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록키의 상사와 동료들
스트레스. 이 단어는 분노 살인 연구에서 곧잘 등장하는 말이다. 문제는, 스트레스의 끔찍한 결과들 - 심신의 질병에서부터 학살에 이르기까지 - 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우리는 스트레스 가득한 자신의 근무 환경을 그 고통에 걸맞은 표현으로 직접 말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신파조로, 우는소리로 들릴까 - 참고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보일까 - 두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의 머리에서는,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진다고 호소하다가는 패배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경고가 울려 대고 있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p.43
2장 노예제의 평범성
“최저의 비용으로 최대의 노동을 얻어 내기 위해서 농장주는 노예들에게 위생적인 오두막을 지어 주고, 건강에 좋은 충분한 음식과 적절한 의복을 제공하며, 여가를 허락하고, 아플 때는 치료해 줘야 했다. [……] 또 자신과 노예 사이의 엄청난 사회적 거리도 유지해야 했다.
“농장주”를 “사용자”로, “노예”를 “직원”으로 바꾸면 위 구절이 어떻게 읽히는지 보라.
어느 쪽이 더 충격적인지 말하기란 쉽지 않다. 섬뜩하게 보이던 어제의 노예주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비칠까. 기이하게도 그들이, 이론상으로는, 얼핏 인도적으로도 보인다. 사실, 오늘날 복지 혜택을 대폭 삭감하는 사용자들은, 적어도 수사적으로는, 노예 소유주들과 비교해 직원들에게 훨씬 더 잔인하다. --- p.74
3장 우체국에서 생긴 일
분노 살인 현상 전반이 우체국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미국에서 직원 규모로는 두 번째로 큰, 80만 명에 이르는 직원을 거느린 공기업으로 가장 먼저 탈규제·민영화 조치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보수주의 성향의 미국기업연구소는 이 조치를 “연방 기관 가운데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구조 조정”이라 불렀다. --- p.147
우체국은 다음과 같은 친숙한 전략들을 통해 더욱 영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노동 강도를 높이고 스트레스 가득한 분위기를 조장해 더 쥐어짜는 전략, 즉 가치중립적인 경제학 용어로는 “노동생산성 증가”를 통해 말이다. 기이하게도 연방 정부가 우체국에 지원하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첫해였던 1983년은 첫 번째 우체국 총격 사건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존스턴에서 발생한 해이기도 하다.--- p.148
그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분노 살인에서 되풀이되는 주제다.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심할 때조차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데, 자신의 불행을 인정하거나 스트레스를 처리하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패배자가 되기 때문이다.--- p.170
클린턴 정부에서 이루어진 규제 완화로 월가는 더욱 번창했고, 지구화는 그 어느 때보다 가속화되었으며, 정리 해고가 급증했고, 레이건이 개시한 반노동?친주주 기업 문화는 급진적 실험에서 삶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2001년에] 조지 W. 부시가 취임할 무렵에는 문화?경제적 변형이 깊숙이 자리 잡아서, 한때 극단적이고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 환호와 찬양을 받았는데, 심지어는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에게서도 그러했다. 그 변화는 급진적이고 트라우마적이었다. 그러니까 역사학자들이 이 시대를 뒤돌아볼 때 어째서 살인 사건과 반란이 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일까 의아해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노예 반란이 그토록 적었다는 것이 오늘날에는 충격적인 것처럼 말이다.--- p.171
지난 30년 동안, 미국인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84시간 늘어났다. 급여는 같거나 줄었는데, 근무일은 4주 반가량 늘어난 셈이다. 또 미국인들은 같은 일을 하는 유럽인들보다 한 해 350시간 더 일한다.... 노동시간이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로 치솟는 동안 부시 대통령은 2004년 여름, 기업들에게 또 다른 선물을 안겨 주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에게서 초과근무 수당이라는 전통적 권리를 박탈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한 것이다.미국인들이 사무실에서 미친 듯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들이 사용하는 물리적 공간도 줄어들었다. ...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딱 10년 사이에 업무 공간의 평균 크기가 25~50퍼센트가량 줄었다. 3천5백만 명이 칸막이 책상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는 “끊임없는 감시 메커니즘”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또한 죄다 똑같은, 이 모욕적인 벌집 구조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독립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고위 감독자들에 견줘 자신들이 얼마나 낮은 위치에 있는지 단단히 상기시키도록 만들어졌다.--- p.189
최고 경영자들이 이런 봉건적 해법을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레이건 집권 전에는 드물었던 종, 즉 임시직 노동자의 증가가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임시직은 1986년부터 1998년까지 네 배가 되었다.--- p.220
4장 임금 분노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음을 고려할 때, 반란을 개시하기 위해서는 무모할 정도의 용기나, 정신 질환 혹은 자살을 각오한 자포자기 상태가 필요하다.
