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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1
리뷰 총점9.0 리뷰 9건 | 판매지수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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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505쪽 | 618g | 130*224*35mm
ISBN13 9788937461811
ISBN10 893746181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가족사를 담은 기념비적 대작
“내 평생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들어 있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원죄, 그 짐을 벗고 구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된 여정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전2권)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80, 181)으로 출간되었다. 흔히 존 스타인벡 최고의 야심작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두 가문의 세 세대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작품의 한 축을 이루는 해밀턴 가문은 존 스타인벡의 외가로, 주인공 새뮤얼 해밀턴은 그의 외조부를 바탕으로 한 인물이다. 존 스타인벡은 성서의 창세기를 모티프로 이 작품을 썼다. “살리나스 계곡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로 인류 전체의 축도를 보여 줄 것”이라고 밝힌 바대로, 『에덴의 동쪽』에서 그는 카인과 아벨, 선과 악, 원죄와 구원이라는 구도를 이끌어 와서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근본 문제를 깊이 있게 탐색하고 있다.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인간 앞에 던져진 모든 문제,
그 대답은 언제나 인간의 의지에 있다


『에덴의 동쪽』의 배경이 된 살리나스 계곡은 작가 자신의 고향이며, 주인공 새뮤얼 해밀턴은 실제로 그의 외조부를 바탕으로 한 인물로, 존 스타인벡 자신이 어린아이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창세기에서 영감을 받아 『에덴의 동쪽』을 썼으며, 인간의 원죄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 나아가 구원에 이르려는 끈질긴 노력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그가 “내 평생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들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책들은 이 책을 쓰기 위한 준비였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새뮤얼 해밀턴은 아내와 함께 아일랜드에서 미국 서부 살리나스 계곡으로 이주한다. 이들은 빈손으로 시작하여 척박한 땅을 일구고 이웃을 도우면서, 아홉 남매를 낳아 훌륭하게 키우며 살아간다. 새뮤얼은 비참한 상황에서도 좌절하는 법 없이, 언제나 긍정적인 사람이다. 자식들이 성장하여 하나 둘 외지로 나갈 무렵, 동부에서 애덤 트래스크가 임신한 아내 캐시와 이주해 온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읜 애덤은 모든 면에서 자신과 대조적인 이복동생 동생 찰스와 성장하다가 아버지의 강요로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방랑한다. 그 후 애덤은 고향에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지만, 찰스와는 달리 캐시와 결혼하여 서부로 간다. 그는 살리나스 계곡 부근에서 가장 좋은 땅을 사들이고, 새뮤얼의 도움을 받아 아내를 위해 그곳을 마치 에덴동산처럼 꾸미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냉담한 반응으로 보이던 캐시는 쌍둥이를 출산한 지 이 주가 지나자 만류하는 애덤의 어깨를 총으로 쏘고 떠나 버린다. 애덤은 실의에 빠져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쌍둥이는 중국인 요리사인 리의 손에 맡겨진다. 한편 캐시는 도시 살리나스로 나가 유곽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그곳 주인을 독살한 후 그곳을 운영해 간다. 쌍둥이 아론과 칼렙이 자라자 애덤은 살리나스로 이사하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벌인다. 유순하고 선한 아론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칼렙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유명한 유곽의 마담이라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한다. 그러다 직접 그녀를 찾아가서 자신이 그녀의 아들임을 밝히지만, 놀랍게도 그 후에 칼렙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끼며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이 소설의 주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팀셸(timshel)’이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히브리어로 어떤 가능성을 나타내는(Thou mayest(You may) 이 단어는 모든 것이 인간의 의지, 혹은 선택에 달려 있다는 주제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카인에게 얘기하는 원죄에 대한 내용은 성서마다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 혹은 “너는 죄를 다스려라”라고 달리 번역되어 있다. 전자는 인간이 죄를 극복하게 해 준다는 약속을, 후자는 극복하라는 명령을 의미한다. 그러나 원래 히브리어 ‘팀셸’은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로 해석해야 한다고 이 소설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의 인간 개인의 선택이자 의지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애덤은 용서를 구하는 칼렙에게 이 ‘팀셸’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작가가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재능과 진지함과 열정을 쏟아 부어 탄생시킨 작품.
《뉴욕 헤럴드 트리뷴》
하나의 환상곡이자 신화이며, 기이하면서도 독창적인 예술 작품이다.
《뉴욕 타임스》

회원리뷰 (9건) 리뷰 총점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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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팀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오*아 | 2015.06.11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교과서나 교회에서 ‘너는 다스려라.’는 말에서 명령조를 느끼고, 그 말에 복종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너는 다스릴 것이다.’라는 글 속에서 신이 예정설을 느끼는 사람들이 또 수백만 명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미래를 좌지우지할 순 없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하는 말은 다릅니다! 이 말은 인간을 위대하;
리뷰제목

