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이라는 표제어가 시사하듯 과학과 신앙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한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종종 과학과 신앙에 관한 글이나 주장 내용을 보면 글 쓰는 이의 입장만을 고집하곤 한다. 그러나 『스펙트럼』은 과학과 신앙의 이슈에서 복음주의 내의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이는 창조와 진화의 이슈에 있어 특히 그렇다). 물론 어떤 한편 입장에서의 내용 개진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 교회에 편만히 스며든 관행이나 풍토로 보아 적어도 앞으로 상당 기간은 다양한 관점의 소개가 신앙 교육적 효과나 성숙의 촉진 면에서 더 적실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스펙트럼』은 과학과 성경에 관한 주제를 복음주의적 신앙의 견지에서 할 수 있는 한 객관적으로 풀이하고 소개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 이 또한 과학과 신앙에 관한 한국 교회의 처지를 감안할 때 의의가 크다.” --- p.6
“자연과학이 하나님을 아는 수단이 된다는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요. 또 소위 ‘문화명령’을 잘 수행하려면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죠. 게다가 질병 치유, 농작물의 생산성 향상 같은 것을 통해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도울 수도 있어요. (물론 과학이 윤리적으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건 또 그것대로 따로 논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또 신앙과 과학이란 주제는 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소위 비전문가인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전반적인 의식 가운데 신앙과 과학을 통합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 p.20
“우리는 어떤 실재를 다루는지에 따라 그것을 규정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의 존재나 영혼의 문제를 다룰 때는 과학이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의 방법론은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현상만 다루니까요. 과학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를 막연히 갈등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혼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실재를 다루는지, 그리고 실재의 어떤 측면을 다루는지에 따라 과학과 종교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종교는 상보적인 관계입니다.” --- p.22
“창조과학이 보수적인 개신교의 창조론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던 1990년대 말, 「복음과상황」이란 잡지를 통해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진보적인 개신교를 제외하고 신학자 일부와 교회에서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논의하던 유신진화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당시 서울대 대학원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하던 장대익은 1997년 10월부터 1998년 2월까지 「복음과상황」에 연재한 일련의 글에서 창조과학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또 기독교가 진화론에 대한 오랜 편견을 벗고 과학과 신학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기만 하면 기독교와 진화론의 화해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적극 개진하며 복음주의 안에서 유신진화론의 담론화를 꾀한다. 묘하게도 같은 해 가톨릭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인류학자로 유신진화론을 발전시킨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대표작 『인간현상』(한길사, 1997)이 이화여대 양명수 교수의 새로운 번역으로 ‘그레이트북스 시리즈’에 포함되어 25년 만에 다시 출간되었다.” --- p.52
“이러한 이론들을 근거로 할 때 감각, 사고, 감정, 기억 같은 다양한 인간의 정신활동은 신경세포로 구성된 거대한 회로망에 각기 다른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특유의 전기적 활동 상태가 시간과 공간에서 펼쳐지는 물리?화학적 현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최근 폭발적으로 발전한 기능적 뇌영상학은 이러한 가정이 결코 과학자들의 과도한 비약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예를 들어 이유 없이 심한 불안이나 기쁨을 경험하는 환자의 뇌를 fMRI라고 하는 영상장비로 촬영하면, 그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하거나 기쁨에 취하게 하는 뇌조직의 위치와 분포를 실시간으로 환히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감각과 생각은 세계의 참된 모습이 아니며, 마치 시냇물이 흘러가면 소리가 나고 자동차 엔진이 돌아가다 보면 열이 발생하는 것처럼 마음이란 신경세포들이 작동할 때 생겨나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76~77
“뇌과학은 현대 생물학과 인지과학을 결합해 막연히 신비스럽게 여겨지던 뇌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명쾌하게 규명하는 데 성공했고,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던 인간의 마음과 정신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런 뇌과학의 주장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인간 이해와 기독교 신앙에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영혼, 자아, 자유의지, 윤리와 가치 등의 개념이 모두 실체가 아닌 환상적 부산물이며,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뇌에 의해 작동되는 불확실성의 정보처리 기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 p.81
“우선 생물학적 상태로서의 의식은 심리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현대 과학은 그런 의식의 메커니즘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철학자 차머스(D. Chalmers)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쉬운 문제’에 속한다. 그러나 자기의식의 경우 철학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자기의식을 가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개념을 가지지 못한 지적 생명체는 자기의식을 획득할 수 있을까? 철학자 베이커(L. R. Baker)는 ‘1인칭 시점’이 바로 자기의식의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베이커에 따르면, 이 1인칭 시점은 본질적으로 개념적이다. 따라서 개념을 소유한 지적 생명체만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기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 p.100~101
“자유의지를 공격하는 책과 논문들이 자유를 부인하는 것과 의식적 의지의 효능을 부인하는 것을 보통 서로 연결시키고 있고 때로는 혼동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두 주장은 구별된다. 내가 현재 초점을 맞추려는 것은 후자, 즉 우리 의지의 효능을 부인하는 주장이다. 의도하고, 의지를 품고, 결단을 내리는 우리의 경험은 순전히 지연된 읽어 냄(read-outs)이며, 우리 뇌의 결정을 사후에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의식이 부인되지는 않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 p.109
“창세기 2:7에 대한 자세한 해석에서 서로간 차이를 나타내는 기독교 내 입장은 대략 즉각적 창조론, 점진적 창조론, 진화적 창조론/유신진화론으로 대별된다. 즉각적 창조론은 소위 ‘창조과학’을 주창하는 이들의 입장으로서, 우주?지구?생명체?인류 출현의 연대를 기껏해야 1만 년 정도로 보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등장은 하나님의 종(種, species)별 창조 행위에 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점진적 창조론은 우주?지구?생명체?인류의 출현 시기에 관해서는 대체로 주류 과학의 이론―우주(138억 년), 지구(46억 년), 생명체(35억 년), 인류(20만-3만 년)―을 좇되, 생물학적 진화론만큼은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진화적 창조론/유신진화론은 현행 과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는 우주?지구?생명체?인류의 출현 연대뿐만이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론의 이론적 얼개 또한 수납하는 입장인데, 아담의 정체와 관련해서는 그들 사이에 다시금 다양한 입장 차이가 목도된다.
이제 이러한 현황을 배경으로 하여 창세기 2:7에 대한 다섯 가지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 p.15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