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지대 긴자’. 작가 하야시 후미코는 이곳을 이렇게 불렀다. 화려하게 치장을 한 게이샤들이 골목골목 해자를 밟고 걸어 다닌 길. 그 길과 골목 사이에는 문인과 게이샤들의 사랑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카구라자카는 서울의 신사동 가로수길처럼 바로 지금 최고의 유행을 타는 동네다. 도쿄이과대학과 명문 와세다대학의 사잇길. 프랑스인 학교가 있어 프랑스 마을로도 통하는 그곳엔 예쁜 주택가 골목골목, 에도시대 옛 길과 성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재 도쿄의 연인들이 데이트 장소로 즐겨 찾는 곳. 찾아가보니 카구라자카는 다이쇼시대 당시 도쿄에서 가장 화려했던 화류골목이었다 한다. 지금은 따뜻한 풍경을 가진 가로수를 따라 걷기에 그만인 장소지만 큰길의 뒤편으로는 여전히 요정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늦은 밤에 찾아가면 기모노를 갖춰 입은 게이샤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나는 일단, 신주쿠역에서 지하철 오에도선을 탔다. 여섯 정거장, 이다바시역에 내려 ‘신락판’의 이정표를 따라서 나가보니…
--- p.32, 이다바시→카구라자카 중에서
신주쿠를 산책한다? 일본에서 살아봤거나, 일본 여행을 많이 가 본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막 웃을 것이다. 그 동네를 뭣 땜에 걷냐고 물을 것이다. 난, 그래도 신주쿠가 최고다. 그래서 갈 때마다 걷는다. 왜냐고 물으면, 그냥 걷는다.
도대체 그 복잡하기만 한 동네의 매력은 무엇이길래, 무슨 이유 때문에 난 신주쿠를 이리도 사랑하게 된 걸까? 사랑도 보통 사랑은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도쿄를 찾으면 신주쿠에 숙소를 정하니까. 한심한 짝사랑인 것이다. 예쁜 료칸도 있고, 우아한 부티크 호텔도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 신주쿠라니.
그만큼 ‘신주쿠 양’을 짝사랑한다. 지겨워질 때도 됐건만, 신주쿠 양이 뿜어대는 주체할 수 없는 향기에 난 여전히 도쿄에 가면 신주쿠를 돌아다니게 된다.
--- p.46, 신주쿠→신주쿠산초메 중에서
“너, 오야코동 좋아하지?”
“응, 완 좋아. 완 맛있어. 왜?”
“오야코동 원조집 아는데, 갈래?”
“우와, 그래”
(점심시간이 1시까지였던 그곳은, 12시 20분까지 들어온 손님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오야코동은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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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교초는 일본의 여러 동네 중에서도 아사쿠사바시, 몬젠나카초 정도와 함께 분류된다. 바꿔 말하면, 도쿄 토박이들 중에도 아주 골수들만 찾아오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좁아터진 곳에서 술을 마시기 위해 신주쿠 고르뎅요코초를 찾는 것처럼, 에도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맛나는 먹거리 또는 직접 손으로 만들어 내는 수공 생필품을 사러 오는 곳이다. 그야말로 에도 정서의 거리. 또, 구석구석에는 오래된 경양식집, 디저트집, 카페들이 가득하다. 나이가 조금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해도, 한번 맛을 들인 젊은 사람들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철새처럼 다시, 또다시 오게 되는 곳인 것이다.
--- p.156, 닌교초 중에서
비싼 검은 택시 안. 난 공항에 내려 도쿄의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다. 택시는 왜 탔을까? 물론, 도쿄를 몰라서였다. 일본어는 안 되고 호텔까진 가야 했으니.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빨리 택시를 타는 일 뿐이었다. 정신없이 달리는 속도에 비례해 끝도 없이 올라가던 미터기를 노려보다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호텔로 가는 도중, 창밖으로 펼쳐진 예쁜 동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본능적으로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디스 플레이스 나마에와?”
말도 안 되는 이방인의 자포니시에 돌아온 대답이란, “아자부주반!” ‘주반? 주방?’을 읊조리며 알게 된 아자부주반. 롯폰기힐즈 바로 옆이지만, 쉽게 지나치기 쉬운 그곳엔 언제 찾아가도 사람 냄새가 폴폴, 맛있게 난다.
--- p.212, 아자부주반 중에서
무라카미 류의 소설 〈러브&팝〉은 도쿄 여고생들의 원조교제가 메인 테마다.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작가는 도쿄의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영혼들의 욕망과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다양한 종의 인간이 등장하고, 눈을 사로잡은 온갖 물질들, 예컨대 쥬얼리나 비키니 수영복, 휴대폰 같은 자본주의의 상징들이 난무하는 소설, 그 소모적인 글의 무대가 바로 시부야다.
시부야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시부야역 앞의 횡단보도다. 1000인치는 족히 넘을 멀티비전은 건물마다 매달려 최신 뮤직비디오를 틀어대고,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으로는 가수의 신보를 홍보하는 트레일러가 지나간다. 거미줄처럼 뻗은 여덟 가닥의 신호등에 파란불이 동시에 켜지면 수천 명의 인파가 한 번에 움직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가장 인파가 붐비지만, 가장 외로워 보이는 이들이 눈에 띄는 곳, 시부야. 얼굴에 태닝을 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는 ‘고갸루’들과 ‘야자’를 땡땡이 친 여고생들, 그녀들을 구경나온 이상한 아저씨들과 이십 대 젊은이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하나로 엉켜 가장 화려하고 외로운, 가장 ‘도쿄스러운’ 공기를 뿜어대는 곳. 그래서인가? 그곳의 산책은 조금 쓸쓸하다.
--- p.280, 시부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