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들은 부서진 배에서 약 100m 떨어진 넓고 안전한 부빙 위에 캠프를 설치했다. 다섯 개의 텐트에 인원이 배정되었고, 각 대원들에게는 슬리핑백이 지급되었다. 기온은 영하 39도까지 떨어졌다. 가장 가까운 육지는 6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때의 일을 맥니쉬는 이렇게 적었다. "가죽 백이 18개 밖에 없어 우리는 제비뽑기를 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당첨되었다." 대부분의 고급 대원들은 질이 떨어지는 재규어 울 백을 뽑았다. 하지만 거기에선 조작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고, 일부 대원들은 즉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노련한 뱃사람인 베이크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비뽑기가 약간 조작되었다. 섀클턴 대장과 와일드 부대장, 워슬리 선장, 그리고 다른 고급 대원들 모두가 울 백을 뽑았기 때문이다. 품질이 좋고 따뜻한 가죽 백은 모두 일반 대원들의 몫이었다."
방수가 되지 않는 그라운드 시트 위에 누운 대원들의 머리 바로 밑에서는 얼음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밤새 들려왔다. 린넨 텐트는 너무 얇아서 하늘에 뜬 달이 보일 정도였다. 캠프가 설치된 부빙 아래에서 밤새 세 번이나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렸고, 그때마다 대원들은 텐트와 슬리핑백, 그라운드 시트를 재빨리 접어야 했다.
(...) 다음 날 아침, 섀클턴은 대원들을 소집했다. 그리고는 며칠 안에 북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스노우 힐이나 로버트슨 섬으로 간다고 말했다.
"항상 그랬듯이 그에게는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에 불과했다. 침몰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그는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아무런 감정이나 흥분을 보이지 않은 채 그는 말했다. 배와 물품이 모두 없어졌으며 이제 우리는 집으로 간다고." 맥클린은 그날 아침의 분위기를 이렇게 적었다.
행군을 하려면 세 척의 구명 보트 중 두 척을 끌고 가야 했다. 섀클턴은 모든 대원들에게 겨울 장비와 담배 500g을 지급했다. 그리고 각자 개인 소지품을 1kg으로 줄이게 했다. 하지만 허시에게만은 예외적으로 밴조를 갖고 가도록 허락했다. 대원들에게 '정신적 위로'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먼저 섀클턴 자신이 대원들에게 시범을 보였다. 그는 금화와 시계, 은 브러시와 여행가방을 얼음 위에 버렸다. 그리고 탐험 시작 전에 알렉산드라 황태후가 선물한 성경에서 기도문이 씌어진 여백지와 시편 23편이 들어 있는 페이지를 뜯어냈다. 또 다음 구절이 적혀 있는 욥기에서도 한 페이지를 뜯었다.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 pp 79~81
그날 저녁, 갑판에 있던 몇몇 선원들이 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어디선가 황제 펭귄 8마리가 배를 향해 조용히 다가왔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황제 펭귄들이 함께 몰려다니는 건 매우 드문 경우였다. 잠시 배를 바라보던 펭귄들은 갑자기 머리를 뒤로 젖히더니 섬뜩하고 기분 나쁜 소리로 길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들어본 불길한 통곡 소리였다." 워슬리는 이때의 기분을 이렇게 적었다. "도저히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마치 펭귄들이 인듀어런스 호를 위해 장송곡을 부르는 것 같았다.
"저 소리 들었나?" 대원들 가운데 가장 미신적인 맥리오드가 낙담한 표정으로 맥클린에게 말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긴 틀렸어."
10월 28일 오후 4시. 온종일 거세게 밀어닥치던 압력이 마침내 최고조에 달했다. 배가 한쪽으로 기우뚱거리며 쓰러지는 순간, 거대한 얼음이 키와 선미재를 맹수처럼 난폭하게 찢어버렸다. 갑판이 부서져 나가고 용골이 쪼개졌다. 바닷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고, 마침내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배가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오후 5시. 섀클턴은 배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개들을 대피시키고 모든 물품들을 얼음 위로 내렸다. 갑판 위에 서 있던 섀클턴은 떨어져 나간 엔진이 바닥에 구르는 것을 기관실 위창을 통해 말없이 지켜보았다.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섀클턴은 비통한 마음으로 기록했다. "뱃사람에게 배는 바다에 떠있는 집 이상의 의미가 있다...비명을 지르고 부서지고 온 몸에 지독한 상처를 입으면서, 인듀어런스 호는 천천히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헐리는 이미 물에 잠긴 리츠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고,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서둘러 배에서 내렸다. 온갖 소리들로 뒤범벅이 된 아수라장 속에서도 휴게실에 걸린 시계는 여전히 똑딱거리고 있었다.
섀클턴은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렸다. 그는 인듀어런스 호의 푸른 함기를 높이 들어올렸고, 얼음 위의 대원들은 다들 그 깃발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인듀어런스 호의 붉은 비상등이 마지막 인사처럼 조용히 깜박거렸다.
--- pp 7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