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똥을 누려면 여간 힘들어하는 게 아니니 혹여 몹쓸 병이라도 생긴 게 아니냐며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진료실로 들어서는 엄마들이 더러 있다. 이럴 때면 나는 우선 아이가 부모님이 사용하는 변기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지의 여부부터 묻는다. 물론 내가 이렇게 하게 된 데에는 미국 화장실에서 직접 경험했던 사건의 공이 크다. 어린아이들이 어른들과 같은 변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두 발이 지면에 닿지 않아 대롱대롱 매달린 채 응가를 눠야 하는데, 이는 배변을 어렵게 해 변비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이 굳이 어른이 쓰는 변기를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변기 밑에 두툼한 책을 놓아두거나 해서 어린아이들의 발뒤꿈치가 지면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단단히 고정될 수 있게끔 해주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 pp. 14~15
방귀 냄새가 구린 건 대장 내의 웰치균 같은 단백질 분해균과 부패균이 만들어내는 황화수소나 암모니아, 인돌, 스카돌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방귀의 주성분인 질소, 수소, 탄산가스에는 냄새가 없다. 고기나 생선 같은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섭취할 경우, 대장질환이 없더라도 악취가 나는 가스가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방귀 냄새가 구릴 수 있다. 변비 등으로 인해 똥이 내장 내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을 경우에도 부패와 발효가 왕성해져 가스가 만들어지기 쉽다. --- p. 53
똥이란 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말 중에 ‘대변(大便)’이란 말이 있다. 배웠다거나 점잔을 빼는 사람들이 분명 ‘똥’보다는 자주 쓰는 단어가 ‘대변’임에 틀림이 없다. ‘대변’, 그 뜻풀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똥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란다. 어이쿠, 속에서 열불이 나고 환장할 지경이다. 냅다 컴퓨터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쳐도 좀처럼 분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똥을 일본식 한자어인 ‘대변’이 순우리말인 ‘똥’보다 젊잖게 이르는 말이라니, 도대체 이런 망발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뜻풀이도 그렇거니와 발음 역시 못마땅하기는 매한가지다. ‘대변’하고 발음해보면 어딘가 건조하고 밋밋한 느낌이 들고, 나긋나긋하다거나 구수한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순우리말도 아니거니와 발음마저도 형편없는 말을 우리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떠받드는 이유를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 pp. 60~61
대장수술이나 대장내시경검사를 하기에 앞서 환자에게 설사를 유도하는 약을 먹여보면 숙변의 존재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대장을 말끔히 비운 후 속을 들여다보면 발그스름한 색깔을 띤 대장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물론 눈을 씻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숙변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숙변이 있다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무게가 4킬로그램에서 무려 10킬로그램까지 나간다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이들도 있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발견되지도 않거니와 이론적으로도 숙변이 존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장의 가장 안쪽인 점막은 미끌미끌한 점액으로 덮여있을 뿐만 아니라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꿈틀대는 연동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장에 무슨 수로 똥이 그리 오랜 시간동안 달라붙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 pp. 82~83
대장내시경 검사의 중요성이 거론되는 것이 식생활의 서구화니 뭐니 하는 것으로 인해 대장암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 것만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거다. 물론 전혀 빗나간 생각이라고 할 수 야 없지만, 그렇다고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대장내시경검사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오로지 대장암의 특이한 습성에 기인한다. 암은 처음부터 암의 특성을 가진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대장암은 버젓이 암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니면서도 여느 암과는 다르게 80퍼센트 이상이 별것도 아닌 용종에서 비롯된다. 이런 용종이 암으로 변하기 전에 대장내시경검사를 통해 제거한다면 대장암이라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 pp. 115~116
직장수지검사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대장은 상행결장, 횡행결장, 하행결장, 에스상결장, 직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헌데 전체 대장암 중 직장암이 약 43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미국 암연구소에 의하면 항문 끝에서 12센티미터 이내에 있는 암을 직장암이라고 일컫는다. 다시 말해 전체 대장암의 절반가량이 손가락 끝에서 만져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래도 손가락을 사용하는 의사를 돌팔이 쳐다보듯 할 것이며 직장수지검사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형편없는 검사방법이라고 홀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 p. 158
사촌이 땅을 사면 정말 배가 아프다. 결단코 비유적으로 쓰인 말이 아니다. 배가 아파지는 이유는 애초에 사람의 몸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의사와 과학자들은 장의 움직임이 주로 자율신경계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과 자율신경계는 사람의 감정 상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밝혀내게 되었다. 그러니까 장운동은 사람의 의지나 이성보다는 슬프다거나 기쁜 것과 같은 감정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공포, 분노, 시기심, 경쟁심 등 온갖 종류의 감정과 정서가 두루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 pp. 20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