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속 후에도 그는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스님이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일점 혈육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가슴을 친다. 의지가지가 없던 그에게 의탁할 곳이 산문 외에 또 어디에 있었겠는가. 불교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돈다고, 절은 자신에게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한 모태라고, 고향이라고, 그는 말한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김성동은 환속해 있으면서도 늘 정신은 산에 가 있는 사람이다. 두 자녀의 이름도 각각 미륵과 보리이다.
"김성동은 머리를 길러서도 언제나 스님, 미귀(未歸)의 나그네 설움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라고 시인 김지하가 평한 바 있다.
그러다가 그는 더는 견딜 수 없어 드디어 서울을 떠난다. 6년 전부터 멀리 지방으로 절이나 절 근처를 떠돌기 시작했으니, 영동의 영국사, 인제 백담사, 양평의 봉선사를 거쳐 지금은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자락 밑 어느 농갓집으로 흘러 들어가 있다. "쇠붙이가 지남철에 달라붙듯이 몸은 늘 절 근처에 가 있는 거야. 일부러 멀리했는데도 나도 모르게 절에 가 있는 거야."라고 그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모태로 돌아가려는 꿈은 영영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가? 막막한 허무감에 문학 창작의 일손도 놓고, 그렇게 4년쯤 이리저리 유전하고 있던 중, 뜻밖에도 그에게 심기일전할 기회가 생겼다. <불교신문>에서 소설 연재를 제안해 온 것인데, 그 신문의 발행처가 대한불교조계종으로 그를 산문에서 축출했던 바로 그 종단이었던 것이다. 혹시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복권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연재소설 <꿈>의 집필에 열심히 매달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제대로 된 종교소설을 쓰고 말겠다는 결의가 대단했던지라, 2년 동안의 소설 연재는 피를 말리는 수행과정이었다고 한다. 이 소설이 바로 불교문학상 수상작이다. 수행하는 한 젊은 승려의 갈등 깊은 내면을 공들여 정교하게 조탁된 아름다운 문체로 형상화해낸 이 소설은 불교소설의 압권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2002년)
--- pp. 233∼234
4.3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자, 나는 비로소 대학 때 일부 선배들이 보여준 그 한심한 콤플렉스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열등감이 아니라, 그 뿌리가 4.3의 비극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폭도, 용공의 누명을 쓴 채 죽어간 수만의 원혼들, 그 대참사에서 용케 살아남은 생존자들 역시 어쩔 수 없이 뿌리 깊은 피해의식에 눈이 멀게 되어버렸다.
4.3은 결코 발설해서는 안 될 무서운 금기여서 모든 사람의 입을 얼어붙게 했고, 피해의식은 깊이 내면화되어 마치 제2천성처럼 굳어져버렸다. 그것은 숙명적인 열패감, 자기부정 사상을 낳았고, 권력에 대한 맹목적 두려움, 중앙에 대한 맹목적인 선망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이것이 그 선배들이 보여준 콤플렉스의 실체가 아니었던가. 그 선배들에게는 손잡아 이끌어줄 바로 윗대 선배들이 전무하다시피 했는데, 그렇듯 4.3으로 인한 제주 인재의 손실은 실로 막심한 것이었다. 고향의 촌로들은 "마을의 똑똑한 사람들은 그 사태에 다 죽고 우리 같은 무식쟁이만 살아남았다"고 입 모아 말한다. (……) 중앙도서관에서 관계 자료를 찾아봤으나 극우 편향의 부실한 기록들만 보일 뿐이었다. 어느 날 그 도서관의 지하실에 박혀 있는 먼지투성이의 제주신문 철을 뒤지던 나는 4.3 당시 2년에 해당되는 부분이 뭉텅이째 탈락되어 있음을 보고 처연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제주신문을 접수한 서북청년단이 그 부분을 파괴해버린 것이었다. 4.3은 그렇게 잔인하게 찢겨 낙장이 되어 있었다. (1993년)
--- pp. 177∼178
장기 베스트셀러로서 놀라운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로마인 이야기』는 그 내용 자체가 파시즘의 성격이 짙은 책이다. 로마의 영광을 되찾자는 것이 바로 무솔리니의 슬로건이었거니와, 이 책은 무솔리니가 닮고자 했던 줄리어스 시저를 매우 매혹적인 카리스마로 묘사하는 등 호전적이고, 권모술수, 군사전략에 능한 냉혈의 파시스트들을 '영웅'으로 예찬하고 있다. 말하자면 선악의 구별은 싸움의 승패에 달려 있고 이긴 자만이 정의롭다는 것인데, 수많은 한국 독자들이 그러한 메시지에 매혹당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다. 일본 출생의 이 책은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었지만, 한국의 독자들처럼 그렇게 극성스런 관심을 보인 예는 없다. 파시즘을 용납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러한 독서 현상은 무엇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일까?
죽은 박정희가 되살아나고 있는 요즈음의 희한한 현상도 아마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30년 가까이 군부의 지배를 받아 파시즘에 익숙한 우리인데, 왜 그렇지 않겠는가. 건달의 냉혹한 세계를 그린 영화 <친구>가 대히트를 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임이 분명하다. (2001년)
--- pp. 108∼109
해는 어느새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사위는 시시각각 어두워 간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가까워졌다. 나는 옛사랑의 이름, 마리아를 위해서 술잔을 든다. 거나한 취기 속에 떠오른 그녀의 얼굴은 밝은 미소로 환하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의 그 애절한 표정이 아니어서 고맙다. 잘 있어, 마리아. 자살한 그 두 선배와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두 친구에게도 술잔을 돌린다. 두 녀석 역시 슬픈 표정이 아니다. 야릇하게 비틀린 캐리커처처럼 재미있고 익살맞은 표정인데, 술기운으로 불콰하다. "애련아, 애련아, 외상 없는 인생 열차에……"를 잘 불렀던 창남이, 작살질의 명수 의광이, 솔치에 쐬여 발이 퉁퉁 부었는데도 그 아픔을 참느라고 눈물을 찔금거리면서 아리랑을 불러대던 녀석. 자, 한잔들 해. (2002년)
--- pp. 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