--- p.231
최근 기업들은 '정리 해고 분노'에 직면해 있다. 예컨대, 정리 해고로 일자리를 잃게 된 어느 IT 회사의 전 관리자는 회사의 컴퓨터 시스템들을 훼손해 회사 주식 공매 전날에 2천만 달러의 손해를 입혔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익명의 쪽지를 남겼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좋을 때건 나쁠 때건 회사에 충성했다. 나는 최고 경영진 가운데 한 사람이 고상한 자기 사무실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직접 상황을 설명하며 정리 해고를 통보할 거라 생각했다. 구내식당 책임자가 경비원들을 대동하고 와서는, 우리가 범죄자인 양 건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 p.232
그가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왜 그랬는지는 이해할 수 있어요. 만약 내가 그런 위치에 있었다면 나 역시 그랬을 거예요.--- p.256
아들의 살해 행위는 괴물 같았지만 아들은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 p.274
처음에 사람들은 콜럼바인의 딜런 클리볼드와 에릭 해리스가 약에 절어 정신이 이상해진 중퇴자, 나치에 열광하는 동성애자, 붕괴된 가정의 자녀, 고스족, 트렌치코트 마피아, 마릴린 맨슨을 좋아하는 깡패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은 그들은 훨씬 더 평범하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들이 저지른 학살과 관련해 참 혼란스러운 점이었다. 둘 다 양친이 모두 살아 있었고 부모에게서 사랑 받았으며 대단히 똑똑했지만 엉뚱한 학생이었다. 그들은 나치나 약물 중독자가 아니었다. 고스족도 트렌치코트 마피아도 마릴린 맨슨을 따르는 패거리도 아니었다. 또 일부 생각과는 달리 게이도 아니었다.--- p.301
프로파일링 해야 하는 것은 사무실이나 학교의 총격자들이 아니다 - 그런 프로필은 만들 수도 없다. 정작 프로파일링을 해야 할 대상은 직장과 학교다.--- p.302
5장 분노는 포도처럼
앤디가 학교에서 총을 쏠 계획을 한 건 적어도 며칠 전부터였다. 사실 그는 죽이고 싶은 건지, 죽고 싶은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갈팡질팡했다. --- p.330
레이건주의의 대두와 더불어 나라가 점점 계급과 인종을 따라 양극화되면서 중산층은 도심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에 무감하게 반응하게 됐다. 꼭 육체노동자 노조가 분쇄되고 정부가 빈민 지원금을 삭감할 때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대체로 도심 학교 폭력은 “저들의” 문제로 간주됐다. 레이건 정부에서 가난에 대한 책임이 빈민 자신에게 돌아갔듯이, 학교 갱 폭력의 책임은 폭력이 가장 심각한 지역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라틴계에게로 돌아갔다. .... 어느 누구도 백인 중산층 학교에서 분노 살인 사건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일은 1990년대 말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p.359
미국인들은 그 학살에 대해 콜럼바인 고등학교를 제외한 모든 것 - 즉 폭력적인 미디어, 마릴린 맨슨, 고스 문화, 인터넷, 트렌치코트 마피아, 비디오 게임, 느슨한 총기 규제법, 자유주의적 가치들 - 을 탓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여전히 학교는 묵과한 채 정반대만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이 두 소년이 도덕적?정신적으로 병들어서 그렇다고도 했고, 동성애 성향 때문이라고도 했다. 마치 그들이 예외적인 별종이고 그들만 없었다면 학교는 행복한 아이들만의 학교였을 거라는 듯 말이다.
그들은 동기를 찾고자 온 세계를 샅샅이 뒤졌다. 단 한 곳, 다름 아닌 범죄 현장만 빼고. 사실 해리스와 클리볼드에게 학교에서 보내는 보통의 하루는 지옥이었다. --- p.369
콜럼바인 살인 사건 5년 뒤 딜런의 어머니 수전 클리볼드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죽기 전에 끔찍한 고통을 겪은 것 같아요. 이를 알아채지 못한 저 자신을 결코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 p.375
6장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레이건 혁명의 여파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부모들을 몰아붙인 것처럼 아이들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한 번 실수해 낙오하면 - 심지어 유아원에서라도 - 평생이 끝장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p.441
“1,300점 혹은 믿을 수 없는 점수인 1,350점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비리그나 버클리에 들어가기에 충분히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요.”--- p.442
사실 부정행위는 오늘날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 그 모든 “기업의 불법행위” 스캔들에서 보았듯 부정행위자들이 승리한다. --- p.443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이 감당해야 하는 극히 이례적인 학업 환경은 새러토가 고등학교 교사 및 당국자들이 조성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만든 것은 탈규제화된 자유 시장이다. 경쟁은 지구적이고 강렬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런 인식이 퍼졌다. ‘캘이나 MIT, 하버드에 들어가서 초협대역 기술을 개발해야지. 그러지 못하면 다리 밑에서 다람쥐를 구워 먹는 신세가 되고 말 거야.’”--- p.456
한 화가가 살해된 다섯 명을 그린 초상화를 학교에 기증했지만 학교는 원하지 않았다. 3년 뒤 그 초상화가 존즈버러 검찰청 사무실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대체 언제 끝나나요?” 웨스트사이드에서 학교 관리자로 일하는 수전 밀러는 이렇게 토로했다. “1주기, 3주기, 이젠 5주기가 될 거에요. …… 당신에게 원하지도 않는 것, 거대한 묘지처럼 보이는 것을 기부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그걸 당신 운동장에 두고 싶어 한다면요. 거기에 이름을 적어서요. 어쩌고저쩌고 추모하며. …… 우리한테는 운영해야 할 학교가 있다고요.”--- p.483
온 나라가 이런 비열함과 냉담함으로 들끓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오직 미친 사람들만이 그것이 잘못됐다고 - “정상적”인 것이 결코 정상적인 게 아니라고 - 느끼고 그중 일부는,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싸운다.
--- p.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