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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만난 레닌

지젝이 만난 레닌

: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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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top100 1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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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588쪽 | 942g | 153*224*35mm
ISBN13 9788991799325
ISBN10 8991799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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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역자 : 정영목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화여대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역서로는 『마르크스 평전』『호치민 평전』『신의 가면 3 : 서양 신화』『신의 가면 4 : 창작 신화』『파인만에게 길을 묻다』『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극단의 형벌』『권력의 법칙』『눈먼 자들의 도시』『눈뜬 자들의 도시』『행복의 건축』『책도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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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두 모델, 두 가지 양립할 수 없는 논리가 있다. 하나는 역사적 진화의 필연성을 따라 혁명이 “그 나름의 적당한 때”에 폭발할 순간, 최종적 위기가 무르익은 목적론적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혁명에는 “적절한 때”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 혁명적 기회가 나타나면 “정상적인” 역사적 발전을 우회해서라도 잡아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레닌은 의지를 앞세우는 “주관주의자”가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예외가 기준 자체를 바꾸어버릴 방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 이런 근본적 입장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시의적절하지 않을까? 우리 역시 정치적 행위자들을 포함하여 국가와 그 기구가 핵심적인 쟁점들을 점점 표현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p.19~20(머리말)

1. 진리로 나아갈 권리

오늘날에는 행동하라는 직접적인 요청을 따른다 해도, 이 행동은 허공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좌표 안에서 이루어진다. “민중을 돕기 위해 진정으로 뭔가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국경 없는 의사회, 그린피스, 페미니스트 운동, 인종 차별 반대 운동과 같은 (의심의 여지없이 명예로운) 훌륭한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행동은 경제 영역에도 침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예를 들어 생태 환경을 존중하지 않거나 아동 노동을 이용하는 기업을 비난하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 미디어는 이런 활동을 묵인할 뿐 아니라 심지어 지원하기도 한다. 어떤 한계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묵인하고 지원해주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활동은 상호 수동성, 즉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가 진짜로 일어나는 것, 진짜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의 완벽한 예다. 열광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정치적으로 올바른 등등의 이 모든 활동은 “계속 뭔가 변하게 해서 세계적으로는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게 하라!”는 공식에 들어맞는다. 일반적인 ‘문화 연구’가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하지만 이것은 할리우드의 자유주의적 편집증을 예증하는 규격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적은 단순히 자본주의와 국가 장치가 아니라, “체제”이고, 숨은 “조직”이고, 반민주주의적 “음모”다. 이런 비판적 자세의 문제는 구체적인 사회적 분석을 추상적인 편집증적 환상에 대한 투쟁으로 대체할 뿐 아니라, 편집증 환자의 전형적인 태도와 마찬가지로 사회 현실을 불필요하게 이중화한다는 것이다. ---pp.269~270

2. 유물론을 다시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입장과는 대조적으로 뻔뻔스럽고 용기 있게 마르크스주의는 “세속화된 종교”이고 레닌은 그 메시아라는 등의 지루한 고전적인 비판을 인정하는 모험을 하면 안 될까? 그렇다,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믿음의 도약을 이루어 그 ‘대의’에 완전히 참여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렇다, 마르크스주의의 “진리”는 중립적 관찰자가 아니라 이런 도약을 이룬 사람만 인식할 수 있다. 여기에서 외부성이 의미하는 바는, 그럼에도 이 진리가 보편적이며, 단순히 특정한 역사적 주체의 “관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부적” 지식인들이 필요한 것은 노동 계급이 사회적 총체성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은 외부적인 요소를 통해서 매개되어야 한다. ---p.306