교과서나 교회에서 ‘너는 다스려라.’는 말에서 명령조를 느끼고, 그 말에 복종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너는 다스릴 것이다.’라는 글 속에서 신이 예정설을 느끼는 사람들이 또 수백만 명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미래를 좌지우지할 순 없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하는 말은 다릅니다! 이 말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간을 신들과 동등한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한 행동이나 추잡한 행위 혹은 형제를 살상하는 잔인한 일에 있어서 중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인간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에덴의 동쪽』중

 

젊은 얼굴

[창세기]에 따르면 인류의 지상 낙원인 에덴동산에는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되는 어떤 나무들이 있습니다. 바로 '생명 나무'와 '선악 나무'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만든 모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뱀이 이브를 유혹합니다. 이브가 선악과를 따서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줍니다. 이브가 보기에도 선악과는 먹음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처럼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지요. 선악과는 선악을 아는 지혜의 나무를 말합니다. 이런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이제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마저 먹지 않을까 하여 하느님은 그들을 추방합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 하느님같이 영원히 살게 되지요.

그래서일까요? 존 스타인벡은『에덴의 동쪽』에서 만약 이 세상에 오직 한 가지 이야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이야기일까?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는 인간은 얽히고설킨 선과 악의 그물에 붙잡혀 있어 이것 이외에 다른 이야기는 없다고 합니다. 인간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인 먼지와 찌꺼기를 다 털어 버리고 나면 내 삶은 선한 것이었을까? 악한 것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소설과 시는 우리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끊임없는 대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악은 끊임없이 또 다른 악을 낳지만 선, 다시 말해 미덕은 불멸한다고 했습니다. 악은 항상 새롭고 싱싱한 ‘젊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미덕은 이 세상 무엇보다 숭고하고 ‘존엄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염소의 눈

소설 속 순종적인 애덤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는 피하거나 속일 수는 있어도 절대로 도전해서는 안 되는 경찰관이었습니다. 경찰관은 군인이 나약한 인간성에 채찍질을 하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하면서 아들에게 입대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용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체 제대를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는 오히려 부랑자 신세가 되고 말지요. 그는 인생의 커튼 뒤에서 슬픔과 불만으로 시간을 어둡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온 몸이 상처투성인 캐시가 느닷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그녀가 회복할 때까지 돌봤는데 그가 이렇게까지 행복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든 비로소 그에게 영광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먼저 그녀의 정체를 알기 때문에 그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죄를 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악의 연못에 있는 흙탕물을 더듬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까요. 문제는 악의 연못 밖으로 나올 때입니다. 보통은 악의 연못을 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녀처럼 너무 싱싱한 나머지 연못 밖으로 나오게 되면 괴물이 되어버립니다. 세상에 이런 괴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녀의 순진한 얼굴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금방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면 미녀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입니다. 유난히 차가워 보이면서도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는 텅 빈 눈. 그것은 결코 인간의 눈이 아닌 염소의 눈이었습니다.

 

카인과 아벨

그런데도 사랑한다면 충분히 품었을 의혹마저도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녀와 함께 바라던 지상 낙원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이란성 쌍둥이를 낳은 후 얼마 지나 지 않아 집을 나가려고 하자 자신을 말리는 그에게 총을 쏘고는 부상당한 짐승을 보듯 냉정하게 쏘아보며 집 밖으로 나갑니다. 이것으로 끝났다고 하면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케이트라는 이름으로 유곽에서 일합니다. 이렇게 그녀에 대한 환상이 깨지자 이제 자식들이 어떻게 자라날지 걱정되었습니다. 우선적으로 어떻게 이름을 지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자질에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높은 목표를 따라야 하는지 말입니다.

한번은 핏줄 때문에 애들의 이름이 ‘카인과 아벨’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동생(아벨)만을 좋아하는 것을 질투한 나머지 형(카인)이 동생을 죽입니다. 인간의 원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카인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아벨은 이야기에서만 살아 있으니까요.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좋은 변명이 됩니다. 그러나 애덤의 집안일을 돌보면서 율법학자를 따라 공부했던 리는 인간의 원죄라는 게 설득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유인즉 사랑을 갈망하는데 거부를 당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 자신을 거부한 사람에 대한 복수심으로 죄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카인의 후손 때문이냐? 아니면 우리 스스로 때문이냐? 과연 우리가 죄를 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런 고민에 앞서 우리가 죄를 짓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동물에게 좋고 나쁨을 요구하는 것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찰나적입니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동물과는 달리 “빨간 뺨을 가진 짐승”입니다. 선악을 알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죄인에 대해 겹겹의 잘못을 따져 가려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죄인을 어떻게 구원해야지는 오래오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쉽게 창세기 4장 16절, 카인에 대해 ‘너는 다스릴 것이다.’와 ‘너는 다스려라.’를 아무런 책임감 없이 반복할 뿐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미국식 표준성서에서 ‘너는 다스려라.’는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여기서 죄는 무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성경은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약속을 합니다. 신의 예정설에 따라 인간이 확실하게 죄를 극복할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팀셸’(timshel)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즉,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팀셸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이며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능력

