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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걷고 싶은 길

유럽의 걷고 싶은 길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리뷰 총점9.3 리뷰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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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top2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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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판권 출간일자 :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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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532g | 153*224*30mm
ISBN13 9788983944627
ISBN10 898394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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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초원 위로 흰 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초록과 흰색의 조화가 낯설면서도 눈부시다. 지금껏 다녀본 어떤 산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다. 문득 한숨이 나온다. 지구는 도대체 아름다운 비밀들을 얼마나 많이 품고 있는 걸까. 나는 얼마나 더 세상을 떠돌아야 그 비밀을 다 보게 될까. --- p.57

걷을 때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좁아진다. 걷는 동안 나는 세계의 관찰자가 아니라 세상의 일부가 된다. 풍경 속으로 들어가 풍경이 된다. 걷을 때 내 몸은 진화한다. 걷다 보면 발이 절로 나아가는 순간이 온다. 의지가 몸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몸이 나를 이끌고 간다. 땅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든 동작에 어떤 무리도 따르지 않는다. 몸과 마음,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 조화롭다. 흐르는 물과 같다. --- p.75

15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만난 샤모니는 여전히 예쁘다. 나무로 받침목을 댄 집들마다 꽃을 내걸어 동네가 환하다. 발밑으로는 눈 녹은 강물이 경쾌하게 흘러가고, 눈 두는 곳마다 거대한 설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른 아침인데도 광장 주변에는 배낭을 메고, 로프를 매단 젊은 산꾼들이 가득하다. 안전벨트를 차고 프랜드를 비롯해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각종 장비들을 매달고 아이스엑스를 배낭에 꽂은 산꾼들. ‘30대에 10억 모으기’ 따위가 꿈의 반열에 오르는 시대에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 더 편하고 더 안락하고 더 빠른 것에 열광하는 시대에 몸으로 부딪쳐 느리게 이루어가는 성취를 즐기는 사람들. 모험이 사라진 시대에 모험을 찾는 사람들이다. 햇볕에 탄 그들의 얼굴이, 군살 없는 몸매가, 형형한 눈빛이 나를 설레게 한다. --- pp.154~155

오늘은 세 시간 걷고 짐을 푼다. 호수 옆 외따로 선 작은 호텔 인베러런을 본 순간, 그만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고즈넉하고 어여쁜 풍경 속에서 쉬지 않으면 어디서 쉬리. 호수 뒤로 펼쳐진 숲과 나지막한 산들, 외줄기 길 위의 하얀 집 한 채가 몽환적인 풍경을 이룬다. 작지만 아늑한 방의 창가에는 호수의 한쪽 끝이 걸려있다.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다 호수로 내려온 사슴 가족을 만났다. 내가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물을 마시거나 풀을 뜯으며 노는 사슴 다섯 마리.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그 자체로 평화로운 풍경을 이루는 사슴들. 하염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친다.
겉옷을 걸쳐 입고 호텔을 나와 물가로 내려간다. 양떼를 막기 위해 둘러놓은 철책 사이의 나무계단을 넘어 호숫가에 다가간다. 푸르고 시린 물빛이 눈앞에서 일렁인다. 호수 건너편 뾰족지붕이 어여쁜 저 집에는 어떤 얼굴이 살고 있을까. 물가의 그루터기에 앉아 마음껏 햇살을 쬔다. 여윈 가을볕이 따스하게 뺨을 어루만진다. --- p.213

윈드미어 호수와 주변의 마을,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완만한 구릉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온 몸을 붉고 노랗게 물들인 키 큰 나무들이 호수를 향해 달려갈 듯 서 있다. 구름 사이로 퍼져 나온 햇살이 나뭇가지 위에 머물고 있다. 초원을 가로지르며 걷는다. 양들이 풀을 뜯고, 오래된 돌집 농가가 이따금 정겹게 서 있다. 햇살이 비치면 초원과 단풍 든 나무들이 눈부신 빛깔로 살아난다. 그만 울고 싶어질 정도로 아름답다. 어디를 둘러봐도 나 혼자. 초원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이나 세고 저 양들처럼 풀이나 뜯으며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아무도 없는 빈 들판에 드러눕는다.
--- pp.273~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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