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페니언. 그거, 아니에요. 알이 억지로 절 어떻게 한 것도 아니고, 저도 원했던 거였어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잖아요?”
하르페니언은 그렇게 말하는 수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안다. 하지만 언제나 생각하게 된다. 사실 수아는 그때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가 밀어붙여, 어쩔 수 없이 허락 비슷한 것을 했을 뿐 곧바로 후회한 것이 아닐까. 아니, 설사 허락했더라도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게 아니었을까.
신은 그에게 타인과 닿아서는 안 되는 저주를 줬다.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신 그러한 저주를 내린 것이다. 그러니 기적적으로 그 법칙에서 벗어난 이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밤을 보내며 체온을 나누다니. 신이 더 이상 눈감아줄 수 없다 판단했다면?
어떻게든 돌아오긴 했지만, 사라졌던 이유도 돌아온 이유도 전혀 모른다. 그러니 지금 이 생각이 지나친 거라고, 괜한 걱정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으리라.
마지막 기회로 그녀가 돌아온 거고, 다시 손을 뻗었다는 이유로 사라지게 된다면?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빨리 황궁으로 가야 한다. 아직 그가 스스로를 억누를 수 있을 때, 황궁에서 실바코프를 찾아, 그의 말을 듣고……. 그 뒤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고, 계속해서 그렇게 되뇌지 않았던가.
하지만 겨우 며칠이니 억누를 수 있다 생각한 것 자체가 오판이었다. 말을 타기 위해서라지만 종일 그녀를 품 안에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방에서, 얇은 잠옷 차림에, 무방비로 자는 모습에……. 사실 지금도 힘들다. 한밤중, 단둘인 방에서 피하지 말아달라며 울며 매달리는 연인이라니. 간신히 막아놓은 욕망은 아주 작은 계기만 있어도 곧바로 터져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자, 수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그럼 잠깐 이리 와봐요.”
수아가 그의 팔을 끌었다.
“여기 앉아봐요.”
그가 끌려간 곳은 침대였다. 그가 엉겁결에 그곳에 앉아 둘의 눈높이는 거의 비슷해졌다. 수아는 그의 어깨를 잡아 시선을 맞추고는 하르페니언이 얼굴을 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까, 알이 하는 말은 알이 그럴 자격이 없는데 저를 덮쳐서, 제가 사라졌다는 말인 거죠?”
수아는 빙긋 웃었다.
“그러면 해결책은 간단하겠네요.”
그녀는 하르페니언의 어깨를 강하게 밀었다. 물론 그의 기준에서는 떠밀릴 정도의 힘이 아니었지만, 수아가 너무 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일단 순순히 그녀가 원하는 대로 조금 뒤로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수아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그가 어느 정도 떠밀리자 아예 체중을 실어 그를 확 밀어버렸다.
그러자 하르페니언은 정말로 균형을 잃고 그대로 침대 위로 넘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팔로 받쳐 반 정도 몸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새인 그에게, 그 위로 수아가 몸을 바짝 붙이며 올라탔다.
“제가 알을 덮치면 되니까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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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이거 죄송합니다!”
남자가 멋쩍은 듯 꾸벅 사과를 했다.
옆에 있던 남자의 일행이 무슨 팔을 그렇게 크게 휘두르느냐고 핀잔을 주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하르페니언은 그 사과에 무어라고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들이 인파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알.”
수아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동시에 툭, 누군가가 그를 치고 지나갔다.
“하.”
하르페니언이 웃는지 우는지 미묘한 얼굴로 수아에게로 한 걸음 다가가 팔을 그녀의 허리에 감았다. 그가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죽지, 않았어.”
“네.”
그의 품 안에 안긴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주는 끝났잖아요.”
“그렇지…….”
“그러니, 괜찮아요.”
“그래.”
그러는 사이 둘을 내려놓은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마차를 피하면서 인파가 더 몰린다.
당연히 하르페니언과 수아도 그 사람들 속에 휩쓸렸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
그는 다시 한 번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확실한 웃음이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