“내 평생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들어 있다.”고 말한 작가는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지만 이러한 결점을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위대한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갈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방법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양식(良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는 좀처럼 만족하지 않는 사람도 그것만큼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 모든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는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 즉 일반적으로 양식 혹은 이성으로 불리는 능력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천부적으로 동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세상에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과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고독합니다. 그리고 고독한 마음속에는 지칠 줄 모르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자유로운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합니다. 선택은 인간 정신을 빛나게 합니다. ‘너는 다스려라.’는 룰(rule)의 방향을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팀셸(timshel) 쪽으로 틀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이것이 곧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인생이지 않을까요?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댓글 0
카인과 아벨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2017.08.1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은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 작가답게 『분노의 포도』로 이미 평탄이 검증된 작가이죠. 이번 작품 <에덴의 동쪽> 역시 전작인『분노의 포도』와 일맥상통하는 연장선에 놓여 있는 작품이지만 작가 자신의 가족사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 미국 역사 특히 미국;
리뷰제목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은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 작가답게 『분노의 포도』로 이미 평탄이 검증된 작가이죠. 이번 작품 <에덴의 동쪽> 역시 전작인『분노의 포도』와 일맥상통하는 연장선에 놓여 있는 작품이지만 작가 자신의 가족사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 미국 역사 특히 미국 서부 개척 역사를 담고 있는 대하역사소설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미미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고 여겨졌던 인간의 존재감에 한발짝 다가가고 있습니다. 작은 지류들이 모여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결국 인간의 존재와 그들의 삶의 방식들 각각 점점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역사라는 관점으로 그 개별 인간들에 대한 애착과 더불어 인간들의 자유의지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죠. 형식상으로 두 집안의 스토리와 시대의 변천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내러티브의 처음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전반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더 흥미진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에덴의 동쪽> 은 존 스타인벡 자신이 직접적으로 언급했듯이 자신의 작품 활동과 삶의 결정판과도 같은 작품이자, 기존 자신의 작품들은 바로 이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초석이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외가를 작품속에 중요한 비중으로 캐스팅하면서 작품에 대한 애증을 한층 더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서부터 제1차세계대전까지 사이러스 트래스크, 새뮤얼 해밀턴 양대 집안의 3대를 그리고 있는 대하역사소설로, 미국이라는 가치관 그중에서도 미서부가 가지고 있는 모멘텀을 진지하게 해부하고 민낮 그대로 보여주고 있죠. 여기에 존 스타인벡의 전형적인 사유인 인간의 삶, 자유의지, 희망을 모토로 작품 전반에 걸쳐 인간본연의 모습을 성찰하게 합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 의식, 카인과 아벨의 갈등 구조를 모델로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등 인생의 대립적인 양면성이 극명하게 표출되고 있죠. 존 스타인벡은 인간이 언제까지 원죄라는 굴레에 얽매어 있어야 하는지, 인간 스스로 죄를 다스릴 수 있는지등 (이게 이번 작품의 키포인트이기도 한데요, '팀셸' 에 대한 해석의 문제) 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기도 합니다. 당연하지만 그 해답으로 인간의 자각 인식, 관용, 인간애, 인간의 자유의지 등을 내러티브 전반에 깔아놓고 있죠.


          이번 작품은 마치 해밀턴 家 와 트래스크 家 두 집안의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촛점은 사이러스 크래스크 집안에 맞쳐서 있죠. 특히 2대인 애덤 크래스크가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역활을 부여 받고 있습니다. (물론 엘리아 카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에서는 칼 (제임스 딘) 에 촛점이 맞춰져 있지만요) 새뮤얼 해밀턴과 애덤 크래스크 두 집안의 각각 아일랜드와 미국 동부에서 이주해온 이방인으로 설정되고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서부의 현황을 바라보게 하는 심판자 비슷한 역활도 부여 받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 신의 한수라 할 수 있는 캐스팅이 있는데요. 애덤의 쌍둥이 아들도 아니고 새뮤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가 자신도 아니죠. 그것은 다름아닌 리(작품 말미에 찰스라는 이름이 등장하긴 하죠)의 캐스팅입니다. 리의 등장이야말로 이번 작품 내러티브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활을 하면서 제3자적인 시각에서 두 집안의 균형과 더불어 당시 미국 서부인들의 가치관 그리고 삶에 대한 근원적인 조타수 역활을 수행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바로 리 역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서부로 떠밀려온 이방인이라는 것이고 더욱이 백인이 아닌 당시의 인종적인 시각의 견해에서 비교대상이 될 수 없었던 중국인이라는 점에서 다시한번 존 스타인벡의 등장인물 캐스팅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어찌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작가 자신인 존이 챕터를 시작하는 나레이션 (이부분은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모든 독자들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의 역활을 수행하는 정도에 머물럿다면 작품에 기조에 깔려 있는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인간의 자유의지등 중요한 사유에 대한 해답들은 리를 통해서 끌어가고 있습니다. 달리보게 되면 리야말로 작가인 존 스타인벡의 현현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 애덤이나 칼 그리고 새뮤얼보다 더 애착이 가는 인물이기도 하죠. 한편으로 존 스타인벡은 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동서양의 가치관의 이질적인 부분들을 해소하는 모습과 노력들을 엿볼 수 도 있다는 재미도 있습니다.


