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한밤중에 손톱을 깎았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짱구영감의 옆에서 천천히 또각, 또각……. 그것도 최대한 큰소리로. 몸을 구부리거나 혹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또각, 또각……. 이불 위에 엎드려서 팔꿈치를 세우고 깎는 일도 있었다. 때로는 손톱만 깎기도 하고, 때로는 발톱까지 깎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똑같이 손톱을 깎으려고 하면 커다란 눈을 치켜뜨고 이렇게 소리쳤다.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임종이 뭐야?”
“그것도 몰라? 죽음 말이야, 죽음. 드라마에서 의사가 ‘임종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잖아.”
다음 순간, 나는 무서운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손톱깎이를 다다미 위로 떨어뜨렸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무 일 없는 듯 그 손톱깎이를 주워 들고 별로 자라지 않은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대낮처럼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짱구영감의 코앞에서. “고생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고, 편하면 손톱이 빨리 자란단 말은 거짓말이군.”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짱구영감은 어떤 심정으로 그 소리를 들었을까? 아무리 졸려도 결코 잠들 수 없게 만드는, 항상 타이밍이 어긋나는 그 소리를…….
_ 7~8쪽 중에서
짱구영감이 나타나고 며칠 후, 어머니는 도쿄(東京)의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길 어떻게 알았을까? ……응, 걱정하지 마. 난 엄마처럼 뜯기지 않을 테니까.”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석에 앉아 있던 짱구영감의 몸이 움찔거렸다. 어머니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노려보자, 짱구영감은 한쪽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채 헐떡이듯 물었다.
“뜯기다니, 그게 애비한테 할 소리냐?”
그렇게 말하는 동안 짱구영감의 몸은 계속 들썩거렸다.
“사실이잖아요.”
“너도 그 뺀질이 녀석한테…….”
어머니가 한숨을 토해내며 재빨리 짱구영감의 말을 가로막았다.
“미안하지만 그땐 뜯길 만한 돈이 없었어요. 이봐요,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죠?”
그제야 겨우 짱구영감의 들썩이던 몸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안 웃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불그죽죽한 얼굴을 들었지만 감겨진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_ 14~15쪽 중에서
짱구영감은 나에게 담배를 사오라고 할 때 복대 안에 몰래 감춰둔 오징어 색 쌈지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주었다. 50엔짜리 피스를 사오라고 하면서 “잔돈은 너 가져라.”라고 거만하게 말하며 50엔짜리 동전을 주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몇 번뿐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피스 한 갑 사와라.”라고 말한 후, 굵은 눈썹 밑의 강렬한 눈에 한층 힘을 주며 쌈지주머니를 꺼내기 기다리는 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돈은요?”
그러면 짱구영감은 바다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 쓸쓸한 녀석이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인디언 저금통에서 잔돈을 꺼내 담배를 사러 달려갔다. 짱구영감의 그 한 마디는 마법지팡이였다. 그때까지 나를 ‘○○한 녀석’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말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쓸쓸한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는 짱구영감이 차차 가르쳐주리라.
_ 26~27쪽 중에서
“짱구영감이 초밥집에서, 경주마 목장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지…….”
“경주마 목장이요……? 정말이에요?”
“물론 아무도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지.”
삼촌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유영遺影을 힐끔 쳐다보고 나서 “누나 말고는 말이야.”라고 덧붙였다.
짱구영감이 다시 집을 나간 이후, 삼촌은 성홍열로 인해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그때 어머니가 삼촌의 베개맡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곧 짱구영감이 좋은 말들을 이끌고 올 테니까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된다고.
“누나는 내 베개맡에서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속삭였지. 노부아키, 조금만 참아. 조금만 참으면 우린 목장 주인이 될 거야, 라고……. 그건 나를 격려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어. 누나는 목장 주인의 딸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손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지. 난 그때 생각했어. 여자는 정말 무섭다고. 딸이 저렇게까지 진심으로 믿는데 짱구영감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을까, 라고 말이야.”
_ 49~50쪽 중에서
차분히 하나씩 물어보자 짱구영감이 입을 열었다. 우선 오늘 먼동이 트기 전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그리고 어두운 길을 걷고 또 걸어서 아침에 시멘트 공장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짱구영감은 그 마을의 모래펄에서 피조개를 캔 다음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낮잠을 자고, 밀물이 밀려올 무렵에 다시 걸어서 집에 온 것이다. 시멘트 공장이 있는 마을까지는 전차를 타고도 3, 40분은 족히 걸린다. 더구나 집에 올 때는 무거운 양동이를 두 개나 들고 있지 않았던가. 짱구영감은 단지 다리가 튼튼한 것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집념의 투사인 것이다.
선명한 오렌지색 조갯살을 입에 넣은 순간, 입 안에 바다의 맛이 퍼져나갔다. 잠잘 시간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나와 어머니는 젓가락을 계속 움직였다.
“그런데…… 왜 전차를 안 탔어요?”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짱구영감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전차비가 없었겠지, 뭐.”
어머니는 이 말을 내뱉고는, 최근의 식욕부진은 어디로 사라졌냐고 말하고 싶을 만큼 입을 크게 벌리고 볼이 미어지도록 조갯살을 먹었다.
“우아! 맛있다!”
_ 103~104쪽 중에서
나는 창가의 스팀 위에 발을 올리고, 손으로 조개껍데기를 만지작거리며 밖을 내다보았다. 겨울의 새하얀 하늘 밑에서 나뭇가지가 혈관처럼 뻗어 있다. 피조개가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다니……. 짱구영감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태어나지 못한 내 동생보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입은 육체의 상처다……. 짱구영감의 그런 마음을 새삼스레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딸을 위로하는 방법치고는 조금 독특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조부인 짱구영감은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게 먼 곳까지 타박타박 걸어가서 모래펄의 강렬한 햇살 밑에서 모자도 쓰지 않고 오직 조개를 캐고 또 캐고……. 그리고 결국 무거운 양동이 두 개를 기다란 막대기 끝에 매달아 어깨에 메고 온 것이다. 누구의 눈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늙고 지친 노인이……, 실제로도 육체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는데.
돌연 눈동자 안쪽이 뜨거워져서 나는 손가락 끝으로 미간을 꼭 잡았다. 아마 어머니는 알고 있었으리라. 그것이 짱구영감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_ 109~110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