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좌에 올라 양구한 후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내리찍고 이르되, 『고인의 말씀에 「예로부터 고요히 움직이지 아니함이 여여(如如)한 부처라」 하였다. 그러나, 여여를 여여라 하면 여여가 아니라 벌써 변해 버린 말이니, 이 여여는 곧 우주의 모체〔根本〕이며, 일체 만물이 모두 이 여여에서 생겨났음이니라.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생겨나도 생겨나는 그 근본을 모르고, 죽어 가도 죽어 가는 그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그 어리석음이 축생(畜生)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느냐? 이 세상 중생들이 모두 이렇게 된 까닭은 오직 탐ㆍ진ㆍ치 세 가지 독한 것을 가지고 일용의 살림을 삼기 때문이니라. 여기에서 만약 누구든지 이같은 어리석음을 벗어나려거든, 이 「구래부동 여여불(舊來不動如如佛: 예로부터 동함이 없어 여여한 부처)」을 깨닫도록 하여라. 이 한마디를 스스로 깨달으면 바야흐로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니라.』 --- p.29
법좌에 올라 이르되,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능히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
천년의 대나무와 만년의 소나무여!
가지와 가지 잎새와 잎새가 낱낱이 다 같도다.』 --- p.34
법좌에 올라 이르되,
『일심(一心)이 곧 만상(萬像)이요, 만상이 곧 일심이니라.
이것이 가깝지도 아니하고 멀지도 아니하며,
지극히 얕고 지극히 깊어서 건곤(乾坤)으로 더불어 같이 덮이고 실렸으며,
일월(日月)로 더불어 같이 비추었으니,
달빛을 배에 실음이여, 배마다 다 달빛이요,
금으로 그릇을 만들었으니, 그릇마다 다 금이요,
밝고 조촐함은 산호의 가지와 같고,
그 향기는 담복(?蔔)의 수풀과 같도다.
대용(大用)의 자재(自在)함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상투 속 보배를 획득하였고, 바른 소리가 화합함은 사자의 힘줄로 만든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과 같음이로다. 터럭만치도 원융 무애(圓融無碍)를 유실(遺失)하지 아니하였거니, 형상을 비추는 거울이요, 형상의 껍질이 허공에 걸리지 아니하니, 이 또한 담장을 넘어가는 소리로다. 능히 이와 같음에 그 묘함이 아득한 옛과 지금을 초월하여 여여함을 요달하였도다.
대중은 또한 일러라! 이제 요달한 것이 이 무슨 일인고? 도리어 알겠느냐?
평온함이 대지와 같아서 능히 이 물건은
확연한 허공과 같이 바늘 끝만치라도 걸리지 아니함이로다.』 --- p.50
법좌에 올라 이르되,
『좌선하는 법은 별달리 긴요한 법칙에 있는 것 아님이니,
일체 망상이 고요함이 곧 좌(坐)요,
화두의 의심이 성성(惺惺)함이 곧 선(禪)이라,
성성함과 적적함을 같이 가지면,
하루 해가 가기 전에 참선하는 일을 성취하리라.
성성함과 적적함은 그만 두고 어찌 하려는고?』
양구하고 이르되,
보배 궁전에 무단히 살되 내 하는 것이 없으니,
4해와 5호가 법왕의 화(化)를 입음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치고 법상에서 내리시다. --- p.61
매미 소리로 안목을 가리다
만공 스님이 대중과 더불어 수박 공양을 하려 할 때였다. 마침 나뭇가지에서 유유히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대중을 둘러보고 이르기를,
『누구든지 날랜 사람이 있어 매미를 맨 먼저 잡아오는 사람에게는 수박 값을 안 받기로 하고, 만일 못 잡아온다면 동전 서푼씩 받아야 하겠으니, 여기에서 대중들은 모두 한 마디씩 일러 보아라.』 하였다.
이때에 어떤 이는 매미 잡는 시늉을 내고, 어떤 이는 매미 우는 소리를 내었으며, 어떤 이는 할을 하였고, 어떤 이는 주먹을 들어 보이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스님의 등을 탁 때리고 말하기를, 『매미를 잡아 왔습니다』 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모두 돈 서 푼 내라』 하였다.
그때에 금봉(錦峰) 선화(禪和)가 나와서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말하기를,
『상 가운데는 부처가 없고[相中無佛], 부처 가운데는 상이 없습니다[佛中無相]』 했다. 그러나, 스님은 『금봉 자네도 서 푼 내게』하였다.
마침 보월(寶月) 선화가 들어오자 스님이 이르기를,
『지금 대중이 이러이러했으니,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하였다.
보월은 곧 주머니 끈을 풀고 돈 서너 푼을 꺼내 스님에게 올렸다.
스님이 비로소 웃으며 『자네가 비로소 내 뜻을 알았네』 하였다.
[評] 바다 밑 진주를 취하고저 하는 자 바다 밑까지 뛰어들라. --- p.89
사람들이여! 꿈도 없고 생시도 없는 경계를 아는 이가 있는가?
온 세계와 내가 모두 적멸하여야 남과 나라고 하는 상이 끊어지니, 정히 이러한 때를 당하여 나의 주인공이 어떤 곳에 있어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는가?
이 경계를 깨달은 자라야 곧 이것이 부처님의 맏아들 적자인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주인공의 안신입명을 깨닫지 못한 자이며, 부처님의 혜명을 이은 자가 아닙니다. --- p.76
계미(癸未: 1943년) 하절(夏節)에 혜암(惠菴) 스님과 진성(眞惺) 사미가 만공 스님을 모시고 간월도(看月島)에서 안면도(安眠島)로 가게 되었다. 세 사람이 매우 작은 배를 타고 떠가면서 먼 산들이 지나쳐 가는 해안 풍경(海岸風景)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만공 스님이 진성 사미에게
『저 산이 가느냐 이 배가 가느냐?』
하고 물었다. 진성 사미가 답하기를
『산과 배가 둘 다 가지 않습니다.』
하였다. 만공 스님이 『그러면 무엇이 이렇게 가느냐?』
하고 묻자 진성 사미가 앞으로 나와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러자 옆에 앉았던 혜암 선화가 일어서서,
『제가 한 마디 드리겠습니다.』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산이 가는 것도 아니요 배가 가는 것도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만공 스님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무엇이 가는가?』
하니, 혜암 스님이 마침 들고 있던 흰 손수건을 번쩍 들어 보였다.
만공 스님이 『자네 살림이 언제부터 그러한가?』 하였다.
혜암 선화가 말하기를, 『제 살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하옵니다.』 하니,
만공 스님이 말없이 점두(點頭)하였다.
--- p.154