개악

2007년 7월 3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은 야합하여 사립학교법 개악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 날, 지난 2005년 12월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을 지키고자 전국에서 올라온 수많은 교사들은 여러 날 밤을 새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두 당의 합의안은 “개방이사를 완전히 재단 측 인사로만 채울 수 있는 것을 법적으로 합법화하였으며, 족벌사학과 사학재벌들의 친인척 학교장 임명 허용하였으며, 종신 학교장 허용, 여러 이사장과 학교장 겸임 허용, 임시이사 임기 부활, 이사와 학교장 위법 방조 처벌 삭제” 등을 합의하였다. 이로써 족벌사학, 사학재벌, 종신 학교장 등을 통한 학교사유화가 다시 합법화되고, 부패사학에 면죄부가 주어졌다.

교원평가

다면평가

교육부와 정부당국에서는 교원평가의 목적으로 ‘교사의 전문성 신장과 학교교육 신뢰 회복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고 내세웠으며, 방법으로는 ‘자기 평가 뿐만 아니라 학생, 학부모는 체크리스트 형 설문조사 형식으로 동료교사, 보직교사, 교장, 교감에 의해서는 수업참관, 면담 등의 형식을 통해 교사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개별 교사에게 통보한다’고 제시하였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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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삶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으로 그칠 수 없다고 자신에게 질책을 거듭하던 10년 전, 전교조 남해 지회 강연회에서 박미자 선생님을 만났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교육현장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우리 역사 속에서 교육자의 시각으로 진단하고 이 땅의 교사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진지하게 토로하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의 강연 자료에 덧붙여 일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고민하고 실천했던 교사들의 삶을 책으로 발간하였으니,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이 책을 많은 선생님께서 읽어보시고 시대와 교사의 삶을 돌아보고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권성계 (경남 남해고등학교 역사교사)
저는 30대 초반의 초등교사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시절들이 생각나 눈시울도 붉어지고, 제 자신을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쉼표, 마침표까지 외웠던 초등학생 시절과 중학교 1년 시절 전교조 결성에 관련되어 수업시간 중 교단에서 연행되어 가셨던 도덕 선생님의 얼굴, 5.31교육개혁안을 분석하며 분노했던 교대생, 차등 성과급을 처음 받았던 교사 1년차…. 생각해 보니 저 또한 교육의 흐름과 시대의 흐름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만 시대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나 자신부터 시대의 주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새로운 정권의 시작과 함께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경쟁위주의 교육정책을 그저 바라보고 안타까워하기만 하면 안 되겠구나.’하는 결심으로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김보영 (서울 방학초등학교)
이 책을 통해 바른 교육을 위해 애써 오신 선배교사들을 만나면서 내가 이 땅의 교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역사라는 것은 준엄하고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 이름이후대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우리학교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공부하고 싶은 책이다.

박진희 (인천 갈산중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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