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대성공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다음 작품으로 생각되고 있던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을 쓰고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을 맡은 고교생의 연애 이야기였다. 땅을 파서 만든 강이 흐르는 물의 도시 후쿠오카현(福岡縣) 야나가와시(柳川市)를 무대로 상정된 기획이었지만, 행정과 민중이 하나가 되어 수로를 정화한 것에 착안한 타카하타에 의해 다큐멘터리 『야나가와 수로 이야기(柳川堀割物語)』로 형태를 바꾸게 된다. 미야자키는 전(前) 작품을 지원해준 타카하타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판권수입을 그 작품에 제공했다. 『야나가와 수로 이야기』는 1987년에 완성, 공개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다뤘던 환경문제의 바통을 타카하타에게 넘기는 형태가 된 미야자키는, 자신은 순수한 모험활극을 만들기로 한다. 그리하여 스위프트가 1726년에 저술한 『걸리버 여행기』 제3장에 등장하는 하늘에 떠있는 섬 라퓨타(더욱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플라톤의 유실된 지리지(誌) 『천공의 서(書)』에 기재된 라퓨타리치스)의 이미지를 빌려, 자유롭게 부풀린 『천공의 성 라퓨타』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원작 만화조차 지니지 않은 최초의 오리지널 작품이었다.
제작은 토쿠마서점이라는 단 하나의 회사로 덴쯔(電通)의 협력에 의해 총 제작비 8억 엔을 투입했다. 1985년 7월부터 각 스태프가 스튜디오에 참가, 총 인원 150명이 투입되어 1986년 7월에 완성, 같은 해 8월 2일에 전국에 공개되었다. 관객 동원 수는 77만 5천명.
미야자키가 전체의 4분의 1을 남긴 시점에서 그림 콘티에 냉수와 땀이 뒤범벅 된 자화상과 함께 ‘1시간만 더 줘’라고 적어둔 것처럼, 당초 90분으로 예정되었던 『천공의 성 라퓨타』는 2시간 4분 4초라고 하는 긴 작품이 되었다. 그것은 그 훨씬 뒤에 제작된 『모노노케 공주』의 러닝타임에 버금가는 시간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이어서 이번에도 타카하타 이사오가 프로듀서로서 미야자키를 뒷받침했다. 타카하타는 ‘전작(前作)보다 아동을 대상으로, 전작보다 저예산’ 이라고 하는 종래의 패턴에 빠져들지 않도록, 오락성 있는 대작으로 방향을 정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 기간의 배인 1년을 더 들였다.
또 타카하타는 이 작품 이후, 계속적으로 작품제작을 해 갈 수 있는 안정된 제작현장을 제안했다. 그것이 현실의 형태로 된 것이 스튜디오 지브리이다. 토쿠마서점의 토쿠마 야스요시(德間康快) 회장이 대표를 맡는 형태로 1984년 6월에 회사 등기를 끝내고, 1985년 6월에 도쿄도 내의 기치죠지(吉祥寺)에 스튜디오가 오픈되었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모두 이 곳에서 제작하게 되었다. 미야자키가 명명한 지브리라고 하는 이름의 어원은 이탈리아어로, 아프리카 대륙에서부터 지중해를 넘어 사막에 부는 열풍의 이름이다.
pp.38~39
실사영화처럼 역할을 연기하는 사람과 배경 세트, 소도구가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연출의 열쇠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그림 콘티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모든 장면에 그림 콘티를 만든다. 흐름도 보지 않고 콘티 체크도 하지 않는 연출가도 있지만, 미야자키는 스스로 펜을 쥐고 콘티를 근간으로 해서 만들어진 작화 전체를 직접 보고 수정한다.
미야자키 작품에 참여했던 어떤 스태프는, 한 편의 영화를 시작한 시점에서는 검은색이던 그의 머리카락이 점점 흰색으로 변하다가, 작품이 끝날 시점이 되어서는 백발이 되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대체로 혼자서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 콘티를 정하고, 끝난 레이아웃을 다시 전부 살펴보고, 원화에 연기를 붙이고, 수정한 것을 체크하고, 방침을 정하는 것까지 전부 혼자서… 보통 단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개인이 만든다고 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도 혼자서 전부 체크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장편 개인 영화죠. 구석구석 미야자키 하야오의 손길이 들어간 개인작품을, 넓은 작업실에서 스태프들이 거드는 정도랄까. 그럼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요. 따르려는 사람들도 모두 좌절하죠. 각본과 그림 콘티까지는 그렇다 해도 연출에서 원화 수정까지 전부 한다는 것은, 미야자키 앞에 미야자키 없고 미야자키 뒤에 미야자키 없는 형국이죠.”
