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돌볼 때도 똑같은 경우가 있다. 오직 양과 양의 습성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뒤집힌" 양이나 "나둥그러진" 양의 의미를 이해한다.
이것은 영국의 옛 목자들이 완전히 뒤집혀져 스스로 일어날 수 없게 된 양을 표현하던 말이다.
"뒤집힌" 양은 매우 애처롭다. 등이 땅에 닿아 있고 네 발이 허공으로 들려진 그 양은 일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버둥거리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때로 도움을 바라고 잠시 매애- 매애- 소리 내어 울기는 하지만, 보통 두려움과 좌절감에 빠져 심하게 발버둥이치며 누워 있게 된다.
목자가 빠른 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하지 못할 경우 그 양은 죽게 된다. 이것은 목자가 주의 깊게 매일같이 양떼를 살펴서 수를 헤아려 보고 모두 다 제 발로 일어설 수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일이 그처럼 중요한 이유 중 한 가지이다. 만일 한두 마리가 모자랄 경우, 목자의 머리에 맨 먼저 스쳐 가는 생각은 "이 양이 어딘가에서 뒤집혀 있구나. 빨리 찾아서 다시 일으켜 주어야겠다." 하는 것이다.
내가 기르던 체비오트 품종의 양 가운데 한 마리가 잘 뒤집히기로 유명했다. 매해 봄 새끼를 가져 몸이 무거워질 때마다 그 양은 2, 3일에 한 번씩 꼭 뒤집혀져서, 오히려 뒤집히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내가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일으켜 세워 주어야만 그 양은 한 철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한 번은 며칠 동안 목장을 비워야 할 일이 있었다. 며칠 사이에도 그 양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린 아들을 불러 놓고 내가 없는 사이 그 양을 책임지고 잘 보살펴 주라고 일렀다. 만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 양이 제 발로 잘 걸어다니도록 보살펴 주면 수고한 값을 후히 주겠다고 약속했다.
매일 오후 학교가 끝나고 난 뒤 아들은 착실히 들에 나가 그 늙은 암양을 일으켜 세웠고 그리하여 그 양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꽤 고된 일이었으나 대신 양은 그 해 봄에 아주 예쁜 새끼 두 마리를 낳아 보답해 주었다.
예리한 눈으로 뒤집힌 양을 감시하는 것은 목자만이 아니다. 약탈자 곧 맹수들도 그렇게 한다. 독수리, 말똥가리, 들개, 이리, 표범 등도 다 뒤집힌 양은 쉽게 먹이로 삼을 수 있고 또한 얼마 안 있어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잘 안다.
무릇 "뒤집힌" 양은 다 무력하며 곧 죽게 되고 공격받기 쉽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목자는 뒤집힌 양을 심각하게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몸집이 크고, 가장 살이 찌고, 가장 힘이 세며, 때로 가장 건강한 양까지도 뒤집힐 수 있고 희생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목자는 양떼를 끊임없이 보살피고 주의를 쉬지 않는 것이다. 사실 가장 잘 뒤집히는 것은 종종 살진 양이다.
양이 뒤집히게 되는 경위는 보통 이렇다. 몸이 무겁고 살이 쪘거나 털이 긴 양은 다소 우묵하게 들어간 땅에 편안히 눕는다. 이런 곳에 눕다 보면 몸이 약간 안쪽으로 구를 수가 있다. 이때 까딱 잘못해 갑자기 몸의 중심을 잃게 되면 완전히 뒤집히고 만다.
뒤집힌 양은 공포에 사로잡혀 네 발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린다. 이러한 몸부림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몸이 더 굴러 내려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
버둥거리는 동안 양의 혹위(되새김질하는 동물의 첫 번째 위-역자 주) 속에는 가스가 차 오르기 시작한다. 가스가 차면 몸의 끝부분, 특히 사지 부분에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다가 급기야는 혈액 공급이 끊겨 버리고 만다.
날씨가 매우 덥고 햇볕이 내리쪼일 때면 뒤집힌 양은 수 시간 내에 죽을 수 있다. 혹 날씨가 선선하고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릴 경우에는 이런 상태에서 여러 날을 견뎌낼 수도 있다.
만일 뒤집힌 양이 새끼를 가진 암양이라면 그 같은 사고는 주인에게 이중 삼중의 손실을 가져온다. 만일 새끼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미와 함께 죽는다. 또한 젖을 먹는 어린 새끼들이라면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고 만다. 이 모든 것은 그 심각한 사태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문제들이다.
그럼 왜 목자가 이 문제에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내가 목자로 일하는 동안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몇몇 기억들은, 양떼의 수를 헤아리는 일과 반복적으로 뒤집힌 양을 구해 소생시키는 일에 대한 복잡한 염려로 얽혀 있다. 언제나 당면하는 이 위험에 대한 의식을 지면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자주 이른 새벽에 밖에 나가 하늘 저편에 시선을 던지곤 했다. 그러다가 검은 말똥가리가 천천히 큰 원을 그리며 하늘 위를 맴도는 것이 눈에 띄기라도 하면 불안에 사로잡혔다. 만사를 제쳐 두고 나는 즉시 거칠고 험한 목장으로 뛰어나가 양떼의 숫자를 헤아려 모두 무사한지 그리고 제 발로 일어설 수 있는지 확인했다.
이것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한 성경의 놀라운 비유 가운데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극적 장면의 일부이다. 거기에는 목자의 깊은 관심과, 고통스러운 수색과, 잃은 양을 찾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과, 찾아낸 양을 제 발로 일어설 수 있도록 소생시킬 뿐 아니라 우리로 데리고 돌아오는 데서 비롯되는 무한한 기쁨이 있다.
나는 여러 번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때마다 번번이 양은 먼 곳에 뒤집힌 채 누워 있었다. 나는 최대한 급히 서둘러서 달려갔다. 시간을 다투는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염려와 기쁨으로 항상 뒤얽혀 있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늦지 않았나 해서 염려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잃은 양을 찾아냈다는 생각에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집힌 양에게 가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양을 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양을 옆으로 굴려 바로 세웠다. 이렇게 하면 혹위 안에 차 있는 가스의 압력을 경감시켜 준다.
만일 양이 오랫동안 뒤집힌 채 있었을 경우에는 양의 몸통을 들어서 일으켜 세워 주어야만 했다. 그때에는 양 위에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양을 일으켜 세운 후 사지를 맛사지하여 혈액 순환이 회복되도록 해주어야 했다. 이 일은 상당한 시간을 요했다. 양은 일으켜 세운 후에도 자주 넘어지고 비틀거리다가 이내 또 힘없이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뒤집힌 양을 보살피는 내내 나는 양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 녀석아, 도대체 언제 네 발로 서는 법을 배울래?", "제 때에 너를 찾아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이 나쁜 녀석아!" 하는 말들을 들려주었다. 대화는 항상 그렇게 온화함과 나무람, 동정과 타이름으로 계속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양은 균형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바로 서서 제대로 걷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나머지 양떼를 향해 뛰어갔다. 두려움과 좌절감에서 해방되어 다시 한번 더 살 기회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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