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rg Zink
목사, 저술가, 평화운동가, 환경운동가, TV 설교가, 청소년과 청년의 벗.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 별칭이다.
1922년 독일 남부 슐뤼히터른-엘름의 작은 마을 하버르츠호프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초대교회 성도의 생활을 본받아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네 살 때 울름으로 이사해서 숲과 자연을 벗하며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냈다.
2차 세계대전에 공군 통신기사로 참전했다가 그가 탄 전투기가 영국군의 폭격을 받아 대서양에 떨어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결핵에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그는 시에 심취했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개신교 신학을 공부하고 1955년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헬무트 틸리케 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목회자로서 활동하며, 독일개신교연합(EKD)에서 청소년을 위해 운영하는 베를린의 부르크하르트하우스의 원장이 되어 동서독 청소년·청년들과 자주 만났다.(1957~1961년) 1961~1980년에는 뷔르템베르크 주교회의 언론-미디어 책임자가 되어 언론, 사진, 기독교 영화, 라디오-TV 프로그램 제작 등에 직간접적 관여했다. 그리고 중동평화문제와 저작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이때부터 성경번역가와 저술가로 발돋움하고 점점 유명해졌다. 국영텔레비젼 방송(ARD)의 ‘주일예배 실황중계’를 기획하여 100회 이상 설교자로 출연했다.
1972년 슈투트가르트 근교 뫼링엔에 청소년농장 할덴비제(Haldenwiese)을 세웠다. 지금도 청소년들이 이곳을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1970년부터 현재까지 그는 독일에서 명망있는 저술가로 사랑받고 있다. 성경과 신학과 예수님에 관련된 책, 기도서, 영성과 신비주의에 관한 책, 건강한 기독교를 지향하는 책, 이웃종교와의 대화에 관련된 책, 그리고 신앙의 정신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책, 사진 및 그림 명상록 등을 아주 많이 저술했다.
號 五仙?
1960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조부의 영향을 받아 한글보다 한자를 먼저 깨쳤다. 초등학생 때 15일간 혼수상태에서 죽어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환상 중에 만나뵙고 회복되었다.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투병생활을 하던 중 그동안 키워오던 한학(漢學)의 꿈을 접고 신학(神學)으로 방향을 돌렸다. 한신대학교 시절 청년회 전국대회 자료집 집필에 참여했으며 대학신문 ‘한신학보’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졸업 후 청년을 위한 성경연구서 ‘해방공동체 시리즈I I, III, V’를 공동 저술하였다. 책자를 공동집필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부족함을 절감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 마인츠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교 시절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국가고시로 치르고, 아람어와 아카드어를 배웠다. 박사학위(Dr. Theol)는 ‘아모스 예언서의 다섯 가지 환상에 나타난 신학적 메시지’로 받았다.(구약성서신학 전공) 이 주제를 택한 까닭은 어린 시절 환상 속에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났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학위 취득 후 헤센나사우 주교회(EKHN) 소속 라인마인한인교회 목사로 7년여 섬기는 한편 에큐메니컬 대표자회의 정회원으로 독일 교회의 선교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2007년 서울로 돌아와 수도교회 담임목사로, 한신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세미나를 지도하는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2010년부터 한국생명의전화(사) 상담원으로 자원봉사하고 있다.
신학공부를 시작한 이래 36년 넘도록 구약성경에 집중했으나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다만 그리스도교 신앙과 서양 고전어들 및 동양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취미는 농사짓는 것이며 이따금 시와 한시(漢詩)를 어설프게 끄적거리기도 한다.
저서로는 《해방공동체 II. III. V》(공저) 《드디어 그날이 이르고》 《하나님께 기도해요》(공저) 《다윗도 사무엘도 몰랐다》 《표적이 전하는 소리를 듣는가? -출애굽기와 손잡고 거닐기 I》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