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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시절

방황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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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10쪽 | 416g | 148*210*30mm
ISBN13 9788932019338
ISBN10 893201933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다치아 마라이니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성작가 다치아 마라이니는 1936년 피렌체 근교인 피에졸레에서 태어났다. 인류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지내던 중 1943년부터 46년까지 수용소 생활을 했다. 이탈리아로 돌아와 시칠리아 섬에서 지내던 마라이니는 열여덟 살이 되자 로마로 가서 학교를 다니며 작가 수업을 받았다. 『문학시대』라는 문학잡지를 창간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극단을 설립해 극작가?비평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대표작으로 『휴가』 『어느 여도둑의 회상』 『전쟁 속의 여인』 『이솔리나』 『마리안나 우크리아의 긴 생애』 『바게리아』 『증언』 『어둠』 『피에라와 살인자들』 『마지막 밤기차』 등 다수가 있으며, 『방황의 시절』로 포르멘토르 국제상을 수상했다.
역자 : 천지은
1967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96년부터 7년간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엘사 모란테의 『아서의 섬』을 번역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더듬거리며 욕실로 가서 이마에 손을 짚고 변기 위에 얼굴을 대고 구역질을 했다. 현기증으로 움직일 힘을 잃은 채 어둠 속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마침내 세면대로 몸을 움직여 수도꼭지를 열고 물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다시 침대에 들어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누워 있었다. 통증은 파도처럼 밀려올라와 나의 힘을 모두 빼앗아 내려갔다.
떨리는 몸으로 진정제를 찾으러 일어났다. 욕실에서 벨라돈나 제를 찾아 몇 방울을 물 컵에 떨어뜨렸다.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침대에 누웠다. 갑자기 밀려오는 한기로 몸이 떨렸다. ‘이럴 수가. 그 여자는 내 몸에 독을 넣었나 봐’ 하고 나는 생각했다. (186쪽)

“그럼 그 후에 데리러 갈게. 여섯시에. 두 시간이면 충분하지?”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짓궂었다.
“싫어, 카를로. 만날 수 없어.”
“약속했잖아.”
“알아. 하지만 그 사람과 너 두 사람을 놓고 선택해야 될 줄은 몰랐어.”
“선택하라는 얘기가 아니야. 처음엔 그를 만나. 그리고 나를 만나면 돼.”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야 해. 약속한 일이야.”
“그럴 수 없어.”
“넌 비겁한 계집애야.”--- p. 286

“나는 이기주의자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겐 꿈이 많았지. 미래에 대한 계획도 많았고. 나는 기술자가 되어서 집을 짓고 싶었어. 하지만 이렇게 된 건 니니 책임이기도 해. 결혼하자고 매달린 사람은 바로 그녀야.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을 하면 학위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그녀란 말이야.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내 장인어른도 그녀의 말에 넘어가서 하루 빨리 결혼해서 손자를 낳아달라고 재촉하고 있어. 왜냐하면 장인어른은 나이가 많아서 이제 일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하거든. 그 노인네 책임이기도 해. 그 노인네와 멍청한 여자, 두 사람 책임이지. 니니는 푸른 눈을 가진 작은 요부야. ……왜 웃지?”
그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는 내 어깨를 잡고 그의 몸 아래로 밀어넣었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너는 언제나 내 여자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p. 295

얼마 동안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언제 사람들이 어머니를 집으로 옮겼는지, 언제 아버지와 나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오고 밖으로 나왔는지 나는 깨닫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생명을 잃은 채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어머니 곁에 나도 병실에서와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햇빛은 사라지고, 누군가가 천장 중앙에 달린 갓 없는 전등을 켜놓았다.
나는 내 앞에서 흐느끼며 흔들리고 있는 누군가의 등을 보았다. 위층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청소할 때처럼 머리에 수건을 썼다. 수건을 묶은 매듭 아래쪽으로 살이 접힌 목이 보였다.
아버지는 가슴에 머리를 떨구고 잠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수프를 끓여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시신 옆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에 젖으며 졸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머니는 내가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아니 영원히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모든 관계는 끝났다. 나는 그녀를 보고 있지만 그녀는 알지 못한다.
--- p.p 87~88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열일곱 살의 주인공 엔리카는 상업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다. 우체국에 다니며 근근이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와 보험회사에 다니지만 새장 만드는 일에만 미쳐 있는 아버지와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학위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스물여덟 살의 법학도인 체사레를 사랑하지만 세상을 쉽게 살아가려는 그는 부잣집 딸 니니와 약혼을 하고, 이제 결혼 날짜까지 잡아놓은 상태다. 엔리카의 진심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체사레에게 있어 엔리카는 성적인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엔리카는 자신을 좋아하는 학교 친구 카를로와 스치듯 관계를 갖는 등 자신의 삶을 방기하기도 한다.
어느 날, 늘 피곤에 젖어 있던 어머니가 쓰러지고, 결국 폐암으로 돌아가시자 그녀의 삶은 급격하게 피폐해진다. 술과 새장 만드는 일에만 빠져 있는 아버지에게서는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의 삶조차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 와중에 엔리카는 체사레의 아버지로부터 성희롱을 받고,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 여자를 만나는 나이 많은 변호사 구이도에게 충동적으로 자신의 성을 팔기도 한다.
체사레의 아이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엔리카의 방황은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체사레는 책임을 회피하며 바르덴고 백작부인을 소개해주고, 그녀는 불법적으로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를 소개해준다. 엔리카에게는 늘 자신을 그리워하는 카를로가 따라다니지만 그의 사랑은 유치하게 느껴질 뿐이다.
집세가 밀려 결국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엔리카는 취직을 결심하고 우여곡절 끝에 바르덴고 백작부인의 개인비서가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서서히 타인들의 삶과 자신의 미래에 대해 깨닫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이기적인 사랑을 하는 체사레나 아직 철부지인 카를로의 사랑, 미소년을 놓치지 않으려는 백작부인의 욕망, 그리고 사랑 없이 결혼했던 과거를 후회하는 아버지의 무책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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