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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8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74g | 128*188*20mm
ISBN13 9788932028903
ISBN10 8932028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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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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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이 태어났다고 기록된 곳에 한번 와보고 싶었다. [……] 그녀는 유독 어릴 때 들었던 어떤 말 때문에 늘 힘들었다. 니 에미가 낳은 애가 죽어서 니가 태어난 거야. 사내애였어. 그건 그녀의 부모들이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자주 들었다. [……] 그녀는 늘 그 애에게 미안했고 그 애의 목숨을 빼앗아 태어난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니 그 애를 대신해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엿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늘 우울하고 말이 없는 아버지도 그 죽은 아이를 잊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널 대신해 사는 주제에 이렇게밖에 살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귀향」중에서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본 건 딱 두 번뿐이었어. 한 번은 뉴욕에서, 또 한 번은 일본의 어느 시골 미술관에서였어. 미술에 대단한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폴록을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폴록이라는 이름의 어감 때문에 그의 그림을 좋아했던 것 같아. [……] 미국에서 폴록을 봤을 때, 그 전시실에 들어갔을 때 폴록의 경쟁자였던 빌럼 데 쿠닝과 마크 로스코, 그리고 폴록의 그림이 한 공간에 있었어. 나는 그냥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어. 그걸 본 것으로 내 생의 더러운, 비루한 일들을 덮자고. 아주 좋아하는 그림들이었어. 그제야 나는 알았던 것 같아. 뭐든 그냥 아주 잠깐 흘러간다는 걸. ---「폴록」중에서

수연은 자기 마음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었다. 자신의 마음은 거실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진욱이 보고 싶다거나 헤어져 슬프다거나 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모든 게 다 무서웠다. [……] 그리고 수연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렸다. [……] 엄마의 방 쪽을 쳐다봤다. 그녀는 금세 그것이 재즈 가수의 스캣 송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엄마의 방문을 열었다. 한여름도 아닌데 창은 조금 열려 있었고 엄마는 어깨를 웅크린 채 재즈 가수의 스캣을 연상시키는 신음을 내고 있었다. 공포에 들린 것처럼 목젖이 떨리며 나는 소리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슬픈 소리였다. ---「불치不治」중에서

공터의 휠체어 탄 사람들도, 조금 가까이 있는 여고생들도, 의자에 앉은 파마머리 노인도 거대한 황사에 갇힌 불확실한 실루엣으로 보일 뿐이었다. 사실 모든 게 그랬다. 모두 다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진리였다. 눈앞을 죄다 가리는 돔 하늘과 황사는 잘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믿을 수 없는 건 나 자신이었다. ---「맹지盲地」중에서

유진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임신을 했었어요. 유전자 이상이라고 해서 지워버렸죠. [……] 그런데 가끔 이상하게도 그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게 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낳아서 고생고생하며 키웠다면 누가 내게 큰 행복을 주었을까요? 웃기는 얘기죠. 얼마 전에는 딱 그 얼굴을 한 여자아이가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서 있는 모습을 봤어요. 저는 열 정거장이나 그 아이를 따라갔어요. 그 아이는 행복해 보였어요. 음악에 취해서요. 아, 당신한테 이런 얘기를 했군요. 저는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어요. 펑펑 울었죠. 어차피 우린 다시 안 볼 사이니까 괜찮아요.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해명海鳴」중에서

돌아서서 발을 한 짝 옮기는 순간, 정연은 발목이 꺾여 그 자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정연의 얼굴은 논바닥에 붙었다. 들고 있던 가방은 저 혼자 날아가 논바닥에 처박히고 사과는 저만치 앞 논바닥 위에 떨어졌다. 정연은 뺨을 논바닥에 대고, 그 상태로, 눈을 감고 웃었다. 자꾸 웃음이 났다. ---「검은 웅덩이」중에서

내가 태어난 곳에는 바다가 없다. 그곳에는 박스 공장과 가죽 가공 공장과 타이어 공장과 자전거 수리점과 숨이 막히는 분지와 고리타분한 관습과 인본주의와 악을 적당히 감춰주는 안개만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곧 바다에 다다랐다. 파란 바닷물이 발에 닿는 순간, 나는 전율했다. 바닷물보다 많은 사람들이 해안가에 서 있었다. 정유미 실장은 실크 정장을 입은 채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 서서 바다를 상대로 호객 중이었다. 또 다른 정유미 실장과 박 아무개 실장과 양복과 양장을 입은 수많은 실장들이 해안가의 소나무처럼 늘어서서 우리를 따라왔다.
---「가위와 풀」중에서

도시로 돌아왔어요.
혼자서 빌딩 사이를 돌아다녔죠. 그러고 보면 난 늘 한밤중에 문 닫힌 건물들뿐인 도시에 대고 뭔가를 하소연했던 것 같아요.
---「크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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