-1998년 8월 간행 『유리카(ユリイカ)』 임시 증간 『총특집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에 수록된 전(前)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데스크 키하라 히로카즈(木原浩勝) 인터뷰 「특등석에서 본 미야자키 하야오(特等席から見た宮崎駿)」에서-
미야자키는 원화를 체크하고 리테이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쳐서 작화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는 증언도 있다. 또 철저하게 미야자키가 말하는 대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옛날에 자신이 어떻게 그렸는지 잊어버려서 다른 일을 맡으면 허탈한 상태가 된다는 스태프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미야자키의 일하는 모습을 납득하게 된다.
“미야자키가 전력을 다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거죠. 화면을 보고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담당한 사람이 실수했다고 밖에 볼 수 없으니까요.”
-『FILM 1/24 별책 미래소년 코난』 수록, 미술감독 야마모토 니조의 증언에서-
또 역으로 자신의 결점을 잘 알게 됐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말하는 스태프도 많다. ‘애니메이터를 하는 이상 반드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참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로망 앨범 엑스트라70 천공의 성 라퓨타』에 수록된 원화맨 와타나베 히로시(渡?浩)의 증언에서.
미야자키는 스태프 룸의 책상 배치부터 자신이 직접 생각한다고 한다. 매일 일을 계속해 가는 데 있어서는 개개인의 성격에 잘 들어맞게 배치하는 것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이미 그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pp. 294~296
앞에서 나는,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에서 하늘을 나는 것은 소녀만이 아니라고 썼다. 그렇지만 미야자키 캐릭터 중에서 일반 관객에게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주인공을 말한다면 역시 남자보다는 여자, 소년보다는 소녀들이다.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매력인 결의의 지속. 이것은 강한 남자들이 아니라 꾸밈없는 눈동자를 가진 가련한 소녀에 의해서인만큼, 보다 두드러지고 빛이 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전의 『미래소년 코난』이나 『루팡3세 카리오스트로의 성』의 공주 같은 히로인 때부터 그녀들은 도움 받는 쪽이라기보다는, 남자주인공이 언제나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심동체적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나우시카 역의 시마모토 스미(島本?美)가 영화의 앞 장면에서 설정 연령인 16세를 의식하고 연기하자, 미야자키는 그것보다도 부해란 장소에 공존하는 고요함과 긴박감에 걸맞는 목소리를 요구했다-『로망 앨범 엑스트라61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에 수록된 녹음 스튜디오 르포에서. 이렇게 해서 여성스럽게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의 목소리보다도, 내재적인 힘을 가진 목소리가 생겨난 것이다. 그는 녹음에서 ‘남자보다도 남성스럽고, 여자보다도 여성스럽게’라고 요구했다. 즉 초(超)소녀인 것이다.
미야자키는 다른 애니메이션 기획에 참고하기 위해 현대교양문고의 『그리스 신화 소사전』을 읽었을 때, 여기에 나온 ‘나우시카’라는 이름에 끌렸다고 한다. 이것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기원이 되고 있는데, 그가 좋아하는 파에아키아 왕녀 나우시카의 에피소드 중에,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해안에 던져졌을 때, 모두가 도망치는 가운데에서도 정성스럽게 간호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루팡3세 카리오스트로의 성』의 회상 장면에서 상처 입은 젊은 루팡 3세를 간호하는 클라리스의 이미지와 겹친다.
모두 강한 의지와 이를 지탱하는 침범할 수 없는 고귀함을 소유하고 있다.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반지를 끼고 있는 클라리스, 비행석이 담긴 펜던트를 걸고 있는 시타, 부해의 자정작용을 알고 있는 나우시카…. 미야자키 작품의 히로인은 이야기 세계의 비밀을 특권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그 나라의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을 따르지 않는 소녀를 거느리려 한다. 단 한 명의 소녀의 움직임에 모든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달의 사막을 표현한 로맨틱한 집에 클라리스를 감금한 카리오스트로 백작. 그 나름의 클라리스에 대한 애정의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백작으로부터 클라리스를 구하려는 루팡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퍼붓는다.
‘질투하지 마, 질투하지 마, 로리콘 백작!’
자신도 중년인 루팡은 자신의 감정을 백작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리콘(롤리타 콤플렉스). 아직 성숙하지 않은 미성년의 여성을 향한 사랑.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중년 이상의 남성이 지닌 무능력함이 뒤섞인 슬픔이 배어나오는 이 말이, 애니메이션을 본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그 심정이 그대로 전달되어 순식간에 동질화 되었다. 이것은 곧 로리콘 만화잡지의 잇단 창간과 연결되었다. 『루팡3세 카리오스트로의 성』의 인기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을 때, 고교생이었던 나는 애니메이션 팬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야, 너 로리콘이지’라고 하는 말이 화제로 등장하는 것을 듣고 ‘로리콘이 뭐지?’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애니메이션지 『ANIMEC』 1981년 4월 호에는 로리콘 특집 「‘로’는 롤리타의 ‘로’ - 미소녀를 원하는…」이 실렸다. 표지에는 클라리스를 지키는 루팡의 모습이 실렸고, 메인 기사타이틀은 「클라리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였다.
pp. 32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