3. 스탈린주의의 내적 위대성

스탈린의 테러를 스탈린주의가 배신한 “진정한” 레닌주의의 유산과 대립시키는 우스꽝스러운 게임은 중단해야 한다. “레닌주의”는 철저하게 스탈린주의적 개념이다. 그러므로 스탈린주의의 해방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잠재력을 이전 시대에 거꾸로 투사하는 행동은 우리 정신이 스탈린주의 기획 자체에 내재한 “절대적 모순”, 감당할 수 없는 긴장을 견딜 수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레닌주의”(스탈린주의의 진정한 핵심)를 레닌 시기의 실제 정치적 실천이나 이데올로기와 구분하는 것이 긴요하다. 레닌의 진짜로 위대한 점은 레닌주의라는 스탈린주의의 진정한 신화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치즘을 포함한 모든 이데올로기에 똑같은 말이 적용된다는 반박이 나올 것이 뻔하다. 나치즘 역시 안에서 볼 때는 “내적인 위대함”이 있었으며, 그래서 하이데거 같은 뛰어난 철학자도 유혹을 느꼈던 것 아닌가? 여기에 대해서는 우렁차게 아니라고 대답해야 한다. 요는 나치즘에는 진정한 “내적 위대함”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pp.318~319

4. 슈베르트를 듣는 레닌

레닌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듣다가 편집증적인 반응을 보인 유명한 사건(레닌은 처음에는 울다가, 그 곡을 들으면 너무 약해져서 적과 무자비하게 투쟁하는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진다고 하면서 혁명가는 그런 정서에 젖을 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을 그의 냉정한 자기 통제와 잔혹성의 증거로 들곤 한다. 그러나 이 일화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것이 정말로 레닌에게 불리한 주장이 될까? 오히려 그가 정치 투쟁을 계속하려면 억제할 필요가 있는, 대단히 민감한 음악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오늘날의 냉소적인 정치가들 가운데 감수성의 흔적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경우 레닌은 그런 감수성을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의 극단적 잔혹성과 아무런 어려움 없이 결합시켰던 고위 나치들(힘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늘 시간을 내서 동지들과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들었다고 하는 홀로코스트의 설계자 하이드리히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과 정반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닐까? 높은 교양과 정치적 야만을 아무런 문제 없이 결합해버리는 이런 최고의 야만과는 대조적으로 예술과 정치 투쟁 사이의 해소 불가능한 대립에 여전히 매우 민감했다는 점이야말로 레닌의 인간성의 증거가 아닐까? ---pp.330~331

5. 레닌은 이웃을 사랑했는가?

1937년의 한심한 독일 뮤지컬〈가스파로네(Gasparone)〉에서 젊은 마리카 뢰크는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약혼자에게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다고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자 즉시 대꾸한다. “나는 그이를 사랑해요. 따라서 내 마음대로 그이를 대할 권리가 있어요!” 이 진술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 사랑은 “존경”과 “사려”? 모두 차가운 거리감의 신호다. ? 를 보여주도록 강요하기는커녕, 외려 그런 형식적 태도를 버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일종의 백지수표를 주어 모든 야수적인 태도를 정당화해준다는 뜻일까? 아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기적이다. 사랑은 자체의 기준을 설정한다. 따라서 사랑의 관계 안에서는 이것이 사랑인지 아닌지가 금방 분명해진다(‘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들이 내가 어떤 사람의 진짜 친구라는 증거로 사용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p.374

6. ‘행동으로의 이행’에서 행동 자체로

관용을 가지라는 다문화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명령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중 구속이 작동하지 않을까? 여기서도 진짜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지나친 향락의 과시로 너를 역겹게 하는 혐오스러운 ‘타자’를 사랑하라! 이런 명령에도 반전이 덧붙어 있는데, 이것은 왜 자유주의적 주체가 이런 명령을 기꺼이 따르려 하는지 설명해준다. “그러나 학대는 종류를 막론하고 절대 불관용이다!” 즉 ‘타자’ 자신이 관용을 보이는 한에서 그에게 관용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타자’에게 보여주는 관용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관용이라는 우리의 관념에 맞지 않는 모든 (“근본주의적”인) ‘타자’들 ? 간단히 말해서 모든 실제 ‘타자’들 ? 을 향한 파괴적 분노로 넘어간다. 똑같은 논리가 가족의 안식처에도 적용된다. 자식들에 대한 무한한 헌신은 어머니의 희생에 감사할 줄 모르는 현실적인 자식들에 대한 파괴적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 구속을 향해 (자기) 파멸적인 ‘행동으로의 이행(passage al’acte)’이 폭발한다. ---p.385

7. 실재의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한다!

