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08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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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04쪽 | 130*205*20mm |
ISBN13 | 9788954641869 |
ISBN10 | 8954641865 |
발행일 | 2016년 08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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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04쪽 | 130*205*20mm |
ISBN13 | 9788954641869 |
ISBN10 | 8954641865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축복이다. 그것이 크나큰 고통을 동반하더라도 말이다. 때로 사랑은 일상을 굴복시킨다. 사랑하는 그 대상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무작정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것일까. 이것은 부질없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형태와 행위가 다를 뿐 맹목적인 사랑, 내 전부를 줄 수 있는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으니까. 때문에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사랑하는 팬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이희주의 『환상통』을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들에게 사랑은 숭고하고 위대한 일이다. 청소년 시절의 통과의례처럼 지독한 열병으로 기록되더라도 말이다. 섣불리 이해할 수 없지만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소중한 것일수록 기록을 통해 남기려고 하죠. 그러나 어떤 기록도 순간의 모방일 수밖에 없다면 도대체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남겨져야 합니까?’ (23~24쪽)
소설의 주인공은 십 대의 소녀팬이 아니다. 아이돌 멤버를 좋아하는 이십 대의 m과 만옥, 그리고 만옥을 짝사랑한 한 남자가 서로의 시선에 비친 그들의 사랑을 들려준다. 같은 멤버 민규를 좋아한다는 것과 이십 대란 공통분모로 m과 만옥은 금세 친해진다. 아이돌의 스케줄을 공유하며 함께 공개방송을 기다린다. 기약 없는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서 잠깐 팬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에게는 삶의 전부가 된다. 일상의 축은 아이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돌 멤버와 팬의 로맨스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 대상을 향한 무한대의 사랑이지만 그것이 너무도 절망스럽다는 것, 전부를 소유하길 간절히 원하지만 모두와 나눠야 한다는 고통까지 감수하며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소설이다. 그래서 m과 만옥과 한 남자가 차례로 들려주는 사랑은 처절하면서도 철학적이다.
‘나는 기다림이 좋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기다림이었으므로 그것은 언제나 달콤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나는 그들을 알게 된 이후 매 순간이 기다림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문장을 쓰며 그 순간을 간신히 버티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고통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포기했던 걸까?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고통이 좋았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자발적으로 원한 사람이었다. 불확실한 고통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보다 낫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70쪽)
사랑하는 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건 당연하다. 무엇을 먹고 어떤 걸 먹고 무슨 생각을 하고 누구와 친한지, 알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m과 만옥이 아이돌 멤버 민규를 향한 마음도 그러하다. 세상은 그들을 ‘빠순이’라 부르며 정신 나간 집단으로 치부한다. 공개방송과 콘서트에 가기 위해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도 없고 친구나 부모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민규가 존재하기에 m과 만옥도 존재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그려진 아이돌과 팬의 모습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매우 사실적이다. 현장을 생생하게 스케치 한 느낌이랄까. 스타의 이동에 따라 움직이는 팬의 하루, 어느 위치에 서야 좋아하는 멤버를 잘 볼 수 있는지, 팬미팅 당첨을 위해 몇 장의 앨범을 구매해야 하는지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단순한 팬이 아닌 것이다. 민규를 향한 사랑은 신을 향한 그것과 같다. 그를 위해서라면 지옥이라도 갈 수 있는 사랑이다.
‘네가 유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혀끝에 맴도는 이름이라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내겐 아직 쓸 만한 눈과 너를 담을 마음의 공간이 있었다. 네 앞에서 꿇을 무릎, 녹아 사라지기를 바라는 다리가 있었다. 네 앞에서 몇 번이고 터질 심장과 그걸 꿰맬 손이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직 기다리길 원했다. 네가 너를 기다렸으니까.’ (128쪽)
이 무섭고도 모진 사랑을 이해하기에 나의 이성과 감성은 부족하다. m이 다른 민규를 사랑하게 된 이유와 만옥이 갑자기 죽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만옥의 죽음 후 m과 만나 그녀가 사랑한 민규에 대해 알아가는 것으로 여전히 만옥을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은 조금 알 것 같다. m을 통해 만옥을 듣고 만옥을 만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그 의미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사랑하는 것은 축복이라 생각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한 것일까, 여전히 어렵다.
‘기록은 다른 사람과 나눴을 때 더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떠나서.’ (142쪽)
누구나 그런 건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괜찮은 사람을 보면 좋아하기도 한다. 괜찮다 여긴 사람 이름을 모르면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다른 방송에는 나오지 않는지 찾아본다. 이것은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아주 좋아해서 방속국에 가서 보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그런 거 텔레비전 방송으로 보기도 했는데 그런 아이 지금도 있을까. 난 노래를 좋아해서 음악방송을 즐겨 본 적도 있는데 언제부턴가 안 보게 되었다. 나도 예전에는 노래 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노래 듣고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내가 한 건 그 정도다. 시간이 흐르고 컴퓨터 인터넷을 쓴 다음에는 영상이나 사진을 찾아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한 건 아이돌은 아니고 밴드였다. 재미있는 건 내가 좋아한 밴드를 하는 사람에서 한 사람은 여기에서 말하는 N 그룹 M과 이름이 같다. 그 이름을 가끔 소설에서 보기도 한다. 동화에서 본 적도 있다.
