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은 경제학을 신뢰하지 않는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경제학자들이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학 이론으로, 또한 수치로는 불가능한 것이 인간의 정신력으로 실현된 데 대한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 왜 그럴까? 현실 경제와 부딪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과 경제학이 가르치는 것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상식선에서 ‘큰’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기적을 이루었는가”, “그런데 왜 갑자기 금융 위기에 빠졌는가”, “삼성, 현대와 같은 기업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짧은 기간에 세게적인 다국적 기업의 반열에 올랐는가”, “한국 경제, 지금 제대로 가고 있나”, “한미 FTA는 왜 필요한 것인가”, “공기업 개혁, 왜, 어떻게 해야 하나”, “주식시장은 투기꾼들이 지배하는가”, “부동산 시장, 때려잡아야 하나”, “환율, 왜 널뛰기를 하나” 등의 질문이다. 그러나 각종 ‘경제학’ 책이나 ‘한국경제론’, ‘한국경제사’ 책들은 이런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의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감히 씌어졌다. ‘학문적인’ 책과 ‘쉬운’ 책의 중간에서 철학, 이론, 역사와 현실이 묶여 있으면서 나름대로 관통하는 주제가 있고, 이것을 상식선에서 설명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 pp.5-7, 들어가는 말
경제를 이해하는 데에 슘페터가 중요한 이유는 창조와 혁신(innovation)을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핵심으로 끌고 들어온 데에 있다. 슘페터는 경제 주체들의 대응 방식을 ‘창조적 대응(creative response)’과 ‘적응적 대응(adaptive response)’으로 나누었고 경제 발전은 대부분 창조적 대응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 이렇게 새로운 혁신이 나오고 따라잡기 투자, 따라잡기 혁신이 벌어지면서 경제는 질적으로 도약한다. 슘페터는 이 과정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렀다. 종전 방식으로 사업하던 사람들은 도태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뛰어들었더라도 돈만 쏟아 부은 뒤 실패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필자는 슘페터의 시각이 경세제민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다스리고 국민들을 잘살게 하려면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제대로 된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 발전 과정에서 수많은 패배자들이 어쩔 수 없이 나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대책도 건설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는 창조하는 것이다. 파괴를 두려워해서 창조를 억눌러서는 안 된다. --- pp.28-32, ‘경제는 창조하는 것이다
필자는 고도성장을 하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러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특히 고도성장을 하겠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허언(虛言)이고 고도성장이 어렵다고 얘기하는 것을 냉철한 과학적 분석인 듯이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비판적이다.……
한국 경제와 같은 규모와 발전 단계에 있는 나라들 중에서 7퍼센트의 고성장을 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목표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패배주의의 발로인 것 같다. 한국과 같은 규모는 아닐지라도 한국보다 훨씬 선진국인 싱가폴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평균 8퍼센트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은 한국보다 발전 단계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25배가 넘는 인구를 끌고 연평균 10퍼센트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는 과거 한국 경제의 장점은, 다른 나라에서 겁먹고 ‘과잉 투자’라고 비판할 정도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던 데에 있었다. 이 장점을 죽이니까 저성장 체제에 빠진 것이다. 투자의 동력을 어떻게 되살리느냐에 따라 고도성장 여부는 결정될 것이다. --- pp.49-53, 고도성장 체념하는 것이 과학적인가
그러나 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을 길게 보면 폐쇄적이어서 문제가 있었기보다는, 개방을 적절히 잘했기 때문에 경제 기적을 일구어 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수출 주도 산업화’이다. 중남미 등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내수 시장을 활용하는 ‘수입 대체 산업화’를 추진했던 것과 달리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찍부터 수출 시장에 뛰어들어 국제적인 경쟁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경제 기적을 만들어 내는 대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금융 위기 직후에 국내외의 많은 지식인들과 국제기구들은 한국의 폐쇄성이 마치 금융 위기의 원인인 듯 지목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외국인 투자를 억제하는 대신 내국 기업들을 잘 육성해서 세계적인 토종 다국적 기업들을 배출해 내는 데에 성공했다. 외국인 투자를 적극 받아들인 싱가폴, 대만, 말레이시아 등이 이루지 못한 일이다. 한국 경제는 금융 위기에 다소 취약할지 몰라도 국내 역량을 강하게 키우는 데에 성공했다. --- pp.147-152, 한국 경제, 폐쇄적이었나
IMF 프로그램이 금융 위기국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외국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금융 위기를 당한 나라들은 IMF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어떤 대안이 있는가.……
금융 위기를 당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정답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국제 관계이니만큼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고 행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필자는 한국의 경우 IMF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채무 상환 유예(moratorium) 선언을 통해 자본 통제를 도입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라토리엄은 국내에서 종종 ‘채무 불이행’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본래 뜻은 ‘갚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갚는 거을 잠시 유예한다’는 것이다. ……
채무 상환 유예를 했다고 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격리되지 않는다. 러시아, 브라질은 채무 상환 유예 정도가 아니라 불이행의 전력까지 있는 나라들이다. 그러나 국제금융가는 이들을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채권을 조금이나마 더 확보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협상을 벌였다. 경제가 회복되면서 러시아와 브라질은 지금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국제금융가의 열렬한 구애(求愛)를 받고 있다. --- pp.242-248, 금융 위기 극복의 대안은
대기업-중소기업 영역을 정책적으로 나누어서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장 커다란 맹점은 정부가 그대로 놔두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영역을 모두 먹어 버릴지 모른다는 걱정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기업들이 확장하는 원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기우이다. 대기업들도 한정된 자원을 갖고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 뛰어들지 못한다. 오히려 대기업들이 빨리 성장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중소기업들이 사업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들을 계속 만들어 낸다. 기업성장론의 선구자인 펜로스(E. Penrose)는 이것을 ‘틈새(interstice)’의 창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 p.306,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상생(相生)의 관계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