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은 왜 신성한가?
기하학은 그리스어의 ‘땅을 측정하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땅을 측량하고 건축물의 치수와 구조를 계산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초로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이집트인이 선호했던 실용과학과는 달리 기하학은 논리학처럼 본질적인 진리를 다루는 학문이었다. 그들은 종교적 믿음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절대 진리의 차원에서 우주의 창조자를 생각했다. 그들은 신성한 수와 도형이 우주의 본질을 이루고 있으며, 창조란 추상적 형태가 물리적 실체로 변환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수의 신비성과 기하학의 절대성은 물리적 실체 이면에 숨어 있는 본질의 세계에 속한다고 믿었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의 공리와 정리를 상세하게 서술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저서 『원론 Elements』은 오늘날까지도 유용할 뿐 아니라 2천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록 이를 대신할만한 것이 없다. 플라톤은 실체의 본질을 나타내는 모든 현상이 단순한 입체기하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피타고라스는 신비한 수의 속성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하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이름을 딴 피타고라스 정리는 직각삼각형과 수의 관계를 보여주며, 이처럼 산술과 기하학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직각삼각형의 변을 측정해 보면 일련의 전형적인 정수 범위가 있는데, 이를 ‘피타고라스의 삼원수’라고 한다.
막대기 두 개로 지구 둘레의 길이를 구하다
오늘날 현대과학을 통해 밝혀진 사실들 중에는 이미 수천 년 전에 발견되었다가 중세 시대에 사라진 것들도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인데, 약 2천 년 전 이집트에 살았던 그리스의 기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단지 막대기 두 개로 지구의 둘레를 기막힐 정도로 정확하게 측정했다. 그는 오늘날 이집트의 아스완 근처에 여행을 갔다가 하짓날 정오에 태양이 바로 머리 꼭대기에 와 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이때는 태양이 1년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서 수직으로 뻗은 기둥에 그림자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오늘날 지도에서는 이 지점을 북회귀선이라고 한다. 1년 뒤 동일한 시간에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둥에 생긴 그림자의 각도를 측정했다. 그런데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에는 태양 광선이 평행으로 비치기 때문에 간단한 기하학을 이용하면 두 도시와 지구 중심과의 각도는 실제로 측정한 각도와 같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가 측정한 지구 둘레의 길이는 오늘날 값비싼 최첨단 기기를 동원해 측정한 값과 1.7%의 오차밖에 나지 않는다(26p).
원과 다각형 속에서 표현된 인체의 조화와 황금비율
이집트와 그리스 문명에서는 원, 타원, 삼각형, 사각형 등을 이용해 무덤과 사원을 비롯한 신성한 건축물을 만들 때 기하학적 비율을 고려하고 구조물의 위치와 방향 등을 결정했다. 기하학은 거의 모든 사물의 패턴을 도식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단순한 형태를 지닐 때 신성하게 취급되었다.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건축물을 설계할 때 수학적 비율과 기하학적 균형을 이용했는데, 그는 인체에 적용되는 비례의 규칙을 신전 건축에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술과 건축, 해부학을 동일 선상에서 바라봄으로써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원과 사각형으로 표현했다(129p). 미술에서도 마찬가지로 그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보면 그리스도의 머리에서 13개의 투시선이 뻗어나간다. 각각의 투시선은 12명의 제자들과 그리스도에 해당한다. 테이블 아래에 있는 타일 바닥과 지붕의 들보, 창문의 선들도 동일한 효과를 보여준다(147p).
자연 속에 숨어 있는 기하학의 신비
자연에 나타나는 나선과 프랙탈, 식물 성장의 패턴과 일정한 비율로 반복되는 형태는 모두 기하학 속에 숨어 있는 신비한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느릅나무, 벚나무, 배나무 등의 줄기에서 뻗어 나오는 잎의 성장 배열이나 데이지 꽃 머리에 나타나는 소용돌이 패턴은 피보나치 수열에 바탕을 둔 황금나선의 기하학을 보여준다(11p).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나선형 구조는 성장과 관련을 맺고 있다. 앵무조개와 암모나이트 껍질은 동일한 기하학적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나선 모양의 소용돌이가 바깥으로 갈수록 황금비율에 따라 증가한다. 포유동물처럼 몸체가 커질 수 없는 두 생명체는 일직선으로 성장하는 대신 자신의 주위에 더 큰 기실(氣室)을 계속 만든다. 이때 추가된 기실은 이전의 기실과 정확히 같은 비율의 크기로 로그나선의 형태를 따라 성장한다(66p).
일반적으로 프랙탈은 혼돈과 관련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질서정연하다. 겉으로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명확한 기하학적 원리에 의해 서로 뒤엉켜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하고 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프랙탈의 대표적인 사례는 눈송이와 구름의 움직임이다. 구름은 물이나 수증기가 공기, 먼지 입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생긴 고유한 속성에 의해 질서 있는 윤곽이 계속해서 재생산된다(60p).
황금비율로 이루어진 삼각형과 펜타그램
최고의 삼각형이라고 불리는 황금비율(φ = 1.618) 삼각형은 밑변 양끝의 각도가 72도이고 나머지 한 각이 36도인 이등변 삼각형이다. 이 삼각형의 밑변에 있는 두 각을 절반으로 나누면 새로운 삼각형 두 개가 생기는데, 이 삼각형들 역시 황금비율 삼각형이다. 이 과정은 끝없이 반복되며 그때마다 새로운 황금비율 삼각형이 만들어진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황금비율 직사각형과 로그 나선을 만들 수 있다. 꼭짓점이 다섯 개인 별 모양의 펜타그램은 예로부터 신비로운 도형으로 여겨졌다. 서양에서는 꼭짓점이 위로 향한 펜타그램은 종종 악을 물리치는 도형으로 사용되며, 반대로 두 개의 꼭짓점이 위로 향하게 되면 악의 표식으로 해석된다. 펜타그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꾸로 놓인 정오각형에 다섯 개의 삼각형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삼각형 각각의 밑변과 빗변은 황금비율로 이루어져 있다(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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