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성
어떤 사람은 사랑을 베푸는 데 100점짜리 기술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남들이 깨닫지 못한 놀라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데 100점짜리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개성이다.
바보 알베르트
초등학교 1학년 알베르트에게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알베르트, 어서 대답해 봐요. 내가 물은 것은 아주 쉬운 문제니까, 대답할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은 재촉을 하며 알베르트의 대답을 기다렸다.
“알베르트, 어서 대답해 보라니까.”
선생님의 음성이 살짝 높아지며 알베르트의 대답을 재촉했지만, 알베르트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손을 비비고 서 있었다. 마침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선생님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에잇, 바보 같은 녀석! 복도에 나가서 손들고 서 있어!”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이자 고금을 통해 가장 뛰어난 사상가로 꼽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어린시절 이야기이다. 이렇듯 그는 어린시절을 아둔하고 수줍은 지진아처럼 지냈다. 성장하며 겨우 말문이 열렸으나 어눌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지독하게 과묵한 탓에 ‘답답한 녀석’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은 그를 문제 학생으로 간주했으며 부모조차도 백치가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다. 어느 날 알베르트가 상점에서 물건을 샀다. 자신이 계산해 보기에는 거스름돈이 아무래도 모자라는 것 같아 주인에게 돈을 도로 내밀었다. 주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셈을 해 보았으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알베르트에게 거스름돈을 돌려주며 말했다.
“곤란한 아이군, 너는 도무지 셈을 할 줄 모르는구나!”
훗날 수학의 천재라고 불렸던 알베르트지만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간단한 산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그러니 주위 사람들이 어린 알베르트에게서 아무런 재능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김나지움(중등교육기관)에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이 이 딱한 알베르트를 앞에 두고 빈정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우리한테 ‘안녕’ 하고 작별인사를 한다면 정말 고맙겠다만…….”
“하지만 저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알베르트가 항의하자 선생님은 얼굴빛을 바꾸며 말했다.
“그야 뭐, 너를 퇴학시킬 뚜렷한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퇴학시키지 못할 이유도 없다. 수업 중에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네 수업태도가 전체 학생의 규율을 어지럽히고 학급의 평판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알고나 있느냐?”
알베르트는 이런 멸시까지 받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학생이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 1879~1955)은 독일의 남쪽 도나우 강 기슭에 있는 울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유태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무엇을 하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함’이라고 적혀 있을 정도였다. 알베르트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성적이 매우 뒤떨어진 이유는 당시 교육방법이 지나치게 주입식인데다가 학교의 규율이 군대와 흡사할 정도로 딱딱했으니 적응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자기가 싫으면 먹지 못하는 법이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흥미도 없는 과목을 강제로 배워야 한다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한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알베르트에게는 다른 아이들이 가지지 않은 남다른 집중력과 상상력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늘 알베르트를 격려하고 따뜻하게 위로하며 앞길을 열어 주는 데 주력했다. 저능아에 처치곤란의 문제아로 취급되었던 아들에게서 남과 다른 개성을 찾아내고 이를 육성·발전시킨 어머니의 교육이 바로 전무후무한 천재를 만든 힘이었다.
개성이란 어떤 것인가?
흔히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은 ‘네 동생을 봐라. 국어도 100점, 수학도 100인데, 넌 누구 닮아서 이 모양이냐?’라고 야단을 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교육이 경쟁구도로 되어 있다 보니 순위에 따른 결과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능력과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양과 크기가 같은 100점짜리 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계와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베푸는 데 100점짜리 기술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남들이 깨닫지 못한 놀라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데 100점짜리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개성이다. 이런 기술들은 국어와 산수를 잘하는 것과는 관계가 거의 없다. 국어, 영어, 수학을 잘해야 우수한 사람이고, 공상을 잘하거나 자연관찰을 잘한다고 해서 열등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판단법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분야에 놀라운 재능을 요구하다 보니 결국 경쟁 위주의 교육풍토가 자리잡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동등하게 중요한 위치에서 사회발전에 기여할 힘을 지니고 있다. 바로 개성을 존중하고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될 때, 사회는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유태인의 격언 중에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양쪽을 다 죽이지만, 형제의 개성을 비교하면 양쪽을 다 살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도 이런 유태인의 사고방식을 타고났기에 아들을 위대한 과학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여곡절 끝에 고통스런 독일의 김나지움을 떠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의 스위스 김나지움으로 옮겨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의 천재성은 단번에 두각을 나타내어 유럽에서 손꼽히는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 무시험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는 그 대학에서 33세 때 정교수가 되었고 42세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독일에서 누구도 손쓸 수 없이 쓸모 없던 학생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십여 년 만에 세계 최고의 천재로 둔갑한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독일에서 소심한 저능아 취급을 받으며 성장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는 없었을 것이며, 아마 구제불능의 사고뭉치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재능은 위대하고 특별한 사람만의 것은 아니다. 누구나 특별한 재능 한 가지쯤은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적인 교육과 자신감을 꺾는 환경이 천재를 둔재로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개성을 계발할 것인가?
개성은 각자가 타고나는 성질이다. 개성을 그저 독특한 개인의 성격으로만 생각하여 학습이나 일과 전혀 관계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아주 비능률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김치찌개를 만드는 방법은 동일하다. 하지만 다른 찌개도 김치찌개를 만드는 방법으로 만든다면 아주 이상한 결과를 낳는 것과 같다. 처리하는 방법이 낯설어도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라면 남들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며 공부와 일을 해야 잘 된다는 사람이 있다. 반면 주위가 조금이라도 산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개성은 사소하게 보이지만, 그 결과는 아주 큰 차이를 낳는다. 그러면 각자의 개성은 어떻게 발견하고 계발해야 하는가?
개성은 개인이 가진 기호(嗜好)의 집합체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면 병이 생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좇아가기 마련이다. 개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두는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재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재능이라는 것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결국 위인을 낳은 훌륭한 개성의 계발을 위해서 우선해야 할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피나는 노력을 통해 재능을 계발하는 것이다. 재능이란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천재라고 불릴 만큼 남다른 능력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다 해도 재능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내 그 재능은 멀어지고 그저 취미 정도로 남고 말 것이다. 반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이고 그 일을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날마다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분명 위대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