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만든 사람들(부제: 탄생부터 발전까지 ‘인물’로 다시 쓴 심리학사)』은 심리학 이론이 발생하고 발전해온 역사를 연구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여기에서의 심리학 이론에는 단지 근대 이후에 체계화된 심리학 이론들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인간의 정신, 의식에 대한 단편적인 사상들까지도 포함된다. 인간의 정신현상에 관한 논의는 아주 오래전에 철학의 발생과 함께 시작되어서 철학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해왔다. 즉, 심리학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고대에서부터 발생하고 발전해온 인간의 심리, 의식에 대한 다양하고 단편적인 견해들에 토대를 둔 것으로 근대에 독자적인 과학으로서 등장했다. --- p.5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서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정서가 동물 정기(animal spirits)의 착란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정서가 심장의 열에 의존해 발생하기도 하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액체의 성질에 의존해 발생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서가 신체에 대한 이익이나 위험을 예고하는 작용이라고 봄으로써 정서 본능설을 암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데카르트는 인간의 기본 감정에 관해서도 자기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경탄, 사랑, 증오, 욕망, 희열, 비애를 인간의 여섯 가지 기본 감정으로 지목했다. 나아가 정서가 기본적으로는 신체의 본질적 변화에서 기인하지만, 과거의 경험이 정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람이 과거에 보았던 사물을 다시 보았을 때 그 사물이 당시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 p.40
라메트리는 물질과 의식, 심리와의 관계 문제를 유물론적 입장에서 해석했다. 그는 감각하고 사유하는 인간의 능력이 전적으로 육체에 의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메트리는 이를 ‘인간기계론’을 통해 증명하려고 했는데, 그는 인간 유기체를 가장 복잡한 기계에 비유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생리적 현상을 역학적인 합법칙성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정신현상을 생리적인 현상에 귀착시켜서 해석했다. 라메트리에 의하면 생리적인 현상은 신체의 기계적인 과정이며 용감함이나 비겁한 성질 등은 비장이나 간장의 상태와 관련된 것이다. --- p.47~48
몽테스키외는 엘베시우스와 달리 사람이 자연지리적인 조건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했는데, 그에 의하면 자연지리적인 조건은 정치형태뿐만 아니라 인종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북방인과 남방인의 성격에 차이가 나는 것도 기후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북방인이 정열적이고 호전적이며 용감하고, 인내력이 있고 자유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남방인이 나태하고 내성적이며 유약하고 종속적이며 악덕한 것이 기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기후가 인간의 감정, 사상, 지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민중의 풍속, 생활양식 등에도 영향을 주어 궁극적으로 법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몽테스키외에 의하면 추운 기후는 사람들의 원기를 왕성하게 해주어 좀 더 큰 힘으로 더 많은 결과를 거둘 수 있게 해주지만, 더운 기후는 사람들의 육체나 정신을 현저히 무력하게 만든다. 즉, “더운 나라 사람들은 노인과 같이 비겁하고 추운 지방 사람들은 청년과 같이 용감하기” 때문에 흔히 열대지방에서 노예제가 나타나고 한대지방에서 공화제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 p.53
갈에 의하면 도벽 충동은 대뇌피질 측두엽에서 약 1인치 정도 올라간 부분이면서 귀의 앞부분에 위치한 ‘소유욕(또는 습득성)’의 기능이 지나치게 발달한 결과이다. 그러나 골상학은 잘못된 이론이었다. 이후의 연구들에 의해 대뇌의 특정 부위의 발달이 존경이나 동정과 같은 특정한 심리를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심리적 기능은 뇌의 특정 부위뿐 아니라 뇌의 상당히 많은 영역 또는 뇌의 대부분을 필요로 한다). 또한 해부학적 단위의 크기와 기능의 복잡성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특정 신경 부위가 크다고 해서 그것에 대응해 두개골이 함몰되거나 융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p.88
마르크스주의 이전까지의 심리학은 그 내용과 형성, 발전 과정에서 대체로 자본주의사회 지배계급의 이익과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그 사상이론적 기초가 관념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이었다. 또한 사회생활 전반에서 자본주의제도를 변호하고 옹호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심리학을 부르주아심리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세기 후반기에 노동계급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하는 학설인 마르크스주의가 발생·발전함에 따라 종전의 부르주아적 심리학과 구별되는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은 이전 시기의 잡다한 심리학 이론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심리학으로서, 독자적이고 새로운 사상이론적 기초와 현실적인 사회적 요인에 의해 탄생했다. (중략) 상당수 지식인들이 자본가계급의 편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나아가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민중의 이익과 지향을 대변하는 쪽에 설 수 있게끔 고무해주었다. --- p.149~150