세계무역센터 공격 뒤에 이와 똑같은 공포의 “탈현실화”가 진행되었다. 피해자의 숫자 6,000이 줄곧 되풀이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실제 학살 현장을 거의 보지 못한다. 절단 난 몸도 없고, 피도 없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얼굴도 없다……. 이것은 제3세계에서 일어난 재난 보도와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런 보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섬뜩한 세목이 담긴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굶어죽는 소말리아인들, 강간을 당한 보스니아 여자들, 목이 잘린 남자들. 이런 장면이 나올 때는 늘 그에 앞서 “이제 보게 될 영상 가운데 일부는 매우 생생하여 아이들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그러나 세계무역센터 붕괴 보도에서는 이런 경고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것이 심지어 이 비극적인 순간에도, ‘우리’를 ‘그들’과, 그들의 현실과 갈라놓는 거리를 유지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진짜 두려운 일은 여기가 아니라 거기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할리우드만 물질 특유의 무게와 실체가 사라진 현실 생활의 겉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아니다. 후기 자본주의적 소비주의 사회에서는 “진짜 사회 생활” 그 자체가 어찌 된 일인지 연출된 가짜의 특징을 지니게 된다. 우리 이웃들은 “진짜” 생활 속에서 무대의 배우나 엑스트라들처럼 행동한다……. 자본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이고 탈정신화된 세계의 궁극적 진실은 “진짜 삶” 자체의 탈물질화이고, 유령극으로의 역전이다. ---pp.396~397

우리는 순수하게 악한 그런 ‘외부’와 만날 때마다, 용기를 그러모아 헤겔의 교훈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순수한 ‘외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이 증류된 모습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00년 동안 “문명화된” 서구의 (상대적) 번영과 평화는 “야만적인” ‘외부’를 향한 무자비한 폭력과 파괴를 대가로 산 것이었다. 잔인하고 무심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이런 세계무역센터 공격의 실제적 효과에는 현실적인 면보다 상징적인 면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세계무역센터 붕괴의 피해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로 사망한다. 그들의 죽음은 상대적으로 적은 돈만 있으면 쉽게 막을 수 있다. 미합중국은 사라예보로부터 그로즈니까지, 르완다와 콩고에서 시에라리온까지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매일 맛만 보고 있을 뿐이다. 뉴욕의 상황에 강간범 집단을 보탠다면, 또는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아무나 저격하는 여남은 명의 저격수들만 보탠다면, 사라예보가 10년 전에 어땠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pp.402~403

8. 폭력의 기능

이 자기 구타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첫 번째로 그 근본적 기능은 팔을 뻗어 진짜 ‘타자’와 관계를 재확립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주체성의 근본적인 추상이나 차가움, 컴퓨터 화면 앞에 혼자 앉아 온 세상과 의사 소통을 하는 외로운 단자적 개인의 모습에서 가장 훌륭하게 예시된다. 싸움의 폭력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게 해주는 인도주의적 동정심과는 대조적으로 이런 거리를 없애는 신호가 된다. 물론 이런 전략은 위험하고 모호하지만(폭력적인 남성 유대라는 원 파시즘적 마초 논리로 쉽게 퇴행할 수 있다), 이런 모험은 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주체성이라는 폐쇄 상태로부터 탈출하는 다른 직접적인 길은 없다.
따라서〈파이트 클럽〉의 첫 번째 교훈은 우리가 자본주의 주체성으로부터 혁명적 주체성으로 직접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고통받는 타자를 향하여 직접 손을 뻗는 행동으로 먼저 추상성을 부수어야 한다. 즉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상태, 타자의 고난과 고통에 눈을 가린 상태를 부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의 핵을 부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폭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p.437


