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이미 생활이 되고 현실이 되었는데 저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회의합니다. 그러나 이미 민주주의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이고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987년 민주주의 혁명의 흥분에서 벗어나서 진정 새로운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외형만 갖춘 민주주의 또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에 머물 수 없는 조국, 대한민국과 함께 말입니다.”
“한 세기 전의 영국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처럼 국가와 제도를 믿는 좌파,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좌파는 과연 오늘 한국 사회에서 가능할까요? 항상 반쯤 현실을 긍정하는 좌파, 그리고 반쯤 부정하는 좌파, 그러나 긍정할 때도 부정할 때도 대충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야말로 ‘온몸으로’ 하는 좌파, 현실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는 좌파, 그런 좌파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요?”
“특히 이른바 386세대의 정치인들, ―물론 그들도 이미 40대이지만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면― 제가 한 인터뷰에서 ‘30년의 번영이 낳은 응석받이’라고 불렀던 그들과 이들은 다릅니다. 혁명 놀이를 하던 그 철없는 아이들과 ‘토종 좌파’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80년대 대학교 캠퍼스에서 학생운동은 하나의 패션이었고 그 분위기에서 누구나 쉽게 혁명가 ? 대전략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좌파라고 생각한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노래를 자유주의자들과 어울려 함께 부르는 한 좌파는 자기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토종 좌파’가 될 수 없습니다. 저 1980년대를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혁명의 추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더 이상 국민들을 헛갈리게 하지 않게 위해서라도 민주화 운동 시기의 동지들이 우 몰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시절 저는 실용주의를 예사로 무시했습니다. 독일적 사고에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저의 큰 사상적 오류였습니다. 스승이 없는 자의 불행입니다. 그 불행을 딛고 이제 영국적 사고로 나아가려 합니다. 레닌의 사상적 아버지가 마르크스라면 그 할아버지 헤겔, 증조부 데카르트로 돌아가서 이별을 고하려 합니다. 아니 저 아득한 선조 플라톤으로 돌아가서 그와 작별하려고 합니다. 나의 조국의 할아버지들, 성리학자들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이별을 고하려 합니다.”
“이상하게도 한국 기독교는 유난히 구약으로 설교하는 목사들이 많으면서도,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구절을 가르치는 목사가 없습니다. 오히려 서울 강남의 교회들은 ―아마 그중에 소망교회라는 교회도 있는 모양인데― ‘세금폭탄론’에 적극 동조하고 종합부동산세 반대론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부동산보유세를 많이 내는 것이 기독교적이다’고 설교하는 목사가 없는 한국 기독교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국이라는 나라의 발전 과정에는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작용하고 원인들이 얽혀 들었습니다. 우연적인 계기도 있었고 필연적인 원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야 합니다. 거대한 물체가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해야 비로소 다른 힘들이 보탬이 되고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원인이 바로 토지 개혁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당시 언론 · 출판 · 집회 ·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보통선거권이 보장됐습니다. 당시 세계적 기준으로 봤을 때 손색이 없는, 최소한 법률과 제도상으로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 건국되었습니다. 유럽에서도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준 게 그렇게 이르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앞선 정도? 이 모두가 독립운동 시절 사회주의운동의 결과라는 말입니다. 즉 대한민국 건국에 사회주의가 아로새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촛불 뒤의 배후 세력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느끼기에 지금 대한민국에 위기가 왔기 때문에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세계화로 인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대한민국의 위기로 인식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대한민국이 원래, 특히 건국될 때 매우 평등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건강할 권리가 좌지우지되는 소고기 수입, 의료민영화 따위의 정책이 평등한 나라에서 살아온 국민의 입맛에 맞을 리 없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때는 조봉암을, 그리고 통일 한국을 말할 때는 여운형을 반드시 함께 말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거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고 미래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이루지 못한 꿈은 그것이 아름다운 만큼 반드시 훗날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여운형과 조봉암은 사회주의적인, 좌파적 이상을 민주주의를 통해 달성하려 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그로써 그들은 충분히 사회민주주의자라 하겠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