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버락 오바마는 존 케리의 요청으로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했다. 존 케리는 오바마를 만나고 나서 이 젊은 정치인이 미래에 민주당의 얼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미국의 분열을 치유해 줄 사람”이라는 소개에 맞춰 연단에 선 오바마의 목소리는 전국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그는 중앙 정치 무대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누가 봐도 오바마의 연설은 최고였다. 웬만한 정치가라면 평생에 한 번 하기도 어려운 멋진 연설이었다. 그런데 그의 연설에서 종교적 의미를 찾아 귀를 세우고 있던 사람들은 중요한 하나의 문장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미국을 빨간 주와 파란 주로 나누어놓은 사람들을 비판할 때였다. 빨간 주는 공화당에게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는 주이고, 파란 주는 민주당에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는 주를 말한다. 오바마는 이렇게 꼬리표를 붙이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강력하게 주장하며, “우리는 파란 주에서 두려운 하나님을 경배합니다”라고 외쳤다.
이는 정치 좌파의 종교적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의식적인 시도였다. 그 말은 마틴 루터 킹과 함께 행진했던 수녀와 목사들, 베트남전에 항의하거나 노동운동 조직을 돕거나 체사르 차베스를 위해 기도했던 독실한 신자들의 발자국을 뒤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바마는 신앙에 기반한 정치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_ 1장 “이미 전설이 된 이름, 오바마” 중에서
정말 특이한 점은 오바마가 전혀 다른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지 않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탄생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초년에는 무신론, 민간 이슬람교, 그리고 종교를 인간의 창조물이나 정신 작용의 부산물로 보는 인문주의적 세계관의 영향 아래서 자랐다.
_ 2장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중에서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 사람들이 오랫동안 접한 미국에 대한 시각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다를 뿐 아니라 대부분의 흑인 교회에서 설교되는 것과도 전혀 달랐다. 라이트가 가르친 바에 따르면, 흑인―피부색에서 흑인인 사람이나 억업받는 자로서 흑인인 사람이나―에게 미국의 역사는 더 이상 ‘자유를 향한 여정’이라는 숭고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국 백인은 신세계에 마련한 최초의 정착지로서 제임스타운을 기억할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겠지만, 흑인에게 제임스타운은 1619년 미국의 노예제가 시작된 곳이었다. 미국 백인은 건국의 아버지들을 자랑스러워할 테지만,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 사람들은 그들을 입으로는 평등에 대해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노예제를 확대시킨 사람들로 생각해야 했다. 세상을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의 시각으로 보면, 미국은 언제나 억압하는 자의 편에 서 있었다.
_ 3장 “이곳은 또한 나의 집” 중에서
오바마의 경우는 전통적인 기독교 개종자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포스트모던 세대다. 오바마는 무조건적으로 성서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종교 때문에 비판적 사고를 그만둬야 하는 것은 아니다”는 점에 마음을 놓았다. 또 신앙 때문에 “자신이 알고 사랑하는 세상에서 도망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기뻐했다. 이미 확신하고 있는 진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는 게 아니라 “내가 품고 있던 질문들이 마술처럼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래서 개종을 하면서 “그분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나 자신을 바쳤다.”
그의 얘기는 어쩔 수 없이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종교를 내세우고 자랑하지 않으면 정치적 경쟁에서 쉽게 낙오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자신의 신앙을 지나치게 광범위한 의미의 언어로 묘사했다. 복음주의자들은 특히 불만이었다. 하지만 젊은 포스트모던 세대는 오바마의 얘기에서 정신적 탐구와 솔직함을 발견하고 기뻐했다. 그의 표현은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종교가 없는 사람들조차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_ 4장 “오바마의 신앙의 색깔” 중에서
민주주의는 신앙인들이 자신의 관심을 종교에 국한되지 않은 보편적인 가치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그들의 제안은 다른 사람들이 토의할 수 있어야 하며, 합리적 판단에 따라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종교적 이유에 따라 낙태에 반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한다면, 단순히 교회의 가르침을 얘기하거나 하느님의 뜻을 상기시키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겁니다. 낙태가 왜 모든 신앙인들, 나아가 무신론자들까지 동의할 수 있는 원칙에 거스르는지 설명해야 할 겁니다.
_ 5장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의 하느님” 중에서
오바마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에 맞게 재구성된 고전적인 미국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신앙 이야기에서 우리는 2008년 대통령 선거를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 하나를 발견한다. 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주요 등장인물은 그들 세대 수백만 명이 공유하는 종교적 여정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대선이라는 정치 드라마의 주인공들―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존 매케인, 조지 W. 부시―은 오늘날 미국 정치의 주요 세력을 대표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시대 신앙의 네 가지 얼굴이다. 오바마의 이야기는 이런 아이콘적 신앙 이야기들과 함께 이해되고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오바마의 얼굴은 그들 중 가장 눈에 띈다. 그는 흑인이며, 쉰 살도 채 안 되었다. 기독교인이지만, 비전통적이다. 컬럼비아와 하버드에서 수학했고, 진보주의자이며, 사회 정의를 추구하고, 넷 가운데 가장 자유주의적이다. 그의 얼굴은 미래의 얼굴이다. 오바마가 대선에서 승리할지 여부는 모르지만, 그는 미국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는 매케인과 클린턴과 부시와 함께 무대에 섰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과거에 속하는 얼굴이다. 그가 믿고 있듯, 그 혼자만이 미래를 안고 있다.
_ 6장 “매케인, 힐러리, 부시 그리고 오바마” 중에서
오바마는 이전 세대가 고통스럽게 견뎌야 했던 문제들을―차분하게 거리를 두고―다룰 기회를 새로운 세대에 마련해 주었다. 사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완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빈곤 · 인종 · 종교 문제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그는 미국에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나라가 치유를 향해 열려 있는 이 문 앞에서 생각에 빠져 망설이고 있는 동안, 오바마의 신앙은 이미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2008년의 선거전은 미국 역사상 종교의 영향 이 가장 컸던 선거전으로 손꼽힐 것이다. 오바마 역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민들에게 자신의 기도 생활, 교회에서의 삶, 목사와의 관계, 성서 해석 같은 주제에 대해 상세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사실 미국인들이 조지 부시의 신앙을 아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렸지만, 버락 오바마의 경우는 단 한 차례의 선거로 충분했다.
_ 7장 “상처를 치유할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