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동물 90종에 대한 슬픈 보고서
--- 김병희(cbang36@yes24.com)
껑충껑충 뛰는 늑대
뾰족한 주둥이, 캥거루 꼬리를 하고서, 먹잇감이라도 노리는지 고개를 한껏 꺾어 무언가를 노려보는 기묘한 동물의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이 녀석의 턱은 뱀처럼 2단계로 열리기 때문에 먹이의 단단한 머리통이라도 단 한 번에 부술 수 있었고, 호랑이처럼 등에 줄무늬가 있었다는군요. 이렇게 써놓으면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인 듯 하지만, 앙증맞게도 가끔 캥거루처럼 두 발로 껑충껑충 뛰기도 했답니다. 어엿한 유대류로서 새끼는 배에 있는 주머니에 담아 길렀다는 이 동물의 이름은, 그래서 주머니 늑대입니다.
꼬리까지 합해 1.5 m~ 1.7 m나 되는 '늑대'가 주머니에 새끼를 담고서 두 발로 껑충껑충 뛰는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오스트레일리아에 갔다가 그걸 보면 멋진 추억이 되지 않겠습니까?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자랑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동네에선 늑대까지 주머니를 달고 뛰더라니깐. 넌 못 봤지?'
그렇다고 성급하게 여행 계획을 세우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1933년 이후의 여행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 가도 껑충껑충 뛰는 주머니 늑대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머니 늑대뿐인가요? 울음소리가 웃는 것처럼 들렸던 '웃는 올빼미', 복서처럼 폼을 잡던 '초승달발톱꼬리왈라비'와 '얼룩왈라비', 강을 거슬러 오르던 '뉴질랜드 은어'도 이제는 볼 수가 없습니다. 300 페이지 남짓의 작은 책 속에서 이제는 원산지는 물론 동물원에서도 볼 수 없는 16종의 오스트레일리아 동물을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바리 사자에서 세인트 헬레나 붉은 잠자리까지
이 책은 NHK 위성방송에서 '생물의 묵시록'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묶은 것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절멸된 90종의 그림과 원산지 지도,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멸종 동물들의 서식장소와 삽화가 꼼꼼하고, 두세 페이지의 소개글이 흥미롭습니다. 어느 동물이나 멸절된 사연과 마지막 발견된 장소까지 써두었습니다.
크고 사나운 동물들, 백수의 왕 바바리 사자나, 체중이 1톤이 넘는 코카서스 바이슨도 절멸되었습니다. 반대로 너무 작아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은 생물들도 이 죽음의 행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세인트헬레나 붉은 잠자리가 그렇고, 황금두꺼비가 그렇습니다. 이들이 살던 곳은 다르지만, 절멸된 이유는 거의 비슷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사람들 때문입니다. 식량으로, 장식품으로, 심지어는 그저 신기한 사냥감으로, 한 마리씩 차례로, 때로는 한꺼번에 수십만 마리씩 죽음 맞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온 들쥐에 희생되기도 하고, 가축이 가지고 있던 새로운 전염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따오기를 보지 못한 지 28년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느 늑대 종류가 멸종되었다거나, 어떤 색깔의 개구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그렇게 아쉬울 이유는 없습니다. 다른 종류의 늑대도 있고, 다른 색깔의 개구리도 찾아보면 많을 테니까요. 동물원에도 아직 많은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상하게도 이 책에 실린 동물들의 어딘지 슬픈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이들이 아직 살아있을 때 어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긴 팔, 긴 꼬리의 아즈에로 원숭이가 나무 사이를 건너뛰거나, 색색 깃털의 캐롤라이나 잉꼬가 나뭇가지에서 지저귀는 모습은 어땠을까요?
이들을 다시 봤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제가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 있는 건지 불안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따오기, 원앙이사촌, 두루미와 황새, 각종 매와 독수리, 수달 등이 멸종되었거나, 그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저도 이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작은 책을 가방에 챙깁니다. 조카에게 줘야겠어요. 조카가 커서 동요에 나오는 따오기를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들 2』에서 찾아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