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는 책이 적지 않다. 동서고금의 명저를 소개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책의 역사를 담은 책도 있고, 독서의 방법이나 역사를 알려주는 책도 있으며, 책에 얽힌 갖가지 일화를 말해주는 책도 있다. 외국의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는 그런 종류의 책들을 Book and Reading이라는 별도의 장르 혹은 키워드로 분류해 놓기도 한다. 조사 결과가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책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책과 독서에 대해 각별한 감정과 생각을 지닌 분들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여기 소개하는 <책 속에 숨어있는 99가지 책 이야기>는 격주로 발행되는 출판 및 서평 전문지 <출판저널>에 5년 동안 연재되었던 '재미있는 책 이야기'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 잡지 연재 기사였던 만큼, 책 및 독서와 관련한 거의 모든 주제를 포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편이 재미를 더해준다. 책과 관련한 동서고금의 갖가지 일화는 물론이거니와, 저명한 작가나 사상가들이 책을 주제로 집필한 글과도 만날 수 있다. 대부분 다른 책의 글을 발췌, 인용해 놓은 것들이지만 발췌와 인용도 제대로 하자면 쉬운 일이 아니다. <무소유>에 실린 법정 스님의 한 마디.
'나는 이 가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어지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내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한 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 준다.'
이 밖에도 조지 오웰, 사르트르, 발터 벤야민, 보르헤스, 마르셀 프루스트, 모티머 애들러, 엘리아스 카네티, 서머셋 몸, 파아게, 모리스 쿠랑, 미하일 일리인, 네루다, 이율곡, 정다산, 이태준, 이광주, 김현, 황동규, 공진석(이 분은 '공씨책방'의 주인이었다. 공진석 선생(1940-1990)과 '공씨책방'은 우리 나라 헌책방 문화 및 역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등이 집필한 책 및 독서 관련 글과 만날 수 있다.
책과 관련한 고금의 흥미 있는 일화들도 적지 않다. 힐데만 줄리우스라는 사람은 책제목과 표지만을 바꾸는 일로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한다. 판매량이 저조한 2천 종 이상의 책을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어 재출간하여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예컨대 그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황금양털'을 '금발머리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연간 600부에서 5만 권으로 판매량을 증가시켰고, 쇼펜하우어의 '논쟁술'을 '합리적인 논쟁의 수단'으로, 토마스 드퀸시의 '대화에 관한 글'을 '당신의 대화를 다듬는 법'으로 제목을 바꾸어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제목과 책표지만 바꾸고 목차나 본문 내용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옥의 티 하나. 327쪽을 보면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사진이 실려 있고 이런 설명이 나와 있다. '아인슈타인. 과학적 인간의 한 능력으로서 인쇄술의 역사를 살펴 본 <인쇄출판문화의 원류>를 저술했다.' 나는 이 설명을 접하고 아인슈타인이 이런 주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니 하고 생각하며 그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그런 책을 저술했다는 사실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책은 사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Elizabeth L. Eisenstein)의 저술이며,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 아이젠슈타인은 인쇄문화사, 서양 출판사 분야에서 매우 저명한 학자이다.
책 또는 독서를 말하는 책이라면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서가에 꽂힌 책>(지호), <책의 역사>(시공사),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멘토) 등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학문적인 차원에서 책에 접근하고 싶다면 역시 앞서 언급한 <인쇄출판문화의 원류>(법경출판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저자가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우익 진영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단점을 지니기는 하지만, <지적생활의 방법>(세경멀티뱅크)에서 프로페셔널 독서가의 삶의 전략과 기술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