9. 순수 정치에 반대하여

민주주의의 한계는 ‘국가’다. 민주적 선거 과정에서 사회체는 상징적으로 해체되어 순수한 수치상의 다중으로 환원된다. 선거인단은 하나의 신체, 구조화된 전체가 아니라, 형체 없는 추상적 다중, ‘국가’(바디우가 사용하는 이 용어의 두 가지 의미, 즉 다중의 대의적 통일체로서 국가와 자신의 기구들을 가진 국가라는 의미에서) 없는 다중이다. 따라서 핵심은 민주주의가 국가에 고유한 것으로서 그 기구들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이 의존성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바디우가 국가는 그것이 대표하는 다중과 관련하여 늘 과잉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민주주의가 구조적으로 간과하는 것이 바로 이 과잉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적 과정이 ‘국가’의 이런 과잉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착각이다.
그래서 반지구화 운동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자명한 것으로 언급하는 태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레닌의 궁극적 교훈이다. 역설적으로 이 방법으로만, 즉 민주주의를 문제 삼아야만, 다시 말해 그 개념 자체에서 선험적인(헤겔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사실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으로 될 수 있다. ---pp.483~484

10.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믿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간극, 실제 생산과 ‘자본’의 가상적/유령적 영역 사이의 간극, 경험적 현실과 사이버 스페이스의 ‘가상 현실’ 사이의 간극의 두 가지 판본 사이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단락이다. “마찰 없는 자본주의”라는 구호의 진정한 공포는 실제로 “마찰”은 계속되지만, 우리의 “탈근대적” 탈산업화 세계 바깥의 저편 세계로 눌려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화된 커뮤니케이션, 과학기술적 장치 등의“마찰 없는” 세계가 늘 바로 모퉁이만 돌면 전 지구적 재앙이 있다는, 언제 그것이 폭발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것이다.
매혹적인 스크린 속의 나와 스크린 밖의 “나”라는 비참한 육체 사이의 사이버 스페이스 간극은 자본의 투기적 순환이라는 ‘실재’와 궁핍한 대중이라는 칙칙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직접적 경험으로 번역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시장에서 우리는 유해한 속성을 박탈당한 일련의 제품들을 본다. 카페인 없는 커피, 지방 없는 크림, 알코올 없는 맥주……. ‘가상 현실’은 그저 그 실체를 박탈당한 제품을 제공하는 이런 과정을 일반화할 뿐이다. 이것은 그 실체가 박탈된, ‘실재’의 단단한 저항적 핵이 박탈된 현실 자체를 제공한다. 카페인 없는 커피가 진짜 커피가 아니면서도 진짜 커피 같은 냄새와 맛이 나는 것처럼, ‘가상 현실’도 현실이 아니면서 현실로서 경험된다. ---pp.496~497

11. “문화 자본주의”

핵심적인 통찰은 “문화 자본주의”가 총체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총체성 속에서 파악하려면 양극을 포함해야 한다. 문화적 경험의 생산만이 아니라 “진짜” 물질적 생산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의 특징은 문화적 경험 자체의 생산과 그 (일부분은 보이지 않는) 물질적 기초 사이의 분열, (극적 경험의) ‘스펙터클’과 그것의 은밀한 상연 메커니즘들 사이의 분열이다. 물질적 생산은 사라지기는커녕 여전히 여기에 존재하지만, 상연물 제작을 지탱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이 변화되었다.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적 인식에서는 성이 아니라 노동 자체(문화적 생산이라는 “상징적” 활동에 대립되는 육체 노동)가 공공의 눈으로부터 감추어야 할 외설적 상스러움의 장소로 보인다. 바그너(Richard Wagner)의〈라인의 황금(Rheingold)〉과 랑(Fritz Lang)의〈메트로폴리스(Metropolis)〉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노동이 지하로, 어두운 동굴로 내려가는 전통은 오늘날 중국의 굴라크로부터 인도네시아나 브라질의 조립 라인에 이르기까지 제3세계 공장에서 땀 흘리는 익명의 수백만 노동자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 덕분에 서방은 “사라지는 노동 계급” 운운하는 여유를 부리게 되었지만, 사실 주위에서 그 흔적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청바지에서 워크맨에 이르기까지 대량 생산품의 작은 라벨에 찍힌 “(중국,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과테말라) ……제조”라는 문구만 보면 알 수 있다. ---p.518


12. 사이버 스페이스 레닌?

