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자키가 모든 걸 자백했다는군.”
갑자기 기요미의 몸이 오므라들었다. 그렇게 보였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난다. 눈도 깜박거리지 않는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양팔로 자신의 몸을 꼭 감쌌다. 우자키에 대한 믿음과 의심. 그 두 가지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공범자가 있는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종종 사용되는 테크닉이다. 물론 이것은 정상적인 조사방법이 아니다. 구스미는 허위사실로 기요미를 딜레마에 빠뜨렸다.
자신은 공범자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있다. 그래서 상대도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상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각자 다른 장소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상대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 아무리 지워버리려고 해도 의심은 점점 커진다. 혹시 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의심은 한없이 증폭되어 모든 감정과 이성을 마비시킨다. 인간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자신 이외에는 믿을 수 없게 된다.
기요미의 상반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과 눈썹을 끌어올리는가 싶더니 반듯했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관자놀이에 퍼런 심줄이 드러났다. 콧방울이 벌름거렸다. 입술이 튀어나왔다. 잇몸이 드러났다.
다음 순간, 짐승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기랄…….”
두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두 번, 세 번, 네 번. 밤색 머리가 흐트러지면서 얼굴을 뒤덮었다.
“그 멍청한 녀석이……!”
구스미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요미를 쳐다보고 있다. 자기 작품의 완성도를 확인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기요미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들어올렸다. --- pp.150~151
“자, 여기부터 읽어봐.”
사내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켰다. 어른이라고는 아버지 이외에 동네 아저씨나 학교의 선생님밖에 몰랐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사내가 나쁜 짓을 강요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순순히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읽었다.
“내, 일, 까, 지, 이, 천, 만, 엔, 을, 준, 비, 하, 라.”
글자를 읽는 데 바빠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이제 겨우 글자를 깨친 어린애다. 사내는 일부러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를 골랐던 게 분명하다. 1학년은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해 노란 모자를 쓰고 있으므로 ‘도구’를 물색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잘 읽는구나. 다음은 여기야.”
이번에는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노, 란, 리, 본, 이, 있, 는, 벤, 치, 에, 올, 려, 놔, 라.”
그 뒤로 열 장 정도의 종이를 읽었다. 녹음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의식하지 못했다. 종이를 다 읽고 나자 사내는 야시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맙다. 정확히 10년 뒤에 여기로 오렴. 굉장한 선물을 줄 테니까. 그때까진 오늘 있었던 일을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집까지 뛰어갔다. 신사에서 멀어지면서 두려움도 점차 희미해졌다. 칭찬을 받았을 때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낯선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생각에 약간 흥분하기도 했다. 약속에 대한 기대감. 혼자만의 비밀을 지닌 것에 대한 설렘. 어린 가슴속에는 그런 감정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다음날부터 신사 옆의 지름길은 피해 다녔다. 그곳을 지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역시 마음 한구석에 뭔가 불길한 예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백중날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거실에서 방학숙제인 그림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일, 까, 지, 이, 천, 만, 엔, 을, 준, 비, 하, 라.’
얼마 전에 다른 마을에서 유괴사건이 일어난 것은 방학 등교 일에 교장선생님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몸값을 노린 유괴가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과 똑같은 나이의 여자아이가 나쁜 사람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놀라움과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노, 란, 리, 본, 이, 있, 는, 벤, 치, 에, 올, 려, 놔, 라.’
그 순간에 현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자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기억도 없다. 하지만 삽시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목과 귀까지 새빨개졌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장거리 달리기를 막 끝낸 것처럼 숨이 가빴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이미 여러 번 봤던 여자아이의 얼굴 사진이 크게 비춰지고 있었다.
--- pp.24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