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멕시코 만류가 흐르는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여든네 날이 지나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처음 마흔 날 동안은 소년이 함께 배를 탔다. 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은 채 마흔 날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는 이쯤 되면 노인이 꼼짝없이 ‘살라오’, 그러니까 모질게 운이 없는 거라고 말했다. --- p.11
“물고기야.” 노인이 말했다. “난 널 사랑하고 무척이나 존경해. 하지만 오늘이 다 가기 전에 널 죽이고 말 거야.”
그리될 거라고 생각하자꾸나, 노인은 생각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북쪽 하늘에서 배를 향해 날아왔다. 휘파람새였다. 새는 물 위를 스치듯 날았다. 노인은 새가 몹시 지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새는 고물로 다가와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다시 날아올라 노인의 머리 위를 빙 돌고는 낚싯줄에 앉았다. 거기가 좀 더 편안할 거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몇 살이니?” 노인이 새한테 물었다. “이게 첫 나들이인가 보구나?” --- p.69
“물고기야, 여태 지치지 않았다면.” 노인이 소리 내어 말했다. “너도 아주 유별난 놈이다.”
노인은 이제 녹초가 됐고 이내 밤이 오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딴생각으로 머리를 채워 보려고 했다. 노인은 메이저리그를 떠올렸다. 노인한테 메이저리그는 ‘그란 리가스’였다. 노인은 뉴욕 양키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시합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후에고스의 결과도 모른 채 이틀이나 지났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가져야 해. 발꿈치의 뼈돌기 통증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걸 빈틈없이 해내는 위대한 디마지오 선수에 대한 도리를 지켜야 해. 그런데 뼈돌기를 뭐라 하지? 노인은 자신에게 물었다. ‘운 에스푸엘라 데 우에소’. 우리한테 그런 건 돋지 않아. 발뒤꿈치에 싸움닭의 쇠 발톱이 박힌 것만큼이나 아플까? 나 같으면 배겨 내지 못할 거야. 한쪽이나 양쪽 눈을 다 잃고도 집요하게 싸우는 싸움닭처럼은 못할 거야. 커다란 새나 짐승에 비하면 인간은 하잘것없어. 나 같으면 차라리 바다 밑 암흑 속에 사는 저런 야수가 되겠어. --- pp.83~84
놈이 다시 한 바퀴 돌고 왔을 때 노인은 녀석을 거의 잡을 뻔했다. 하지만 놈은 다시금 자세를 바로잡고 천천히 헤엄쳐 가 버렸다.
물고기야, 네가 날 죽일 심산이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그럴 만도 하지. 형제야, 난 이제껏 너보다 근사하고, 너보다 아름답고, 너보다 태연하고, 너보다 기품 있는 놈을 본 적이 없어. 자, 와서 날 죽여 봐. 누군가는 죽이든 죽든 해야 하니까. --- pp.109~110
너무 좋은 일이라서 오래가지 않은 거야,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 모든 게 다 꿈이라면. 저 물고기를 바늘에 꿴 적도 없고 그냥 지금 신문지가 깔린 침대에 혼자 누워 있는 거라면 좋으련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야.” 노인이 말했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아.” 그렇긴 해도 저 물고기를 죽인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군. 아무튼 이제 고약한 시간이 닥칠 텐데 작살마저 없으니 어쩌지. 덴투소는 잔인하고 몹쓸 짓엔 이골이 난 데다 드세고 영리하기까지 한 놈들인데. 하지만 아까는 그놈보다 내가 더 영리했어. 어쩌면 아닐는지도 몰라, 노인은 생각했다. 그저 내 무기가 더 좋았던 건지도 몰라.
“이 늙은이야, 객쩍은 생각일랑 집어치워.” 노인은 소리 내어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 일이 터지면 그때 가서 처리하면 돼.” --- pp.123~124
낚시는 헤밍웨이에게 투우가 선사하는 실존적 희열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해 주었다. 투우 관람이 간접 경험이었던 반면, 낚시는 그에게 상대와 몸소 겨룰 수 있는 직접 경험을 제공했다. 그가 낚시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낚시와 글쓰기 사이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낚시꾼이나 작가나 꾸준히 해야 하고,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당길 때와 늦출 때를 알아야 하고, 과감해야 하고, 성공에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실패에 지나치게 낙담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와 낚시를 그렇게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헤밍웨이가 바다와 낚시를 본격적인 소재로 삼은 소설은 『노인과 바다』가 유일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전쟁터에 갔다 오면 소설 한두 편은 거뜬히 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바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바다는 싸움을 벌이는 인간이 가늠하기엔 너무나 광활하고 심오한, 그리고 철저하게 고독한 공간이었다.
--- pp.171~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