프롬은 인간 본성을 규명하는 중요한 방법론을 제안했다. 프롬은 인간 본성을 규명하려면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인간 이외의 생명체와 비교해서 인간에게만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하며, 그렇게 해서 발견된 것 중 가장 근본적인 특성들을 선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방법론에 따라 프롬이 발견한 인간 본성 중 하나는 바로 ‘자유’였다(프롬은 자유에 ‘freedom from’뿐만 아니라 ‘freedom to’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 중에서 자유를 욕망하거나 추구하는 존재는 없다. 자유를 원하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며 자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숱한 바람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이므로 ‘인간의 본성’이다. --- p.172
현대의 주류 심리학은 인간의 본성과 본질적 특징, 존엄과 가치를 왜곡하고 훼손하며 인간 심리, 정신에 대한 갖가지 비과학적·반민중적 견해를 유포하고, 사람들을 개인이기주의와 패륜패덕으로 오염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자본주의제도를 개혁·변혁하려 들기는커녕 사회에 불건전한 사상적 조류와 생활방식을 조장하고 사람들을 공포와 불안에 빠뜨려 반인간적·반민중적·반역사적 현대 자본주의제도를 유지하고 공고화하는 데 복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 심리학의 거의 모든 학파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건전한 의식을 갖지 못하고 민중의 혁명성과 창조성을 유린, 말살하는 자본주의제도와 자본가계급을 옹호하는 데 복무한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 p.195
왓슨은 이러한 맥락에서 “내게 건강한 유아 10여 명과 그 유아들을 키울 수 있는 특정한 세상을 제공해준다면, 나는 어떤 아이라도 그의 재능, 취향, 버릇, 능력, 천성, 인종에 관계없이 의사, 변호사, 예술가, 기업가 심지어는 거지나 도둑까지도 포함해 내가 선택하는 어떤 유형의 전문가로도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거리낌 없이 말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의식을 가진 조종하는 자는 왓슨이고 의식이 없는 조종당하는 자는 유아들이다. 이렇게 행동주의 전통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자본주의제도를 변호했다. 그러니 어찌 지배층에게 환영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 p.237
스키너의 전형적인 실험에서 쥐는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학습하는데, 이것은 쥐가 환경에 한 어떤 작용에 대해 보상이 주어진 것이므로 레버를 누르는 쥐의 행동은 강화된다. 반대로 쥐가 레버를 눌러도 더 이상 먹이가 주어지지 않거나 도리어 전기 충격이 가해질 경우, 쥐는 레버를 누르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이때는 행동에 대한 일종의 처벌이 뒤따른 것이므로 레버를 누르는 쥐의 행동은 소거된다. 스키너는 이러한 원리를 잘 이용하면 쥐는 물론이고 사람까지도 서커스의 동물처럼 조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239
프로이트주의 심리학은 타락한 지배계급과 착취계급의 심리를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인 것처럼 과도하게 일반화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건전한 인간관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했고 자본주의사회에서 나타나는 온갖 사회악을 은폐하고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또한 프로이트주의 심리학은 사회악의 사회적 근원을 외면하고 그것이 마치 ‘성적 욕망’과 사회적 환경 사이의 갈등, 모순의 산물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거의 모든 심리현상을 성적 본능에 귀착시켰다. 정신분석학은 사람들을 저속한 본능, 성욕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자본주의사회의 모순과 부패성을 은폐했으며 노동자들을 비롯한 민중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자본가계급에 의해 널리 유포되고 장려되었다. 정신분석학은 전쟁을 일으킨 사회적·계급적 원인에는 눈을 감고 전쟁이 마치 죽음 본능과 같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 또는 집단적인 성적 욕망의 좌절과 관련된 필연적인 현상인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노골적으로 제국주의의 대변자 노릇을 했다. --- p.253
사회심리주의자들은 전쟁을 자연적인 것으로 변호하면서 미제국주의의 침략 전쟁 정책을 옹호하기도 했는데, 어떤 학자들은 전쟁의 원인을 심리적 현상, 본능적인 것, 신경계통의 병적 상태라고 주장했고 또 어떤 학자들은 미국의 세계 제패 야망을 ‘호전성’의 발현으로, ‘의식 이전의 영원한 본능’의 발현으로 묘사했다. 이것은 전쟁의 사회 계급적 원인을 부정하고 그것을 생물학주의적으로 왜곡, 합리화하는 것이다.
--- 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