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마을을 일궈오는 동안 숱하게 '나눔의 기적'을 체험했다. 쌀독이 빌 만하면 쌀가마를 짊어지고 나타나는 후원자가 있었고, 슬픔에 빠진 형제 자매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슬퍼하다보면 어느새 슬픔이 기쁨으로 변했다. 이러한 기적은 모든 후원 회원과 은인들이 베풀어준 것이다. 우리의 후원 회원 중에는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돼지저금통을 통통하게 살찌워 갖고 오는 어린 남매도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나눔이다. 물론 새 같은 미물도 먹이를 물어다 제 새끼들에게 나눠주지만 그것은 모성적 본능이지 나눔의 차원은 아니다. 자신도 부족함을 느끼면서 자신보다 더 못 가진 이웃에게 나눠줄 줄 아는 동물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눈다는 것은 단순한 미덕을 넘어 인간애의 실천이요, 인간이 존엄을 지키는 행위이다. 우리 조상들은 곤궁한 시절에 '콩 반쪽도 나눠먹는' 나눔으로 그 같은 인륜을 지켰다. 그런데 풍요를 구가하는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남의 콩까지 가로채 자신의 창고에 쌓아놓아야 안심이 되는지 소유욕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 인류 역사를 들춰낼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만 해도 지금처럼 물질적 풍요를 구가했던 호시절이 없건만, 역설적이게도 나눔은 점점 사라지고 소유욕만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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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사랑하면 사랑하는 자신이 좋다. 남을 미워하면 자신이 괴로워진다. 그래서 “남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잘 살펴보면 행복해지는 길,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이 훤히 보인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를 소중히 여긴다. 남을 이해하고, 남을 사랑하고, 남을 도울 때 바로 자신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또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내가 나 자신을 괴롭히고 속박하지 말아야 한다. 술, 담배, 마약으로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욕심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화 내고 짜증 내어 자신을 해치고, 물질과 권력의 시녀가 되어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만드는 것은 다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의 삶이다.
인간 관계의 본질은 서로 돕는 데 있다. 그것이 자연의 원리라고, 인류 사회의 진화 원리이다. 경쟁과 투쟁은 낡은 세계의 유산이며 무지의 소산이며 닫힌 세계의 잘못된 가치이다. 새로운 사회는 열린 세계이며, 밝은 세계이며, 공유의 세계이다. 새로운 사회는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로에게 이익이 됨을 자각하여 서로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 되는 사회이다.
--- pp.130~131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남을 제 마음대로 조정하고 움직이려는 힘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르시시는 힘이다. 세상 사람들이 출세를 하고, 권력을 잡고, 부를 축적하려는 이유는 바로 남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서지, 하지만 그 힘은 결국에는 자신을 망하게 하고 남도 망하게 하는 힘이로구나.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저 남을 딛고 일어서려 하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고, 더 많은 에너지르 소비하려고만 애쓰니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구나. 이 세상에 정당함을 표명하는 폭력이 이렇게 난무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 외적이고 부정적인 힘에 중독이 되어 있고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야.
이에 비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힘은 너무도 순리적이고 자연스러운 힘이다. 작은 미물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시고, 모든 만물을 공존케 하시며, 사랑으로 돌보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힘은 들에 핀 백합이나 공중을 나는 새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더냐. 자신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이지도 모르고 파멸을 향해 달려가기에 바쁜 사람들이 이제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진지하게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되었음을 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전심을 다하여 되돌아서야 하지 않겠니.
--- pp.21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