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 움푹 들어간 눈자위. 앙상하게 튀어나온 광대뼈. 윤기가 사라진 피부. 미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갈수록 얼굴이 변한다. 거실 소파에서 아이처럼 무릎을 오그려 감싼다.
또 그 꿈을 꾸게 되진 않을지. 그 오싹한 시선. 오늘 밤에는 타쿠로도 없다. 미사코는 얼씨구나 하고, 그녀의 침대로 쳐들어올 것이다. 오늘 밤은 자지 말아야지. 치아키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마치 집 안에 그녀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적막함이 감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오후 5시를 막 넘기고 있다. 저녁식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다다미방에 있는 미사코 씨의 불단에 아침과 저녁, 그리고 취침 전에 향을 피워야 한다. 그리 탐탁지는 않지만, 다다미방에 가려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정성껏 빌지 않으면 오늘 밤에 미사코 씨가 모습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끔찍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키는 창호지문을 열고 전깃불 스위치를 켰다. 금방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미사코 씨의 불단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불단의 받침대를 비롯
해 불단을 받치는 조그만 기둥, 그리고 불단 안의 창호지에도 금박이 발려 있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종이를 접어 풀로 붙여놓았다.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빈틈없이 붙어 있다. 영정 대신에 두꺼운 종이를 둥글게 오려 파고 거기에 얼굴 시퍼런 여자 그림을 붙여놓았다. 그 얼굴을 둘러싸듯 점토로 만든 사람 형태의 조각이 몇 개 놓여 있다.
점토 조각은 치아키가 자주 그리는 무서운 유령과 닮았다. 미키는 두려움에 떨었다. 장난이 아니다. 치아키는 어떤 의식을 치르고 있다. 타쿠로가 없는 사이를 틈타 전에는 비둘기 시체를 이용해서 의식을 치렀다. 이번에도 무시무시한 의식을 치르려고 한다.
황금빛 불단, 그리고 무서운 점토 조각. 신을 모시는 제단, 미키는그런 느낌이 들었다.
무서운 기세로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오고 있다.
치아키가 오고 있다.
치아키가 지금, 이 방으로 오고 있다. 그 시퍼런 얼굴의 여자와 함께. 미키는 붙박이장에 몸을 숨겼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그래도 본능은 몸을 숨기라고 재촉하고 있다. 이불을 구석에 밀치고 몸을 최대한 움츠렸다. 그리고 붙박이장의 문을 닫았다.
발소리가 복도를 지나 방으로 다가오고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다다미를 밟는 소리가 들린다. 티깍, 하는 소리와 동시에 붙박이장에 약하게 스며들던 빛이 사라졌다. 치아키가 방의 전등을 껐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새까만 어둠 속. 치아키의 손이 전기 스위치에 닿을 정도로 치아키의 키가 컸던가. 발소리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게 아니었던가. 망상이 어둠 속의 그녀에게 칙칙 달라붙는다.
살짝, 붙박이장 틈새로 실내를 엿보았다. 오렌지색 빛이 보인다. 황금색 불단 위에는 촛불이 하나 켜져 있다. 황금색 불단이 촛불의 빛을 반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실내가 으스스한 분위기로 가득 찬다.
촛불이 흔들렸나. 아니면 무언가 움직였나. 벽면에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림자가 춤춘다. 미키는 머리를 감싸고 쪼그려 앉아 있다. 붙박이장 안에 가득 찬 어둠이 그녀의 몸마저 묻어버리려고 한다. 이럴 때 생각하지 말아야 할 사념이 환상이 되어어둠이라는 캔버스에 그려지고 있다.
좁고 긴 파란색. 그것이 점차 얼굴로 변한다. 얼굴에는 먹물이 흘러내린 듯 앞머리칼이 늘어뜨려져 있다. 예의 그 시퍼런 얼굴이다. 미키의 망상을 먹고 자란 여자의 얼굴이 곧장 미키에게 다가온다. 일말의 자비심도 없다. 이대로 그녀를 미치게 만들 작정이다.
