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는 수많은 감정들이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기쁨과 슬픔, 절망과 두려움, 고통과 고독 등 우리 인간이 자신을 소홀히 대함으로써 야기되는 모든 것, 폭력이나 경솔함, 순진함 등 사회가 빚어내는 모든 것이 응급실에서는 집약적으로 농축되어 나타난다. 요컨대 응급실은 인간적이고 사회적이며, 철학적이고 과학적이며, 윤리적이고 정치적이다. 파트릭 펠루는 그러한 극단을 다루는 기자다. 당신이 만일 당신이 몸담고 사는 사회를 이해하고 싶다면, 파트릭 펠루의 글을 읽어야 한다. --- p.10
새벽 3시에는 파리의 그 어떤 병원 응급실에도 빈 침대가 남아 있지 않다. 전문 분야만을 고집하고 수익을 앞세우는 사설종합병원들로부터도 딱지를 맞았다. 프랑스에서는 날이 갈수록 환자들의 입원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말은 많았지만 정작 구체적으로 실현된 정책은 하나도 없다. 머지않아 병원들은 매니지먼트며 효율, 수익성을 앞세우는 기업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 --- p.21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공공서비스를 와해시키기 위해 병원 인력들의 시위를 이용하려는 정치적 집단이 야기한 것이다. 이들의 전략은 명백하다. 이들은 보란 듯이 “자, 병원에서 일하는 자들 스스로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느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같은 각본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될지는 이미 세계무역기구 헌장에 명시되어 있다. 요컨대 ‘민영화’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여름에 몰아닥친 폭염으로 인한 재앙이나 동남아시아의 쓰나미 재앙 등은 민영화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효율적인 공중보건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공동체적인 지혜를 모을 것을 종용한다. 공중보건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체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보건 서비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 p.43
영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적지 않은 의사들은 요즘 복도까지 환자가 넘치는 응급실은 아예 외면해버린다. 회계 전문가들이나 내세울 만한 이 논리를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의사들이 앞장서서 그런다는 말이다. --- p.78
응급실 서비스는 우리 사회를 증언하는 증인이며, 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가두시위가 평화스럽게 끝났는지, 시중에 유통되는 코카인의 순도가 높은지 낮은지, 어떤 기업이 공사장에 지지대를 부실하게 설치했는지를 제일 먼저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응급실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속일 수 없는 지표다. 우리 사회에서 건강이 좋지 않아 휴양을 요하는 봉급생활자들 가운데, 해고가 두려워 업무 중단 처방을 거절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당신은 혹시 알고 있는가? --- p.88
우리의 임무는 인도주의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기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가난한 사람들,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 그 밖에 또 다른 이유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도 몸이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그리는 사회, 즉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연대감을 느끼며, 치료 앞에 평등한 사회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의 투쟁은 이와 같은 사회를 지키기 위한, 혹은 만들기 위한 투쟁이기도 한다. --- p.89
사람들이 나한테 아무리 험한 말을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의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환자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공공병원 책임자들은 한 번쯤 반드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력 부족, 병상 부족 등으로 매일매일 숨 가쁘게 뛰어도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해줄 수 없는 우리가 느끼는 분노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긴, 나도 넘치도록 예산을 배정받을 때 느끼는 희열감 따위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 p.130
의료행위별 수가 책정을 보자면, 그걸 시행해야만 병원은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다. 그러니 공공종합병원이나 사설종합병원들이 저마다 가장 수가가 높은 의료행위에 치중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병원 문화는 사라지고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만 남게 되어, 급기야 환자를 선별해서 받는 비극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 p.160
오늘이 있기까지 당신은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미래가 평탄하리라고는 믿지 마십시오. 의학이란 자연과학인 동시에 사회과학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앞으로 한평생을 의학계에서 보내게 되겠지요. 한 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이니까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을 택했으며, 그 직업은 당신의 존재 자체인 동시에 당신을 억압하는 구속이 될 것입니다. 물론 당신의 성취감 또한 커질 것입니다. 그 성취감은, 자꾸만 의심이 들어 우울해지는 날들을 위해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하십시오. --- p.305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가 벌인 파업과 관련해서는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할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정부는 모든 언로를 차단했다. 이것은 응급실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정신과 병동이 있는 크로자티에 가에는 일자리를 늘리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렇지만 건물 입구는 단단히 봉쇄되어 있다. 홍부 담당, 경비원, 병동 직원들이 기자란 기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기 때문이다. 병원 경영진은 치료 인력을 뽑는 데는 인색하지만, 홍보 담당 직원들을 뽑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너그럽다. 공공종합병원 죽이기 계획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려면 그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 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