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의 환상
우리 인간이 주변의 세계를 형성하고 그 세계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즉 우리에게 몸을 숨길 집과 온기, 음식과 물, 보호와 위생 및 약을 제공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인간이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환경을 통제하는 이 놀라운 능력이 우리에게 다른 세계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물질세계에서는 통제 전략이 대체로 잘 먹혀 들어간다. 뭔가 싫어서 피하거나 없애버리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문 밖에 늑대가 버티고 있는가? 그 놈을 해치워버려라! 녀석에게 돌멩이를 던지거나 총을 쏘면 된다. 눈이 오는가? 아니면 비나 우박이 쏟아지는가? 대자연을 거역할 수는 없지만 동굴에 숨거나 오두막을 지어 피할 수는 있다. 바싹 마른 불모의 땅인가? 관개를 하고 퇴비를 주어 가꾸거나 아니면 다른 장소로 가버리면 된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세계에서는 어떠한가? 이를테면 생각과 기억, 감정, 욕구, 심상과 신체적 기분 말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들을 그냥 피하거나 제거할 수 있을까? 외부세계에서 쉽사리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내면세계에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배운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울지 마라”, “걱정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와 같은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이와 같은 말로 어른들은 우리에게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되풀이해서 가르쳤다. 그리고 확실히 어른들은 마치 자신을 통제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닫힌 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십중팔구 그런 어른들 대다수가 고통스러운 감정을 그다지 잘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지나친 음주를 하거나 마약을 복용하거나 매일 밤 울다가 잠이 들거나 외도를 하거나 일중독이 되거나 위궤양이 서서히 진행되는 동안 조용히 고통받았을 수 있다. 감정을 어떻게 처리했든 간에 어른들은 자신들이 겪어온 것들을 어린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어떻게 감정을 처리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관하지 말고 밝은 면을 봐라”, “낙심하지 마라”, “살다 보면 별일 다 겪는 거지”, “기운 내”와 같은 말들은 마치 스위치를 딸깍 켜듯이 자신의 의지대로 자기 감정을 켰다 껐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가 그다지도 저항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우리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인다’는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려고 버둥거리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생각하기 대 관찰하기
잠시 눈을 감고 그냥 마음이 무엇을 하는지 깨닫도록 하라. 마치 야생동물 사진작가가 덤불 속에서 희귀동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이미지에 찬찬히 주의를 기울여라. 만약 아무런 생각이나 이미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계속 주의를 기울여라. 장담하건대,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생각과 이미지가 어디에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라. 당신 앞에 있는가? 위에, 뒤에, 바로 옆에 또는 당신 안에 있는가? 잠시 동안 이렇게 했으면 다시 눈을 뜨도록 하라.
생각하는 자아는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라디오 방송과 비슷하다. 대체로 생각하는 자아는 24시간 동안 어두운 뉴스만 전하는 〈되는 것도 없고 우울한 라디오 쇼〉다. 생각하는 자아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나쁜 기억만을 되새기게 하고, 미래에 생길 나쁜 일에 대해 경고한다. 게다가 나쁜 기억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어쩌다가 유익하거나 격려가 될 만한 내용을 방송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만약 이 라디오를 계속 열심히 듣는다면(더 나쁘게는 들은 내용을 전부 믿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스트레스와 비참함뿐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라디오를 꺼버릴 방법이 없다. 그런 내공은 큰스님이라도 불가능하다. 이따금 라디오가 몇 초 동안(아주 드물게는 몇 분 동안) 저절로 멈추는 수는 있다. 하지만 마약이나 알코올, 또는 뇌수술 등으로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라디오를 멈추게 할 힘이 없다. 대체로 이 라디오 소리는 멈추려고 할수록 더 커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 라디오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계속 켜져 있지만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실제로 라디오 방송이 들리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라디오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지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우리가 해제를 연습할 때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자신의 생각이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일단 생각이 한마디의 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생각을 배경음악 소리와 같이 취급할 수 있다.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뿐더러 생각 때문에 정신이 혼란해지지 않고 그냥 왔다가 가게 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