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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베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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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574g | 153*224*20mm
ISBN13 9788987578385
ISBN10 8987578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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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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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넘어 돌고~ 돌아~
목소리도 끊겼다 이어졌다…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소리 높여 노래도 불렀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게 행복한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술을 마시면서 아름다운 들판 길을 걸어가는 맛을 여기 아니면 어디서 느끼랴? 내 기분이 한껏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마냥 훈훈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쩐지 훵하고도 서글픈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건 아마 이 수수께끼 같은 길을 걷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는 생각이 드는가 싶었는데, 문득 평소에도 내가 즐겨 쓰는 말인 ‘베짱이’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에서 베짱이요.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겨울 베짱이’로군요, 힘조차 쓸 수 없는…
순간,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얼른, 그건 들판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나는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던 비노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 앞으로 구부러진 춤추듯 멀기만 한 들길을 구불고불 춤을 추듯 휘청대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내 모습은 어쩌면 영락없는 힘 빠진 겨울의 베짱이 모습일 터였습니다.
--- 본문 중에서

하늘 저쪽에서 구름이 몰려오더니 벌판에 그림자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얼룩 그림자들은 너른 평원을 소리 없이 돌아다니는데...
멀쩡했던 하늘엔 구름들로 꽉 차는 듯하더니 또 군데군데 파란 여백도 만들어 놓는다. 그렇게 내 눈 앞의 세상은 저절로 유희를 하고 있었다.
아, 신비한 세상. 홀로 아름다운 세상.

이 세상은 정적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바람소리나 흘러가는 구름소리.
그것도 아니라면, 내 숨소리뿐이다.
어? 그러고 보니 내가 있었구나!
그런데 이제는 나도 떠나야 하는데, 내가 일어나 짐을 챙겨서 걸어가다 보면 이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풍광을 깨버리는 꼴이 될 텐데, 이를 어쩐다냐?

어째, 나는 쉬 떠날 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난 이 세상의 필요 없는 방해물이었다.
--- 본문 중에서

큼직한 눈송이들이 얼굴을 때리거나 이따금 그 중 한둘이 입 속으로 들어오면 그대로 받아먹으면서 걸었습니다.

그 너른 들판이 어느새 또 하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눈이 내리니, 시야는 좁혀지면서 아늑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그런데 내가 걸어가는 세상은 어디가 어딘지 방향 감각도 잊혀지도록 몽롱한 공간으로 바뀌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인가? 이 세상인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던 다른 세상인가?
그런데도 나는 지금 어디로 걸어가고 있단 말인가…
하얗고 뽀얀 세상에 내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그저 아무 변화도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그 세상 한가운데엔 오직 길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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