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민족은 선지자 스가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회개하거나 주님께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후에 스가랴를 통해 주어진 모든 약속과 계시가 보류되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을 바라보고 왕국의 영광을 경험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정결한 삶, 정결한 예배! 심령이 깨끗한 자들에게 실로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왕국의 특권과 영광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기준, 즉 자녀 됨을 위한 그분의 청사진에 부합할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측량하시며 시온도 측량하신다. 그리고 우리 경배자들도 측량하신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원한 성읍과 성전에 완벽히 걸맞은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께서 기름부음 받은 종들을 통하여 빈번하게 말씀하시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예언들이 조건적이며, 때로는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기록된 말씀, 즉 수세기에 걸쳐 시험을 견뎌 낸 성경 말씀으로 모든 것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물론 살아 있는 말씀이자 그 자신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이상, 다양한 언어로 옮기면서 일어나는 내용의 변형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말씀이 여전히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완벽한 형태의 진리라고 믿는다.
면류관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데 희생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주님의 성전 안에 두어야 한다. 그 사람들과 면류관의 명성은 다른 땅으로 퍼지고, 다른 사람들도 바벨론을 떠나 사랑의 희생으로 성전을 지을 것이다. 성령께서는 마지막 때에 바벨론을 떠나 주님의 영화로운 영적 집을 짓기 위해 희생하는 우리도 사랑으로 격려하신다. 우리도 성전 건축에 복된 부분을 담당할 수 있으며, 우리의 은(속량된 삶)과 금(정결케 된 믿음)도 그분께서 쓰실 관에 사용될 수 있다.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도 주님께 영원한 기념이 될 수 있으며, 왕과 그분의 왕국을 그린 위대한 초상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Chapter 1 왕의 초상」중에서
여왕의 대관식 날, 선택된 무리 중에 미천하고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려지지 않았고 칭송받지 못했지만, 하늘나라와 왕께는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날에는 그들 위에 왕의 총애가 임하고, 그분께서 그들의 아름다움을 크게 사모하시는 것을 모두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왕의 사랑스러움과 은혜를 반영하고 투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택함받은 몸이 그분의 온전한 이름을 지닐 것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이 땅에 그분의 아들인 왕자들을 낳을 것이다.
자연적인 영역에서 어머니가 되어 본 사람은 연애와 신혼 시절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고 그 뒤에는 확연히 다른 결혼 생활이 펼쳐진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가정을 세우고 일으키기 위해 신부로서 누리던 많은 즐거움과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똑같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큰 놀라움과 기쁨과 황홀감과 경이로움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분과 연합된 삶이 계속되면서 책임도 커져 간다. 하늘의 신랑을 더 친밀하게 알아 갈수록, 우리는 여느 헌신된 아내들이 그러하듯 그분의 고통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된다. 그분의 자녀를 낳고, 그분의 왕가를 세우고, 그분의 일과 전쟁에 개입하면서 전에 느꼈던 연애의 짜릿한 기쁨은 점점 사라진다. 그러나 주님의 믿음직한 ‘아내’에게는 더 긴밀하게 사랑하고, 더 깊이 이해하며, 그분의 수고에 동참하고, 그분의 고통과 영광을 분담하는 큰 보상이 따른다.
그분은 많은 사람을 아시지만, 제대로 그분을 아는 자는 매우 적다. 그리하여 바울은 부르짖었다. “내가 그분을 알고자 한다!”(빌 3:10) 이 영역으로 들어간 성도만이 그분의 왕자와 공주를 낳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할 것이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계시를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우리 안에서 경험적 지식이 일어나야 한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주님의 왕국을 세우기 전에 실제적으로 그분과 연합하고 신성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르심에 합당한 자는 어느 시대에나 매우 적었고, 당대에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되어 보좌에 참여하도록 부름받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따르는 자 가운데서도 가장 겸손하고 낮아지는 사람에 속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여왕은 환상이나 기름부음이나 계시나 능력과 축복의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녀는 하늘나라가 실제적인 바탕에 기반을 두었음을 안다. 살아 있고 활력 있고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의 숨은 동기를 드러내며 안일함을 계속해서 잘라 낸다. 그녀는 자기 안에 아들 예수의 본성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아버지께서 만족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빈틈없는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기를 요구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는 열 달란트를 가진 종이며, 백 배의 상급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상급으로 영광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마땅히 주님의 것임을 알고, 그분의 발 앞에 내려놓을 것이다.
---「Chapter 2 여왕의 초상」중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매일 매시간 겸손을 추구하라. 온유하게 걷고 말하며, 이러한 심령의 태도를 계속해서 실천하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완전히 실패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라. 그분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배우라. 자기 자랑은 완전히 추방되어야 한다!
참된 신부는 자신도 마리아처럼 하나님께 은총을 받았음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녀는 영원한 여종이자 사랑의 노예로서 그분의 사랑스러운 손에 스스로를 무조건 맡겨 드린다. 왕의 오른편에 설 여왕은 죽는 날까지 그분의 신실한 종이 되어 자신을 비우고 낮추며 그분의 본을 따를 것이다. 이는 종이 여왕이 된 것이라기보다는, 여왕이 종이 되어 하나님의 심령에 기쁨을 드리는 것이다.
사랑받는 신부는 그 무엇보다도 교만과 자만을 두려워한다.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추락했다. 겸손으로 장식하지 않고서는 절대 왕 앞에 서지 말라.
---「Chapter 3 단장한 신부」중에서
주님의 노래가 되는 법을 배우려면 단련, 즉 자기 부인과 인내와 끈기와 겸손을 단련해야 한다. 만약 당신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려면 가장 먼저 자기 부인을 배워야 한다.
당신과 나는 믿음의 분량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빛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에 충분한 정도인가? 노래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 가운데 도전과 충돌을 만날 때 이겨 낼 수 있을 정도의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의기양양하게 기쁨에 차서 시험에 맞설 정도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찬양은 믿음을 확증한다. 찬양은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그분의 본성과 모든 일과 길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선포하고, 확증하고, 주장한다.
참된 찬양은 한낱 형식이나 의례가 아니다. 말씀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도 아니다. 심령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서 흘러넘칠 때, 그것이 바로 참된 찬양이다.
---「Chapter 5 노래하는 삶」중에서
베드로는 말세의 사람들에게 고난을 대비하여 무장하라고 분명하게 경고하였다. 그는 극심한 시련의 때, 즉 무거운 과세의 때가 올 것을 말한다. “믿음에 확고한 발판을 지키라. 세상에 있는 나머지 형제들과 동일한 고난의 세금을 내기를 배우라”(벧전 5:9, 모팻역).
우리가 받는 시험과 환난과 시련은 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께 진심 어린 찬양을 드리며, 그 이름을 찬미하고 높일 기회다. “모든 것을 기쁨으로 여기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써 놓친 기쁨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돈을 왕께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후히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
---「Chapter 6 세금인가, 헌물인가?」중에서
우리가 속한 핵심 무리 가운데, 또한 자연적인 가족이나 영적인 가족 중에서 우리의 적이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우리가 깊이 사랑하고 우리를 잘 아는 사람만이 종교적인 원수의 손에 우리를 팔아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때에도 그들을 친구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가? 우리 주님처럼, 또한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말할 수 있는가? 침묵하며 숭고한 정적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가?
---「Chapter 7 하나님의 어린 양」중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속량받은 자들의 거룩하게 된 몸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세대에 그분의 아들이 나타나고 드러나도록 계획하셨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종과 추종자로서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수준이 아닌, 그분의 씨 즉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일어나기를 갈망하신다!
---「Chapter 10 주님의 나타나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