          인간의 원죄,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인간의 자유의지등 인간본연의 사유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애덤의 쌍둥이 아들들에 대한 작명을 둘러싸고 애덤과 새뮤얼 그리고 리가 논쟁하는 장면이 압권으로 다가오죠. 히브리어로 '팀셸(timshel)' 이라는 말에 숨겨진 의미에 대한 새뮤얼과 리의 논쟁이 다름아닌 이번 작품에서 존 스타인벡이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유와 일치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애덤이 숨을 거두면서 팀셸이라는 말을 남겨두고 유명을 달리하죠. 이렇게 딱 두번에 걸쳐서 등장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와 '너는 죄를 다스려라' 혹은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 라는 각각의 해석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 준다는 논거인데요. 창세기 4장을 두고 기존 성서의 해석처럼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 라는 절대자가 언젠가는 인간을 죄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약속 내지는 인간에게 죄의 극복을 명령하는 의미를 가지는 일종의 피동적인 뉘양스로 해석되었지만, 리가 해석하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즉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미는 상당히 센셔이니셜한 뉘양스를 풍기도 있습니다. 이말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결국 다스릴 수도,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뜻인데요 결국 죄를 다스리는 것은 인간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점을 강조하죠. 죄 (원죄) 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다른 선택으로 죄를 다슬릴 수도 있고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존 스타인벡은 리라는 현현을 통해서 「인간의 자유의지」 를 만방에 선포하면서 그 어떠한 논리보다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버립니다. 그리고 바로 이점에 이번 작품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부분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반대편인 라이자와 올리브라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치밀함도 잊지 않고 있죠.   


          우리가 『분노의 포도』에서도 보았듯이 존 스타인벡의 근원적인 사유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의지 (톰 조드로 대변되죠) 에 대한 선택등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사유가 최우선으로 깔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 역시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서 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대하역사 드라마 같지만 그러한 서술들은 부차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작금의 현대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있는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찾게 해주는 바이블같은 명작이라 여겨지는 바이죠. 이러한 담론들을 걷어내더라도 이번 작품은 상당히 애정이 가는 작품입니다. 세밀한 인물들의 묘사, 당시 시대상을 짐작케 할 수 있는 각종 장면들 (마차의 시대를 접는 포드 자동차의 등장 그리고 당시 자동차 시동을 거는 복잡한 절차에 대한 서사등) 의 서사 그리고 간략하게나마 등장하는 작가 자신의 나레이션을 통해서 흐르는 강물 같은 군더더기 없는 서사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충분히 사로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노벨상을 수상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이번 작품에 대한 찬사는 결코 겉치레적인 멘트가 아님을 독자들 스스로 확인하게 되네요.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댓글 0
구매 에덴의 동쪽 1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재***네 | 2023.06.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존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은 성경을 좀 알고 읽으면 더 재미가 있고 모르고 읽어도 크게 나쁘지 않은 책인것 같습니다.이 책을 이십대초에 의무감에 읽어서 내용도 의미도 가물가물 하다면 오십대초반에 다시 읽으면서는 꼭꼭 씹는 맛으로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재미있는 책입니다. 좋아요. 좋아요 .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리뷰제목
존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은 성경을 좀 알고 읽으면 더 재미가 있고 모르고 읽어도 크게 나쁘지 않은 책인것 같습니다.이 책을 이십대초에 의무감에 읽어서 내용도 의미도 가물가물 하다면 오십대초반에 다시 읽으면서는 꼭꼭 씹는 맛으로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재미있는 책입니다. 좋아요. 좋아요 .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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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3건) 한줄평 총점 9.6

혜택 및 유의사항 ?
평점5점
머리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을 붙잡기 힘듭니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긍**넉 | 2019.01.16
평점5점
재미있어요 존 스타인벡 짱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디* | 2016.11.10
평점5점
머릿속은 복잡하지만...그럼에도 술술 잘 넘어간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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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w*******i | 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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