여기에 나온 이야기 이해하기 어렵다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조금 알겠지만 다는 아니다. m은 이미지, 만옥은 실재를 바란다고 해야 할까. 만옥보다는 m을 조금 이해한다고 해야겠다. 내가 지방에 살아서 그런 거겠지만 좋아하는 밴드는 노래하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안 해 봤다. 공연은 한번쯤 보고 싶기는 했다. 나는 좋아해도 그런 것을 잘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게 사람은 아니고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는거의 안 보는데, 만화영화) 이야기다. 사람이 같은 것을 좋아해도 똑같은 마음은 아닐 거다. 이제야 그걸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만옥과 m도 N 그룹 M을 조금 다르게 좋아했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즐겁게 이야기를 했지만. 아이돌 그룹이 방송을 녹화할 때마다 거기에 가려고 애쓰는 사람은 지금도 있을 것 같다. 그때뿐 아니라 행사나 공연 사인회에도. 사인회에 가려고 CD를 마흔장 사는 사람도 있을까. 난 하나만 사고 들으면 그걸로 좋은데, 난 겨우 그 정도구나.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만옥과 m은 아이돌 그룹 한 사람과 연애하는 기분이라 했다. 그런 마음이 들지만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마음 아픈. 멀리 있기에 그럴 수 있는 건 아닌지. 아이돌도 사람인데. 연예인은 만들어진 인상 때문에 안 좋을 듯 싶다. 아니 이건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만 그런 건 아니구나. 그 사람과 상관없이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면 실망하고. 그것보다는 자신이 몰랐던 면을 알아서 기쁘다 생각하면 좋겠다. 이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일지도. 굴짬뽕을 한참이나 꿀짬뽕이라 보고 그런 것도 있나 하고, 굴짬뽕이라고 제대로 보고는 난 왜 잘못 본 걸까 했다. 잘못 봤다는 걸 알아서 다행이다. 이런 일은 흔히 있을지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을 다르게 보는 일. 만옥과 m은 M을 못 알아보기도 하고 꽤 충격을 받았다. 만옥이 더했다. 좋아한다 해도 못 알아볼 때도 있는 건데.
이 소설을 보다 보니 오타쿠라는 게 생각났다. 그건 일본에서 널리 퍼진 말로 어떤 것 하나를 좋아하고 잘 아는 것이던가. 그런 사람은 현실의 사람보다 이차원(2D) 그러니까 그림을 더 좋아한다. 삼차원(3D) 세계에 있는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림을 편하게 여긴다. 이쪽이 더 병처럼 보일까. 아이돌이나 그림속 사람이나 손에 닿을 수 없다는 건 같다. 나도 한동안 만화영화만 봐서 그림이 편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을지도. 그렇다고 어떤 한 사람을 좋아한 적은 없다. 일본 성우한테 관심을 가지고 블로그를 조금 보기도 했다. 사람은 거의 만나지 않고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게 멀리 있는 사람만 봤던가 보다. 그런 건 한때다. 시간이 흐르면 덜하다. 만옥은 좀 달라 보인다. m도 그랬던가, 예전과 다른 사람을 좋아하니까. 아이돌(연예인)에 잠깐 빠지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오래 그러면 안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좋아하는 건 언제든 괜찮다. 다만 좋아하기만 하고 욕심내지 않아야 한다. 이런 재미없는 말을, 욕심내면 자기 마음만 아플 뿐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나 아이돌을 좋아하는 건 아주 다르지 않기도 하다.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지.
희선
☆―
기록은 다른 사람과 나눴을 때 더 뜻이 있으니까요.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떠나서. (142쪽)
하지만 그, 멤버들이 애인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감정으로는 애인이나 다름없지요. 그렇다고 스캔들 난 여자를 욕하거나 오빤 내 거야! 이런 건 아니지만 뭐랄까, 유사 연애라고 해야 하나…… 우리 정도 되면, 어차피 쟤들이랑 나랑 만날 일 없다는 건 알거든요? (154쪽)
(스포 있음)
한국에서 돌덕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성 수치가 느껴질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거다. 배우덕질과도 다르고, 여타 아티스트 덕질과도 다르고 해외 락커들 그루피들과도, 작품에 버닝하는 것과도 전혀 다른, 오로지 한국 아이돌 덕질의 포인트가 있는데 그 지점을 잘 살렸다. 전에 장진의 남팬만화를 읽을 때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것은 약간 데못죽처럼 벨을 위한 전개에 팬심이 끼얹어진거라면 '환상통'은 그저 새우젓의 마음과 빠순이들을 비웃는 세상의 시선까지 아우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해도 2차 알페서들까지 아우르진 못한ㅋㅋㅋㅋ아룰러서도 안되겠지만)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범주의 상대적인 경증 빠수니 엠과 중증의 빠수니 만옥(그렇다. 빠순이는 병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만옥 정도는 말기환자까진 아니다 ㅋㅋ특정질병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자아내는데, 과거 한센병 환자들이 이유없이 천시받았던것처럼 현대의 수니병자들도 그러하다 ), 그리고 만옥을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한남1(이름은 민규 ㅋㅋㅋ 만옥이 사랑하는 아이돌의 이름이 민규인데 대조적으로 배치된 인물...) 아이돌 민규와 한남 민규는 둘 다 만옥의 사랑을 원하지만 만옥은 아이돌 민규에게는 넘치는 사랑을, 한남 민규에게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만옥이 아이돌 민규를 사랑하는 것과 한남 민규가 만옥을 사랑하는 것을 비교해보면 둘 다 같이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이지만 돌민규는 만옥(과 팬들)의 사랑을 갈구하고 필요로 하는 반면 한.민규는 만옥이 원치 않는 사랑을 퍼붓고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모른다. 한.민규의 머글 여사친이 그에게 팩폭하는 부분이 너무 웃김. 그래도 일반인인 민규는 만옥과의 1:1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만옥은 돌민규와 결코 그런 관계가 될수없다는 지점. 그래서 결국 수니들은 병에 걸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세상에 좋자하는 많은 형태의 사랑 중 가장 무시받는 사랑을 그려낸 지점에서 의미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