따라서 오늘날 핵심적인 “레닌주의적” 교훈은 이런 것이다. ‘당’이라는 조직 형식 없는 정치는 정치 없는 정치다. 따라서 단지 (아주 적절한 이름을 가진) “새로운 사회적 운동”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답은 자코뱅이 지롱드의 타협주의자들에게 준 답과 똑같다. “당신들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고 있다!” 오늘날의 딜레마는 사회 정치적 참여에 두 가지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체제의 게임을 하며 “제도를 관용하는 대장정”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페미니즘에서부터 환경 운동과 인종 차별 반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사회적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운동들의 한계는 역시 ‘보편적 개별성’이라는 의미에서 정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운동들은 보편성의 차원이 결여된 “단일 쟁점 운동”이다. 즉 사회적 총체성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p.534

13. 탈정치에 반대하여

여기에서 레닌이 자유주의자들에게 접근하던 방식이 중요하다. 자유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과 대결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려고 노동 계급을 이용할 뿐, 그들과 끝까지 동일시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좌파 자유주의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인종 차별, 환경, 노동자의 불만 등의 문제를 제기하여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한에서 보수주의자들을 논파하려 한다. 시애틀에서 빌 클린턴 자신이 교묘하게 바깥의 거리에 있는 항의자들을 언급하면서, 경비를 받는 궁 안에 모인 지도자들에게 시위자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클린턴식 태도는 나중에 정교한 “당근과 채찍” 억제 전략으로 발전했다. ---p.541

공산주의 체제가 산업을 국유화했다면, 베를루스코니는 어떤 면에서는 국가 자체를 사유화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베를루스코니의 승리 밑에 잠복한 네오 파시즘의 위험에 대한 좌파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의 우려는 대상을 잘못 고른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파시즘은 여전히 결연한 정치적 기획이지만, 베를루스코니의 경우에는 밑에 잠복한 것이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감춰놓은 이데올로기 기획은 없다는 말이다. 그냥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갈 것이며, 자신이 더 잘할 것이라는 뻔뻔스러운 확언만 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베를루스코니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탈정치다. 모든 서방 국가에서 “탈정치”의 궁극적 증거는 정부를 경영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태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 올바른 정치적 수준을 박탈당한 채 경영적 기능으로 재고안되고 있다. ---pp.546~547

14. 회귀 대 반복

그 결과 레닌을 반복하는 것은 레닌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닌을 되풀이하는 것은 “레닌이 죽었다”는 것, 그의 특수한 해법이 실패했다는 것, 그것도 아연할 정도로 실패했다는 것, 그러나 그 안에 구해낼 가치가 있는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레닌이 실제로 한 일과 그가 연 가능성의 영역을 구분한다는 뜻이다. 레닌이 실제로 한 일과 또 다른 수준, 즉 “레닌 내부에서 레닌 자신을 넘어선” 것 사이의 긴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레닌이 한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지 못한 일, 그가 놓친 기회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pp.562~563

사실 “레닌”이라는 기표가 그 전복적인 날카로움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역할을 다했다, 중요한 결정은 거기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레닌주의적” 주장을 하면 바로 “전체주의”라고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사회학자나 심지어 바츨라프 하벨이 비슷한 주장을 하면 그들은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는다……. 이런 저항에 부딪히는 것이야말로 “왜 레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그런 내용을 형식화하고, 일련의 일반적인 개념들을 전복적인 이론적 구성체로 바꾸는 것이 “레닌”이라는 기표이기 때문이다.
---p.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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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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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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