“엄마, 내 말 들어봐.”
치아키의 목소리다. 미키는 문에 귀를 갖다 댔다. 드디어 치아키의 엄마가 왔다. 치아키는 의식에 성공했고 타쿠로가 없는 오늘밤 미사코를 불러들였다. 목적은 미키를 어떻게든 처치하려는 것이리라.
“엄마, 뭐 해?”
치아키가 어떤 모습의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지 생각하기도 싫다.
“찾고 있어? 치아키도 그래.”
치아키와 엄마는 미키를 찾고 있다. 미키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빨리 일어나, 엄마.”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난다.
“‘땡땡’하고, ‘나무아미’라고 말하면, 엄마가 ‘잘 잤니?’하고 아침 인사를 해줘야지. 왜 아직 자고 있어?”
딸꾹질 같은 소리가 들린다. 치아키가 울고 있는 모양이다. 미키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빨리 ‘잘 잤니?’라고 말해줘, 혼자는 싫어, 집에 있기 싫어.”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엄마 자리를 빼앗으려는 미키를 어떻게 하면 미치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제 엄마하고 속닥거리려는 게 아니었나.
“엄마 방에도 들어갔어. 치아키, 나쁜 짓을 했어. 나쁜 아이야.”
치아키는 으앙, 하고 크게 운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미키의 마음속에서 공포라는 모래성이 스르륵 무너져 내린다.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 치아키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데.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아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치아키를 두려워했고, 미사코도 악령으로 치부했다. 치아키는 자기 마음을 터놓고 말할 상대가 없는 것이다.
“땡땡도 더 많이 하고, 나무아미도 더 많이 할 테니까.”
불단 옆의 작은 종이 몇 번이나 울렸다. 두 손을 비비는 소리도 난다.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모양이다. 저 의식은 치아키의 강한 바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어린아이이기에 기이한 말을 하고, 기이한 것을 생각한다. 어른이 생각하는 세계보다 훨씬 무한한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고 정
말로 믿고 있다. 죽으면 없어진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한다. 치아키에게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치아키의 행동은 엄마가 돌아온다는 믿음 아래 이루어졌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일부러타쿠로에게 반발하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무섭게 하면서 엄마
가 자신을 야단치러 돌아오기를 내심 기다려왔다.
황금색 불단도 마찬가지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미키 자신은 마치 악령을 불러들이는 의식으로만 바라보았다. 나쁜 것은 모두 미사코의 탓으로 간주해온 자기 자신이 지금 여기에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이나 저주를 믿어서는 안 되는 어른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에게 모든 재난의 원인을덮어씌우고 말았다.
미키는 붙박이장의 문을 열었다. 치아키가 금박을 바른 불단 앞에 앉은 채 의아한 눈길로 미키를 바라봤다.
“미안, 치아키. 사실은 다 봤어. 이젠 이해해. 이해하고 말고.”
미키는 붙박이장 안에서 사과하고 눈물을 흘렸다. 코가 막히면서 말문도 막힌다. 치아키는 팔로 눈가를 쓰윽 문지르더니 도망치 듯 방을 빠져나간다.
“금방 저녁 준비할게.”
대답은 없었다. 발소리만 멀어져갔다. 미키는 불단 앞에 정좌했다. 영정은 다시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대신 시퍼런 얼굴의 그림이 다다미 위에 놓여 있다.
“부탁입니다.”
영정 속의 미사코를 바라보면서 미키는 합장한다.
“나도 엄마라는 소릴 듣고 싶어요. 미사코 씨, 치아키를 당신한테서 빼앗으려고 한 적은 없어요. 이젠 엄마라는 소리를, 나한테 양보해주세요.”
제멋대로의 부탁이었건만 허락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증거로 다다미 위에 놓여 있던 시퍼런 얼굴의 여자가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