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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곳이 생겼다

그리운 곳이 생겼다

: 호원숙의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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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50g | 140*195*30mm
ISBN13 9788960902756
ISBN10 896090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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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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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허황된 마음이 있었다. 쓰지도 않은 소설의 제목을 생각해본다든지 내지도 않은 시집의 서문을 머릿속으로 써본다든지 하는, 주로 문학에 관한 것이었다. 문학의 문 밖에서 마냥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 여행기로 말미암아 그렇게 그리운 곳이 생겼다.
그리워할 곳이 생겼으므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나만의 만족이 아니고 빛났던 그 순간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라고 쓰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축복을 나누어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어머니의 85세 생신에 이 책을 드리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책머리에」중에서

나는 이마에 붉은 점을 찍으러 왔다. 또 하나의 눈을 뜨러 산을 넘어 강을 건너왔다. --- p.37

만 50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마음이 설레고 아직도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더 훌륭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나. 나를 낳아주신 엄마, 나를 무조건 사랑하셨던 아버지, 그리고 먼저 간 그리운 동생, 나의 짝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정글의 밤공기는 신비로워 모든 기억들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 p.39

어머니와 꽃밭을 거닌다. 모녀가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부겐베리아, 포피, 카베라, 금송화, 팬지 그리고 토끼 장난감 같은 열매 달린 나무, 포인세티아. 겨울이라 1년 중 가장 꽃이 덜 피는 계절이라는데도 충분히 예쁘다. 어머니와 나는 봄이 오면 아치울에 꽃을 가꿀 꿈에 부푼다. 달밤에 마차푸차레가 보이면 호수에 거울처럼 비쳐 사람을 황홀하게 한다는데 달은 안 떴지만 나는 황홀했다. --- p.50

그때 어머니의 준엄한 음성이 들린다. “응석 부리지 마라. 더 좋은 걸로 또 사면 되지.” --- p.103

수체아바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멀리 왔고 곤고하기 때문일까. 어머니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내가 박경리 선생 돌아가시고 얼마나 허전한지 아니” 하신다. 그분의 장례 기간 동안 장례위원장이라는 생전 연습해보지도 않은 일을 잘 치른 어머니다. 원주에서 감자나 김치를 가져가라는 전화를 받으면 기꺼이 달려가던 어머니다. 돌보아줄 웃어른이 없다는 것, 마음이 저리다. --- p.166

열대의 꽃들이여, 그 선명한 빛깔에 그 빛의 그늘에 마음이 떨린다. 아무리 태양이 뜨겁게 내리쬔다지만 쉽게 꽃이 피었을 리 없다. 바람개비처럼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노란 꽃그늘이 아름답기도 하다. 유도화와 부겐베리아. --- pp.238~239

드디어 울음이 터진다. 인생길도 이 돌밭처럼 지루하고 재미없고 힘들게만 이어진다면. 문득 그럴지도 몰라. 스스로에게 묻는다. 네 인생에 무얼 그리 힘들게 살아보았니? --- p.256

여행에서는 무엇보다도 잔재미가 중요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유럽의 역사나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전쟁이나 패권의 역사보다는 골목 바닥에 깔린 반들반들한 돌의 감촉을 더듬는 것이 좋다. 그 돌바닥이 알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다. --- p.273

이런 좋은 시간을 갖기 위해 살아온 것인가? 나는 그저 감사하여 눈을 가느스름하게 뜰 뿐이다. --- p.284

나는 작은 십자가를 사서 그 언덕 언저리에 심는다. 엄마의 영혼을 위하여.
발틱해 3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장소였다. 비 뿌리는 십자가 언덕을 다 돌고 내려오니 비가 개이고 멀리 보이는 성당 위로 무지개가 떴다. 나의 작은 참회를 너그러이 받아주신 것같이 보였다. 그 무지개는 마음속 무거움을 내려놓아주었다. 바로 십자가 언덕에서 많은 영혼들이 위로받았듯이. 십자가의 신비였다. --- pp.298~299

나는 비가 추적추적 오는 창가를 내다보며 엄마는 여기 와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김윤식 선생님은 페테르부르크에 어머니와 같이 오셨다고 사진을 보여주셨다. 두 분은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까? 뜻도 없이 엄마를 불러본다. 마치 엄마의 아주 오래된 연인을 찾아온 것 같다. --- pp.313~314

이제 비아의 여행은 끝나갑니다. 인생의 여정을 마친 엄마를 뜻도 없이 불러봅니다. --- p.317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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